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칸 청년 호세 로페즈가 미국에 밀입국하여 도마도농장 일군이 된 것은 20년 전이었다. 열심히 일해 돈도 모으고 4년만에 영주권도 받았다. 결혼하여 두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타코 스탠드와 식품점, 두 개의 비즈니스도 오픈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던 그는 그러나 이민국의 추방령을 받고 지난해 멕시코로 돌아갔다. 97년 마약소지혐의로 체포되어 15개월 복역후 모범수로 가석방되었으나 석방 즉시 추방령을 받은 것이다.
만약 그가 캘리포니아에 살았더라면 추방령은 면했을 것이다. 초범으로 마약을 소지했을 뿐 사고팔지는 않은 그의 죄질은 연방형법과 대부분의 주법하에선 경범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사는 사우스다코다에선 중범으로 분류된다. 이민국이 그에게 적용한 것은 비시민권자가 가중중범 유죄판결을 받으면 추방하도록 한 1996년의 연방이민법 새 조항이다.
연방대법원의 2006-2007 새 회기가 2일 시작되었다. 로페즈 추방의 합헌 심사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취임후 두 번째 해인 금년 회기에서 다루는 첫 케이스다. 시작부터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가족과 생이별한 한 이민가장의 스토리가 얽혀있지만 대법원의 심리 요지는 난해하고 딱딱한 법리해석이다. 연방이민법의 추방대상이 되는 가중중범 조항엔 마약거래 범죄도 포함되는데 연방마약관련 기본법인 ‘규제약물 법’하에서 ‘중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고 규정되어 있다. 쉽게 말해 대법원 심리는 이 조항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그 해석에 따라 ‘마약소지 초범인 로페즈는 중범인가, 경범인가’가 결정된다.
연방정부는 주법에서 중범판결을 받은 이민자는 당연히 추방이라고 강경하게 주장하고, 미변호사협회등은 같은 범죄인데 거주지에 따라 추방여부가 달라질 수 있느냐, 마약거래자만을 추방대상으로 규정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한해 범죄기록으로 추방당한 이민자는 7만7천명에 이른다. 로페즈 소송은 복잡한 법리 해석이 그 승패를 가르겠지만 아차하는 한번의 실수로도 추방의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영주권자들에게는 상당히 중대한 의미를 지닌 판결이 될 것이다.
로버츠 대법원의 제2기인 금년 회기는 그 이념성향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첫 심리부터 이민 케이스이기도 했지만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민감한 사회이슈들이 앞으로도 줄지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점점 양극화로 치닫고 각 이념 세력이 선거결과를 좌우할만큼 조직화 되고 있는 세태이니 새 대법원의 이념성향은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다. 그건 로버츠 대법원장이 원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목표는 가능한한 만장일치의 판결이다. 제각기 법철학과 해석이 다른 9명의 이 나라 최고의 판사들이 만장일치의 합의를 이루려면 자연히 그 판결의 결과는 폭넓은 영향력을 끼치지 않고 심리중인 케이스에 한정된 극히 제한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목표에 충실하며 첫해엔 판결의 절반을 만장일치로 이끌어냈지만 금년에 그리 쉽지않을 전망이다. 특히 11월의 부분출산 낙태금지법과 12월의 공립 초중고교에서의 소수계 우대정책에 대한 위헌 심리는 이미 진보와 보수의 일대 격전을 예고하고 있다.
임신12주 이후의 외과수술 낙태를 예외없이 금지시킨 부분출산 낙태금지법은 연방대법원이 6년전 네브라스카주 낙태금지법에 위헌판결을 내린후 부시행정부가 같은 내용을 연방법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낙태 기본권에 대한 도전은 아니지만 법원이 어떤 특정 낙태시술을 위법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가에 대한 첫 시험케이스라 할 수 있다.
공립학교의 소수계학생 우대정책에 대해서도 3년전 연방대법원은 합헌판결을 내렸었다. 그땐 대학교였다. 이번엔 시애틀 등의 고교에서 흑인학생 쿼터 때문에 백인학생들이 집근처 학교에 못가게 되자 학부모들이 제기한 역차별 소송이다.
6년전 낙태금지법 위헌판결과 3년전의 소수계우대 합헌 판결, 둘다 5대4로 결정되었고 그 스윙보트는 지금은 은퇴하고 없는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행사했었다. 현 대법원은 보수 4명, 진보 4명의 색깔이 선명하고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 한명이 온건보수로 약간 오른편으로 기운 중간에 서있다. 위의 두 판결에서 다 보수 편에 서서 반대표를 던졌던 케네디가 이제는 중심을 잡아줄 스윙보트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로버츠대법관은 판사들의 가치관이 아닌, 해당 케이스에 적용되는 법조항에 근거해 판결하는 대법원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사법부의 액티비즘에 대해 거듭 경고하며 자신은 이념주의자가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그의 이런 신념이 얼마나 지켜질 지는 이번 회기의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이 신념을 지킬 수 있다면 그는 최연소 대법원장이라는 기록에 더해 사법부의 이념전쟁을 종식시킨 대법원장으로도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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