“빨갱이들이 조카를 송학산으로 끌고 가 태워 죽였어…”
북한 관련 뉴스가 터져 나올 때마다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중심은 6.25 민족살상전 발발 직후 공무원인 아버지가 ‘빨간 완장’을 찬 옛친구들에게 쫓겨다니며 야산에 ‘방공호’를 파고 숨어살던 시절인데 옛친구들이 때마침 집에 머물고 있던 조카를 아버지 대신 붙들어갔다는 것이다.
스무살 정도 됐다는 조카는 끌려가면서 길을 지나는 지인들과 마주칠 때마다 ‘죽으러 가니 집에다 알려달라’며 눈짓으로 하소연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할아버지는 개성 송악산 중턱에서 불에 타 숨진 수십여구의 시신들을 뒤지며 조카를 찾아 헤맸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결국 포기했다는 이야기다.
어머니는 가끔 이 끔찍한 경험담을 손자손녀들에게도 들려주시는데 아이들은 눈만 말똥거리며 할머니의 얼굴만 바라본다. 한국어가 어수룩한 아이들이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이념전쟁에 묶여 사는 북한 공산당의 어두운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케케묵은 민족상잔의 비극적 사건을 들먹이는 이유는 요즘 북한의 핵실험 파동이 주는 충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공산당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과 어려서부터 가정 내 반공교육으로 무장(?)된 그들의 자손들에게는 한반도의 현 상황이 위험천만하게 비쳐질 수밖에 없다.
판문점 북한 대표부 리찬복 상장(중장)은 19일 북한 취재에 나선 ABC 방송의 간판 급 앵커우먼 다이앤 소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압박이 계속된다면 전쟁도 불사할 것이며, 그 장소는 한반도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무서운 발언이다. 전쟁 장소가 미 본토가 아닌 한반도라면 그 대상이나 피해자는 당연히 한국민이 될 것임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일개 장성의 서슬 퍼런 발언이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부 내 분위기를 읽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이 한반도에서 남한과의 전쟁을 위한 것이라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주장이다.
북한은 정권 위기 때마다 ‘서울 불바다’ 발언을 끊임없이 해왔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에 휴전선 인근 북쪽에 구축된 수천기의 대포부대가 불을 뿜는다면 불과 수십여분만에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방어가 아무리 완벽한들 그 많은 북한 포부대 진지를 신속하게 모조리 파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낙후된 북한은 어차피 잃을 것이 없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한국은 50년 전 잿더미의 악몽을 되살리지 않을 수 없다.
햇볕정책의 원조인 김대중 대통령이나, 그의 정책을 이어받아 북한을 달래 왔던 노무현 대통령이나 북한의 불바다 발언에 ‘퍼줘서 달래기’ 이외에는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90년대 중반 압록강과 두만강변에 굶어 죽은 시신이 널려 있던 북한의 식량위기 때 세계는 이것이 북한의 정권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남한 정부는 궁지에 몰린 김정일 정권이 마지막 수단으로 ‘서울 불바다’를 선택할 수 있다고 걱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불바다 발언이 수천기의 포부대의 집중 포화보다도 더 무서워졌다. 핵무기 한방이면 서울은 고스란히 버섯구름 속에 형체 없이 사라져버린다.
중국의 등소평이 개방정책으로 선회할 때 굶주려 죽어 가는 인민들의 봉기를 막으려면 그들에게 밥과 집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중국이 이제는 북한의 인민들이 봉기해 김정일 정권을 엎어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북한 정권의 붕괴에 정치, 경제 등 다방면으로 부담을 안게될 중국마저도 이제는 배고픈 인민들의 봉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특파원에 따르면 한국민은 북한 핵실험을 막을 만한 대안도 없고 그렇다고 핵폭탄이 터져도 딱히 도망갈 길도 없다며 오히려 미국 사는 한인들보다 더 담담해 한다. 북한의 핵무장이 결국 일본의 핵무장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동북아에는 유일하게 한국만 핵무기 없이 열강들의 ‘핵우산’ 그늘에 묻혀 살아야만 한다.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이 일본 등 열강으로부터 한국을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할지 고민중이다.
<김정섭>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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