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指鹿爲馬) 라는 고사가 있다. 이 말은 중국의 진나라 때 일로 사슴이냐, 말이냐 는 질문은 중국의 영의정인 환관 조고가 황제 호해 앞에서 던진 말이다. 이자는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고는 말을 바친다고 하자 황제가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자 조고는 신하들에게 이게 사슴이냐, 말이냐 고 물었다. 일부 신하는 사슴을 말이라고 하고 또 일부 신하는 사슴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조고는 사슴이라고 답한 신하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죄를 씌워 모조리 죽였다. 그후부터 승상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다시는 없었다는 내력이다.
지금의 우리 조국이 해도 너무 한다 할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어지간히 뉴스를 따라잡지 않고는 왜,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어리둥절해 하기 십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구에게선가부터 끊임없이 이게 사슴이냐, 말이냐 하는 질문에 답변을 강요당하고 있는 거나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를테면 노무현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실험이 무력 공격보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한국으로 오기에는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발언 뒤, 윤광웅 국방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북의 미사일이 군 사적으로 위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평가와는 다르다는 지적에는 정치외교적 수준에서 보는 견해와 군사적 수준에서 보는 견해는 직책에 따라 표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윤 장관의 얼버무림이었다. 과연 북의 대포동 미사일은 군사적 위협인가, 아닌가. 만일 한국의 신하들 에게 묻는다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 두려워 사실대로 답변하기가 아주 곤혹스러운 일이겠다.
이곳 워싱턴 백악관에서 9 14 한미 정상회담 이후 청와대 신하들이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왜곡해 오고 있다. 집권 좌파 세력은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대한 공약은 확고하다, 유사시에도 미 증원군 이상 없다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전작권의 이양과 한미연합사 의 해체는 동맹의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논문을 중국의 공식입장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공식입장으로 확인될 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소위 ‘대응 유보’가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원자바오 중국총리에게 유감을 표시했 고 원자바오는 양국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이 문제를 잘 다루도록 하라고 했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한 외교부의 답변은 이렇다. 위에서 결정된 것을 이행하는 것이 외교부의 임무라고. 과연 그런가.
따지고 보면 최근 빚어진 초유의 헌재 소장 공석 사태에도 이런 질문은 숨어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청와대가 편법으로 헌재 소장의 임기 6년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코드가 맞는다고 임기를 억지로 늘려 다음번 대통령이 할 일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건 또 그렇다고 치자. 납득하기 힘든 것은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대법원과 헌재에 의견을 물었는데 다 임기 6년이 합당하다고 답했다는 부분이다. 대법원은 대법원장 지명의 대법관을 한 사람 더 확보하려고, 헌재는 헌재의 위상이 낮아 질까봐 그렇게 답변했다는 것이다. 임기 3년의 헌재 소장이면 왜 위상이 낮아지는 지도 모르겠거니와 최고의 법 전문가들의 법에 대한 무관심이 놀랍기만 하다. 사슴이냐, 말이냐 의 질문에 서슴없이 말이라고 답한 셈이다.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모두 입을 다물고 이 질문에 사슴을 사슴이라고 답한 사람은 민주당 조순형 의원 한 사람 뿐이다. 최고권력자가 끊임없이 사슴이냐, 말이냐 라고 묻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리 없다. 우선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정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자기의 이익을 쫓아 눈치를 봐야 한다. 지금은 옛날과 달라 사슴이라고 답한들 죄를 쓰고 죽을 리 없는 세상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이런 스트레스를 한국국민에게 시도 때도 없이 강요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노무현 정권은 분명 잘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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