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 이후 제시된 대응책들은 크게 두 가지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중국의 적극 개입이다. 유엔안보리가 마련 중인 대북제재 결의안이 중국의 적극 참여 없이는 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북미 직접대화다. 이제는 북한과 마주 앉아 핵 폐기를 위한 본격협상에 나서라는 압력은 미정계 안팎에서도 상당히 고조되고 있다. 전자는 미국이 앞장 서 적극 추진하는 시급한 대응책이고 후자는 각계 전문가들이 미국에게 적극 추천하는 장기적인 해결책이다.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무모한 도박을 감행했다. 치밀한 계산을 안했을 리 없다. 핵보유국으로의 도약과 유엔제재로 인한 고통을 양 손에 놓고 저울질 했을 것이다.
핵카드가 내부결속 뿐 아니라 대미협상의 주요한 패가 되리라는 확신도 있었겠지만 제재가 가해지면 중국의 보호막이 엷어질 것도, 한국의 퍼주기에 차질이 생길 것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안했을 때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많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미국의 선제 정밀공격이 꼽힌다. 최첨단 무기체계를 동원해 핵·미사일 시설 등을 폭격하는 군사작전이다. 그러나 한국의 엄청난 희생을 초래할 군사제재는 처음부터 대응책에서 배제된 사안이다. 걸핏하면 선전포고를 떠벌이는 북한이지만 핵실험을 감행하며 크게 기댄 것은 이런 전쟁불가론이었을 것이다.
남은 것은 경제제재다.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지난 7월 미사일 발사 후 보다는 훨씬 강경하다. 금융제재를 대폭 확대하고 교역금지에 해상검문까지 사실상의 외화벌이 차단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50년간 각종 제재에 면역되어온 나라다. 이미 너무 가난해 2백만명이 굶어죽었다. 지난번 제재 때도 ‘동지’ 중국과 ‘햇볕’ 한국이 구해주었다. 특히 에너지와 식량의 주 공급처인 중국만 완전히 돌아서지 않으면 버티어 갈 수 있다. 1998년 파키스탄이 첫 핵실험을 한 이후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면 비공식이지만 핵보유국으로 발돋움 한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경제제재에 대한 중국의 적극 참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강력한 징계를 다짐하며 시작된 유엔제재안 협의는 사흘째에 접어들며 벌써 난항을 겪고있다. 예상대로 중국이 일본의 강경론과 쉽게 절충할 수 없어서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못지않게 북한정권 붕괴가 몰고올 혼란을 우려하는 중국으로선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엔제재에 지지를 천명한 한국에서도 벌써 포용정책의 지속과 폐기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미국의 초강경 발언에도 불구,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않다’ MIT의 북한 전문가 짐 월쉬의 진단이다.
지난 5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은 “북한에게 리비아가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리비아와 26년만에 외교관계를 전면 복원한다고 발표하는 자리에서였다. 1980년대 리비아는 현재의 북한 못지않게 미국의 골칫거리였다. 테러지원을 공공연히 자행했던 ‘깡패국가’였다. 국가원수 무아마르 가다피는 미국에 대한 깊은 적대감을 숨기지도 않았다. 리비아 미대사관이 습격당한 뒤 미국과 외교가 단절되고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다. 86년 미군들이 출입하는 베를린 디스코클럽 테러를 지원했고 그 대가로 가다피의 저택이 미 전폭기의 공습을 받자 88년 팬암기 폭파테러로 보복을 감행했다.
그 가다피가 2003년말 테러리즘과 관계를 끊고 핵개발프로그램을 폐기하기로 미국과 합의하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한 것이다. 물론 각종 제재에 짓눌린 경제악화가 계기가 되었으나 ‘리비아 본 어게인’을 성공적으로 이끈 뒤에는 1년에 가까운 미국과의 직접대화, 막후 협상이 있었다.
당시 “2003년이 리비아 국민에게 전환점이 된 것처럼 2006년이 북한국민에게도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던 라이스 국무는 엊그제도 북한에게 “외교의 길이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핵개발을 계속하면 고립과 고통의 길을 가야하지만 핵을 포기하면 보상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며 두 개의 길이 열려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미국이 제시하는 ‘외교의 길’은 여전히 6자회담이다. 그러나 대북 실무를 담당했던 많은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추천하는 해결의 실마리는 북미 양자협상이다. 경제제재의 공을 중국에게 넘겼다면 양자협상은 미국이 북핵 타결을 위해 감수해야 할 몫으로 남겨졌다.
미국이 직접대화를 끝내 거부하고 경제제재도 흐지부지 힘을 못쓰면 어떻게 될 것인가. 주변국 모두가 너도나도 핵무장을 추진하는 핵 도미노 현상이 가장 우려되고 있다. 한국의 여론도 핵을 가져야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남과 북이 핵으로 대치하는 그 땅에 우리의 부모와 형제가 살게 된다는 뜻이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이 상황이 자칫 현실로 다가올 지도 모르는데 시원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당사자인 한국은 해결의 주체도 못되고 있다. 불안하고 답답하다.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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