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망대
▶ 서공렬/전 대우 경제 연구소 이사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최근 창조경영을 천명하였다. 그의 말인즉 이제껏 소니 등 일류기업을 따라오며 편하게 기업을 해왔는데, 세계일류기업이 되고 보니 앞에 가는 자가 아무도 없어 이제는 험난한 환경을 몸소 헤쳐나가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큰 소리를 칠만하다.
1983년 2월8일 이병철 전 회장이 동경에 머물면서 당시 중앙일보 사장에게 반도체사업 진입을 기사로 내라고 지시했다. 바로 며칠전 사장단회의에서 기각된 사안인지라 사장이 약간의 토를 달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어거지로 시작된 반도체사업이었다. 반도체 사업은 주요 제조장비의 내용년수가 불과 4-5년에 불과하고, 흔히 반도체 사이클이라 불리는 가격사이클을 잘못 타면 불과 수년만에 막대한 손실을 안은 채 문을 닫아야 하는 고위험 사업분야이다. 이 사건이 오늘날 삼성전자를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일류기업이 되게 한 2.8 동경구상이라는 시발점이었다. 이후 삼성전자는 미국 퀄컴사와 손잡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CDMA 셀폰 시장의 메이저가 되어 있고, HDTV와 LCD TV시장에서 미주와 유럽시장에서 고가전략을 구사할만큼 적시 연타를 날려 기업가치와 동의어로 불리는 주식시가총액면에서 일본의 자부심인 소니사를 여러 해 전에 멀찌감치 따돌린 바 있다.
흔히들 재벌이 여러 분야의 사업에 손을 대는 것을 문어발이라고 비판한다. 덩치를 앞세워 중소기업들로부터 사업기회를 뺏어 가 버린다는 소위 경제력집중을 염려하는 비판이다. 그렇지만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항상 사활을 염려해야 하는 민간기업에서 투자를 다변화하는 것은 기본적인 전략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란 계속기업(Going Concern)이 전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에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대우자동차 사장을 지내고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한 이경식 씨가 한은 총재 재임시절 한 이야기가 있다. 민간기업 사장과 국책은행 총재 자리가 어떻게 다른가 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민간기업 사장 할 때는 매일의 화두가 어떻게 살아남느냐 였는데, 공무원이 되고 보니 일단 그 걱정은 없는 것이 차이라고 했다.
시시각각 사활을 다투는 것이 기업이다. 과거 60-70년대에는 한 우물 경영이라 하여 전문분야를 고수하는 사업가가 존망을 받았다. 개풍, 삼호, 한국유리, 화신 등이 당시 우리나라 10대 기업에 들어 있었다. 다들 소위 심경경영(深耕經營)을 한 회사들이다. 그런데 이 회사들이 요즘 다 어디로 갔는가? 이제는 그 이름을 들어보기가 쉽지 않다. 대신 종로통에서 기쁜소리사로 라디오 수리점을 하던 엘지와 싸전 경일상회를 운영하던 현대, 그리고 삼성상회라는 잡화점으로 기반을 잡은 삼성은 문어발 전략을 통한 성장으로 이제 그 이름을 전세계에 드높이고 있다. 기업이란 제품과 사업의 라이프 사이클을 예측하며 분산투자를 해야만 한 사업이 어려울 때도 다른 사업으로 수지를 지탱하며 살아남을 수 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포트폴리오 투자나 다각화 전략이라고 한다.
일본의 미쯔이나 미쯔비시, 제일권업은행 등의 재벌들은 하나같이 기업역사가 수백년을 넘고 있다. 그것은 순전히 한우물경영의 위험을 예지한 총수들의 문어발 경영 덕이라고 보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 예로 우리가 잘 아는 일본의 전자회사 도시바는 미쯔이그룹의 계열회사이다. 미쯔이그룹 산하에는 수십개의 계열사가 있다. 그런데 도시바의 투자회사와 관계회사는 그 숫자가 500개가 넘는다. 그렇다면 미쯔이 그룹에는 도대체 몇 개의 회사가 있는 것인가. 계열사가 불과 50여 개 안팎인 우리나라 재벌들이 문어발이라면 일본 재벌들은 지네발도 모자랄 것이다.
2차세계대전 직후 맥아더 장군이 GHQ의 초대 주둔사령관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한 조치가 재벌해체였다. 선박이나 자동차, 항공기 등 전쟁물자의 생산이 재벌이라는 동양의 독특한 기업체제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했고, 원천적으로 재벌을 해체해놓으면 무모한 전쟁기도가 가능치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일본의 재벌기업들은 영국, 포르투갈 등 유럽의 기술선진국으로부터 효과적으로 기술을 도입하여 1930년대에 이미 제로셍전투기나 진주만공격에 사용했던 잠수정 등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일본 재벌은 해체됐던 것일까?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사실이었다. 맥아더 일본주둔 사령관은 구체적으로 사적독점 금지 및 공정거래 확보에 관한 법률이라는 것을 만들어 재벌기업이 상호 투자를 하거나 채무보증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고,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 등을 엄격히 차단했다. 이런 엄격한 조치들을 취한 맥아더는 안심했던 것 같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왜냐하면 이후 일본의 기업들은 과거의 인연을 살려 사장회나 월요회, 금요회 등 법외 모임을 만들어 상호간에 브랜드를 함께 쓰고, 해외투자를 할 때 공조하는 등 활발한 교류를 은밀히 계속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서양인들이 잘 몰랐던 일본사람들의 네마와시(根回し) 문화이다.
서공렬/전 대우 경제 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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