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김동열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이민박람회는 유례없는 호황으로 끝마쳤다.
이틀 동안 열린 회의장에는 유학박람회와 겹쳐 3만여 명이 넘게 온 것으로 기록됐다.
북한의 핵실험을 예견이나 한 듯 북새통속에 하루에 1만5천명 이상이 몰린 것이다.
이와 유사한 박람회가 지난 수년 동안 반복되었는데 아직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이민문호가 줄어든 미국은 과거에 비해 그 인기가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장 선호하는 나라로 관심 받고 있다.
과거에 비해 미국이민이 힘들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눈길을 돌리지만 그곳으로 갈려는 사람들의 미래 최종 목적지도 역시 미국이다. 과거 남미에 간 사람들이 이민 보따리를 풀지 않고 미국으로 갈 기회만 기다렸다는 후담이 기억난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을 떠 날려는 것일까.
가장 큰 주범은 스트레스와 자녀교육비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정주부들의 주화제로 아파트 시세와 아이들 교육문제를 빼놓으면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 두 문제에 철저히 올인하는 셈이다. 그럼 한국적 스트레스는 어떤 것인가.
필자가 30년간 살아온 미국에서 느끼지 못한 매우 판이한 형태로 매사 남의 이목을 의식하고, 남과의 비교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 실업자가 되도 남들의 눈이 무서워 양복 입고, 넥타이를 매고 공원에 갔다는 현실이 모두를 두렵게 한다.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일용직 노동을 해도 넥타이를 매고 싶다고 한다. 남을 의식한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정체성이 약하다는 뜻이다.
정체성이 결핍되고 자신감이 상실된 사회는 결국 스트레스를 양산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국사회가 초고속 변화의 태풍 속에 있다는 현실이다.
젊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고 위로부터는 조이는 샌드위치가 됐다.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판단이 순간적으로 멈추면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지난 50여 년 동안 경제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너무나 빠른 변화를 했다.
다른 나라가 2-3백년에 걸쳐 해낸 것을 특별한 한국인은 지난 50년 동안 이룩한 것이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53년 67달러에서 2004년에는 1만 4천여 달러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50년 동안 20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멀쩡한 정신상태가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 모른다. 한국인은 이런 스트레스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뇌와 간질환은 세계선진국과 비교하여 불행하게도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 지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만은 똑같은 비극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이것이 자녀교육에 극성을 부리는 가장 특이한 이유이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겠는가.
결국 자녀가 취직을 할 만한 대학에 입학할 확신이 안서면 탈출구로 유학이나 이민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여유가 있은 중상층 이상은 조기교육이나 단독 유학을 결정 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은 온 가족 이민이 최상의 방법으로 떠오른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들도 미래가 없는 회사에서 명퇴나 사오정(45세 정년퇴직)을 당할 불안 속에 지내기보다 새 땅에 가서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이민에 호감이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스트레스와 자녀교육이 만들어낸 스트레스 공화국에서 탈출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이 바로 이민인 것이다.
본국 언론 뉴욕특파원이 보도한 한국 주부의 이야기가 잔잔한 심금을 울리고 있다.
한국의 중산층 주부가 담배만 피워대는 남편과 대학 졸업 후 친구들과 빈둥거리는 아들을 보다 못해 구직전선에 나선 것이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던 중 한 인력소개소에서 L. A가정부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먹여주고 재워주기 때문에 월급은 고스란히 저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 자식과 헤어져 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에게 “굶어 죽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잖아요.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다 구하다 안 돼 결국 여기까지 왔다“며 가시 돋친 말을 했다고 한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L. A근교에는 그와 같이 온 사람들이 꽤있다는 소문도 전했다. 그 주부의 남편은 중소기업의 이사까지 재직했지만 명예퇴직이후에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하고 장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불안한 미래가 한국의 중산층을 이민의 길로 내몰고 있다.
미국 내 닭공장 이민은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오기를 간절히 원하는지를 보여 주는 슬픈 단면이다. 미국내 3D업종의 하나인 닭공장에서 시간당 6.5-8달러를 받으면서 기계처럼 일하는 한국 중산층 이야기가 한국에 크게 보도 되었다.
그 안에는 40-50대 전문인을 비롯하여 의사까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중산층이 미국을 찾는 이유도 첫째가 자녀교육이고, 불안한 한국의 장래를 꼽고 있다. 국민소득 1만4천 달러에 OECD에 가입한 선진국 한국에서 아직도 뜨거운 이민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에 외국인들은 의아해 한다.
경제 강국으로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나라에서 이민을 가기위해 이민박람회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한 것이다.
이민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은 한국이 이와 같은 웃음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선 노동을 천대시 하고 허례허식에 찌든 유교적 체면문화에서 탈피하는 정신개혁이 가장 시급하다.
남 때문에 넥타이를 풀 수 없고, 남 때문에 분수에 넘치는 큰 차를 타야만 하는 체면문화가 깨질 때 한국인의 정신연령은 보다 성숙할 것이다.
한국에 사는 많은 외국은 한국처럼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나라를 찾기 힘들다고 평가 한다.
지하철 속에서 자기 집 안방처럼 남을 상관치 않고 마음 놓고 큰소리로 전화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절간처럼 고요하고 적막감이 넘치는 동경 지하철의 위축된 일본인의 예의와는 정말 대조적이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곧 터질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시민들의 활기가 어찌 50년 체증의 체면문화를 아직까지 혁파하지 못했는지 안타깝다.
며칠 전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조사한 위기상황시 남녀 선호배우자 조사 결과 여자의 39.8%는 영주권이나 시민권자등 해외기반, 연고가 있는 사람을 원했다고 한다.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미국내 총각과 홀아비들의 주가가 뜨고 있다는 서울의 이야기가 농담으로만 듣기엔 서울이 너무 뜨겁다. (dyk47@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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