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크루즈는 망망대해 바다만을 보는 코스가 아니고 밴쿠버와 앵커리지를 이어 주는 해안선을 따라 길게 분포한 태평양 해안 내수면 지역을 지나가기 때문에 화려한 경치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가족과 함께 7박8일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정석창 객원기자.
가족과 함께 가 본 알래스카 크루즈 7박8일
지난 8월9~16일 7박8일 동안 알래스카 여행을 다녀왔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육지를 도는 내륙여행이 아니라 유람선을 타고 어촌을 도는 크루즈 여행이었다. 여름휴가 여행이 항상 그랬듯이 기획하고, 인터넷으로 조사하고, 현지를 탐구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냥 무심으로 얹혀 가는 여행이었다. 가기 전날 밤까지 마감해야 할 기사에 매달리다가 가족 중 맨 나중으로 내 짐만 대충 꾸려 곁다리로 따라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그런 여행. 그러니 행선지나 여행 스타일에 주인의식이 있을 수 없다. 그림처럼 조용히, 공기처럼 가볍게 동행만 해주면 되었다. 주는 대로 먹고, 가자는 대로 가고, 생각은 전혀 안하고 그냥 보고 즐기고만 오면 됐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달랐다. 생각을 무척 많이 해야 했다. 알래스카가 그렇게 유인했다.
자동차 여행을 싫어하는 가족이 있어서 비행기를 많이 이용하는데 4~5시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행기 삯을 줄이려고 그러는지 아니면 예약을 늦게 해서 그러는지, 혹은 시간을 벌기 위해 그러는지 주인의식이 없는 자로서는 알 바가 아니다. 이번 여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떠나기 전날 밤 대충 짐을 꾸리고 있는데 아는 선배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너, 어떤 사람이 좋아?” 뜬금없는 물음에 “자기 일에 열심이고, 내적 성숙함이 있고 그리고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 뜬금없이 대답했다. “잘났다, 잘났어. 알래스카는 여름에도 추우니까 따뜻하고 포근한 남자랑 잘 다녀와라.”
몇 년 전 사별한 남편 살아생전에 같이 알래스카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여름에도 ‘시베리아’였다고 겁을 주고 있다.
당시 LA 날씨는 몇 십 년만의 이상기온으로 푹푹 찌고 있었고 나는 이런 저런 일로 지치고 피곤했다. 마음이 피곤하니 모든 것이 시큰둥했고 무관심에 재미가 따라 올 리가 없었다. 그럴 땐 하늘로 솟던지, 땅으로 꺼지던지 아무튼 현장을 벗어나는 것이 수였다. 알래스카가 여름에도 춥다는 것, 그리고 크루즈라서 매일 짐 다시 싸들고 이 호텔, 저 호텔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에 의미를 두고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공항 가는 택시에 올랐다.
장엄한 빙하쇼… 대자연에 경외감이
스릴넘친 자갈길 지프투어 백미
캐나다 밴쿠버
LA 공항에서 밴쿠버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반 가량 걸렸다. 오후 1시쯤 버스 몇 대가 승객을 싣고 밴쿠버 시내를 지나 유람선이 있는 바다로 향했다.
밴쿠버 시내는 프랑스 번화가의 한 부분처럼 현대적이고 세련됐으며 거기에 캐나다 특유의 청량감까지 갖추고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이 거리를 활기차게 걷고 있었고 가로수 대신 행잉 배스킷으로 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도 특이해 보였다.
그런 풍경은 알래스카 본토에서도 몇몇 어촌에서 보았다. 베고니아, 패추니아, 임페이션스 등이 바구니에 담겨 척척 늘어지면서 회색빛 건물이 늘어선 도심 거리에 활력과 액센트를 주고 있었다.
3시께 유람선에 탈 수 있었는데 배가 고파 우선 부페식당부터 찾아 허기를 채웠다. 저녁식사는 시팅타임을 8시30분으로 배정 받아 늦게 시작했다. 다행히 식사의 양은 적게 나왔다. 크루즈 하면 호화판으로 ‘때려 먹는 천박한 식사’가 머리에 남아있는데 크루즈측에서 경제적인 측면에서인지, 혹은 승객들의 다이어트를 위한 배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양은 적으면서도 깔끔한 식사로 정책을 바꾼 것 같아 반가웠다. 검소하고 질박한 식사, 그걸 지향하고 싶다.
입이 짧은 아이들도 크루즈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만족스러워 했다.
둘째 날은 바다에서
9층 부페식당의 통 창과, 객실의 창으로 내다보이는 바깥은 온통 물뿐이다. 수면위 에 안개와 구름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바다의 음영을 조절해 주고 있었다. 배 안에는 재즈의 선율이 흐르고 바깥에는 물새들이 떼를 지어 한가로이 날고 있다.
이 날은 종일 배로 북상중이었다. 유람선 안에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짐(gym)과 실내와 실외 수영장 등 온갖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내 눈에는 창 밖의 물만 바라보며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거나 하염없이 사유에 잠긴 사람들만 눈에 띄었다. 우리는 같은 과였기 때문이다.
유람선 안은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어도 될 정도였지만 덱으로 나가려면 긴소매와 긴 바지 때론 스웨트 셔츠나 스키 파카 같은 따뜻한 재킷도 필요했다.
알래스카에 머무는 동안 선글라스는 무용지물이었다. 내내 흐리고 비가 흩뿌리기도 했으니까. 이날만큼 물을 많이 본 날은 내 생애에 없었다. 온 종일 물과 바다와 잇닿은 하늘만 봤으니까. 바다는 검푸르다가 날이 저물어오면서 잿빛으로 변했고 시간은 파문조차 없이 조용히 고여 있었다. 흐름이 멎은 듯한 그런 시간이었다. 그리고 사유의 색채도 변해갔다.
물 속에는/ 물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시가 생각나는 그런 하루였다.
한여름에도 선상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빙하를 구경하기 때문에 긴소매 및 점퍼를 준비해야 한다.
케치칸(Ketchikan)
색채의 대비가 어찌 이리도 절묘한지. 새벽 객실 창으로 내다본 바깥엔 산 위에 쇼울처럼 검은 구름이 쳐져 있고 그 위로 하얀 보름달이 떠있었다. 뿌연 안개와 화사한 달빛이 공존하는 곳. 배가 움직이는지 멀리 희미하게 흔들리던 물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외진 곳에 이런 예쁜 어촌이 숨겨져 있다니. 멀리서 보니 산의 나무들은 침엽수들이라 품격 높은 신사의 기품을 풍기고 있다.
그런데 막상 오후에 산에 올라가 보니 불꽃(fire weed)이라는 라벤더 칼러의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낙엽수들도 상당히 많았다. 어촌이 작아 크루즈십이 직접 닿을 수 없어 예인선을 타고 뭍으로 가야 했다.
관광 상품 중에 제일 터프한 것이 지프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달려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었는데 우린 기꺼이 그걸 택했다. 4인용 군용차 지프 랭글러를 타고 자갈길과 시내를 건너 산비탈 길을 올라갔다. 10대가 떠났는데 내가 운전한 차가 가이드 다음 두 번째로 달렸고 뒤로 검은색과 빨간색 지프차 8대가 따라왔다.
길이 거칠고 굴곡이 심했으므로 옆에서는 계속 “브레이크!” “속도 줄여!”라는 간 졸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운장’의 배포를 십분 발휘, 시냇물의 물살을 가로지르며 냅다 자갈길을 달리곤 했는데 그 기분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짜릿하고 아찔했으며 뱃살은 저절로 빠졌다. 이 날 호수에서 카누도 타고 현지인들이 장작불에 구워주는 연어구이에 버터와 흑설탕을 녹인 소스를 발라먹는 것도 별미였지만 백미는 역시 지프투어였다.
얼음물 호수, 야생의 세계 만끽
주노(Juneau)
1880년도에 시작된 금광의 캠프촌에서 시작한 주노는 배가 아니면 비행기로 들어와야만 한다. 육로로 오는 길은 전혀 없는 ‘고독한 도시’, 스키타운 같기도 하고 스위스의 한 산골마을 같기도 한 알래스카 주도이다.
인구 3만1.000여명, 연중 700대의 크루즈 배가 들어오는 곳, 배가 직접 뭍에 닿아 있어서 도시로의 출입이 비교적 용이했다.
이 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빙하를 봤고 그 빙하가 녹아 내리는 폭포와 그 폭포가 만든 얼음물 호수를 봤다. 만델레이 빙하로 가는 길에는 이슬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는데 시냇가에서 아기 곰이 연어를 먹고 있었다. 맛있는 사시미, 혼자만 먹다니…
항구에 도착해 암벽등반 등 각종 레포츠를 즐긴다.
스캐그웨이(Skagway)
스캐그웨이는 금광촌 그리고 연어통조림 공장지였다가 지금은 자그마한 산림마을이자 관광촌이다. 산은 유장하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은 그 규모가 대항만에 비해 작아 정겹다. 기차를 타고 금광이 있었던 산을 한바퀴 도는 관광이 제격이었겠지만 가족들은 암벽등반을 원했다.
직각으로 내려꽂힌 암벽을 타기 위해 산 정상 가까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짐(gym)에서 트레이드밀 수십 분을 하는 운동량이 되고도 남았다. 암벽등반은 나를 뺀 가족들만 했는데 직접 해보지 못한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암벽등반을 지도한 도우미들은 미 전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동원된 청년들이었는데 겨울에는 유타주에서 스키강사를 한다고 했다.
근육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매의 백인 청년들이었다. 팁이나 수입이 쏠쏠한 것을 보니 돈은 꼭 도시에서만 벌리는 것은 아닌가 보다.
스캐그웨이에 있는 유콘 관광열차.
시카(Sitka)
재정 러시아가 이 땅을 소유하고 있을 때 수도여서인지 러시아풍이 거리 곳곳에 남아 있다. 시내 관광과 러시안 댄스를 관람하고 배로 돌아와 디너 때 마티니 한 잔을 했다. 디너가 끝나갈 무렵엔 항상 서버들이 일렬로 도열해 승객들과 함께 라인댄스를 하는 시간이 있다.
서버 중에는 인도·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직원이 많았다. 임금 때문이라고 했다. 비싼 백인만 고용해서는 타산이 맞지 않는단다. 3,000명 승선에 1주일에 600만달러 비즈니스인데도. 알콜에 약한 나는 마티니 몇 모금에 취해 가고 있나 보다. 적막하고 광활한 바다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위티어로 오는 도중 나타난 빙하
오후 5시, 빙하를 품은 산들이 도열하고 있는 곳으로 배가 들어가고 있다. 스키파카에 털모자까지 쓰고 9층 덱으로 올라갔다.
자연과 세월이 엮어 가는 장대한 서사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신비감이란 느끼는 이와 대상 사이에 은은한 장애물이 있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정서라고 했다. 폭포처럼 직각으로, 바다로 내려꽂힐 듯 쏟아지고 있는 빙하는 적나라함과 동시에 그 반대 개념인 아득한 신비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와 같이 늘 새롭다고 했던가? 산다는 것은 끝없는 탐구이고 시도이며 실험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탐구해 보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 시도해 보지 않은 것도 많다. 실험해 보지 않은 것은 더욱 더 많다. 빙하는 저렇게 천년만년 있었을 텐데 우리는 겨우 몇 십년을 살다가 간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초라한 질문 앞에 차마 입으로 소리내어 말할 수 없는 이름들이 떠오른다. 그들과 함께 내 삶의 뜰은 가꾸어지고 있다.
동물생태계 답습 등 여러가지 옵션 관광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앵커리지
위티어 항에서 앵커리지로 넘어오는 하이웨이는 한 폭의 수채화였다. 오는 길 2시간 내내 여인의 속옷자락 같은 우유 빛 물안개가 자욱했고 곰과 버팔로와 사슴 등 야생동물이 그림 같은 자연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장대한 알래스카의 자연은 결국 인간도 언젠가는 그 질서 속으로 돌아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해준다. 슬픔을 지워주지는 않지만, 그 사실을 알게 함으로써 어떤 힘을 선사해 준다.”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과 글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에 나오는 이 한 구절로 여행기를 마친다.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 예약 전 유의점
여행은 6월이 적기… 4개월전 티켓 구입을
비싸도 아웃사이드 캐빈에
긴소매 옷 1~2개, 상비약 및
여권-신용카드등 챙겨두도록
크루즈는 여행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가 됐다. 배편도 늘었고, 유람선이 출발하는 항구도 많이 늘었다. 다양한 상품이 소개되면서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상품을 구입할 확률이 높아졌다.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위한 유의점 몇 가지를 알아본다.
일반적으로 크루즈 여행은 비용이 매우 많이 들어가는 여행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난 10여년 사이에 크루즈 선박이 무려 3배 이상 늘어나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이로 인해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일반 크루즈의 7박8일 상품 가격이 때에 따라 500달러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는데 알래스카의 경우 가장 낮은 가격에 구입해도 1인당 1,100달러는 주어야 한다. 여기서 국내선 비행기 티켓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대부분의 여행상품은 미리 구입할수록 가격이 낮다. 크루즈 티켓도 예외가 아니다. 주류사회 소비자들은 보통 4개월에서 많게는 1년 전에 크루즈 티켓을 구입한다. 알래스카의 경우 여행시즌이 6월에 시작된다. 크루즈 회사들은 시즌 7~8개월 전인 11월부터 다음해 여름시즌의 마케팅을 실시한다. 소비자들은 이 시기에 바겐 티켓들을 여행사와 인터넷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알래스카 여행을 다소 춥지만 6월에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일단 관광객이 붐비지 않기 때문이다. 알래스카 대자연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영적·심적인 관광을 해야 하는데 7월과 8월은 북적이는 관광객들로 인해 풍경보다는 사람 구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단점이라면 연어가 본격적으로 돌아오는 시즌이 7월이라 연어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다.
알래스카 크루즈는 다른 코스에 비해 인사이드(inside) 방보다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아웃사이드 캐빈이 훨씬 가격이 높다. 망망대해 바다만을 보는 코스가 아니고 밴쿠버와 앵커리지를 이어 주는 해안선을 따라 길게 분포한 태평양 해안 내수면 지역(inside passage)을 지나가기 때문에 화려한 경치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알래스카의 경우 다소 가격이 높더라도 아웃사이드 캐빈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한여름에도 선상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기 때문에 긴소매 옷 1~2개 정도가 필요하고 수영복도 준비한다. 선글라스, 선크림도 필수. 상비약은 선내 병원에서 구할 수 있지만 평소 먹는 약이나 소화·지사·진통제, 멀미·감기약 정도는 챙겨야 불편하지 않다.
조류 관찰과 경치 구경을 위한 망원경,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 여행일지 작성을 위한 간단한 필기 도구도 준비한다.
가방에는 본인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선실번호 등을 기입한 꼬리표가 올바르게 부착되었는지를 확인한다. 터미널에 도착하면 짐은 포터가 선실로 옮겨준다. 비시민권자의 경우 알래스카 크루즈도 밴쿠버를 거치면서 입국수속을 하게 된다. 입국심사를 위한 서류들과 함께 신용카드, 여권 등을 잘 챙겨야 한다.
<백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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