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기자
■실천(행동) 없는 이론(주관)은 공허하다.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주관은 흐릿한데 행동이 앞서는 것은 무모(위험)하다. 사고치기 십상이란 뜻이다. 조선조 유학자들이 이(理)가 어떻고 기(氣)가 어떻고 벌였던 논쟁을 연상케 하는 이런 경구는 스포츠에서도 일부 말이 바뀌어 곧잘 인용된다. 파워 없는 테크닉은 공허하고, 테크닉 없는 파워는 위험하다.
■18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비판ㆍ조정ㆍ성숙’의 메커니즘>이란 취재수첩을 읽은 느낌은 공허하다. 취재수첩에서 동원된 자못 점잖은 말에 걸맞게 실천해왔느냐는 의문이 첫째 이유요, 지나간 건 지나간 일이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는 <말하는 쪽의 다짐>과 <듣는 쪽의 믿음>이 실감나게 서로 닿지 않는다는 것이 둘째 이유다. 셋째 이유는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는 속담으로 대신한다.
■첫째와 둘째 이유는 염치에 관한 문제다. 아무리 고상한 말이라도 그 말을 할 자격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재의연금 사안과 관련해 김홍익 한인회장이 지적한 기준(원칙)과 형평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개인관계에서도 소중한 덕목이다. 중앙일보는 사회적 공기를 자처하는 언론이다. 그 점에서 중앙일보는 대외비판(비난)에 앞서 안으로 스스로의 원칙과 그 원칙의 적용사례들을 가슴에 손을 얹고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칙이 흐릿하면 적용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적용이 오락가락하면 원칙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고상하게 에두를 것 없이 이해하기 쉽게 유대진-윌리엄 김씨가 얽힌 사례를 들겠다. 지난해 9월6일 SF체육회 임시이사회에서 필라체전 결산문제가 다뤄진 가운데 미수후원금 4,000달러가 문제가 됐다. 당시 중앙일보는 김 씨의 도덕성을 질타하는 기사를, 이번 수재의연금 기사와 마찬가지로, 2면 머릿기사로 실었다. 이에 본보는 문제의 미수후원금 중 2,000달러는 SF상의(회장 유대진)가 부도낸 것이며, SF상의의 후원금부도는 129개 개인ㆍ단체 중 단체로는 유일할 뿐만 아니라 단체 중 가장 먼저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한 약속(6월10일)을 석달이나 지키지 않았고, 더욱이 유 씨는 전직 체육회장으로서 약속위반 책임이 더욱 크다는 등 후속기사들을 내보냈다. 정작 중앙일보는 부도처가 SF상의로 밝혀지자 입을 닫았다.
해괴한 일은 올해 1월 공식 표면화돼 아직까지 미봉상태인 SF체육회 공금사태에서도 빚어졌다. 18일자 중앙일보 취재수첩 표현을 응용하면 ‘한인사회의 소중한 마음’이 담긴 후원금 등 약 11만달러에 달하는 체육회 예산집행과 결산보고를 둘러싸고 다름아닌 체육회 이사들에 의해 무더기의혹이 제기되고 공식의제로 채택된 뒤 지금까지 이 사안에 대해 중앙일보가 취한 태도를 되돌아보라. 그것이 과연 <‘비판ㆍ 조정ㆍ성숙’의 메커니즘>에 충실한 것인가.
■셋째 이유는 상식과 진실에 관한 문제다. 중앙일보의 13일자 “수재의연금 늑장처리 물의” 기사가 “김 회장이 생각하는 것처럼 ‘의연금 유용’과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 대목은 언론인을 떠나 상식인으로서 과실상규(재발방지 등을 위해 허물을 서로 지적하고 비판함) 차원에서 거론하자면, 잠자던 소도 벌떡 일어나 웃을 변명이다. 시쳇말로 “선수끼리 이러지 말자”는 것이다. 말이 말 같아야 말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이다.
본보가 16일자 기사에서 본보의 입장을 밝히면서 여러 상황론을 감안할 때 한인회의 수재의연금 처리에 “비난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한 대목을 들어 18일자 중앙일보 취재수첩이 “언론의 ‘비판’ 기능을 ‘비난’ 행위로 적절하지 못한 해석을 내린 것”이라고 토를 단 것도 그렇다. SF한인회의 반응은 별개로 치더라도, 문제의 기사가 악의적 비난행위인가 건강한 비판기능인가.
■거듭 강조하건대,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갖다붙이는 공자왈 맹자왈 고상한 말의 성찬은 진실을 은폐하고 본질을 호도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다만 중앙일보가 이번 사안에 적용한 추상같은 원칙, 비난과 비판의 차별까지 헤아리는 엄정한 태도를 다른 사안들에도 적용한다면 한인사회가 한층 맑아지리란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울러 이는 본보가 새로이 기획중인 한인사회 업그레이드를 위한 미결 의혹ㆍ물의사건 철저규명에 공동보조를 취할 것이란 위안이자 그러자는 촉구이기도 하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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