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하원은 어제 통과 시켰고 상원에선 오늘 통과될 것이다. 지난 두 주 워싱턴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구금자 법안(Detainee Bill)이다. 이번 주 연방의회는 시간과 숨가쁜 경주를 벌였다. 처리해야 할 법안은 산적했는데 중간선거까지 5주밖에 안남은 것이다. 다음 주부터 의회는 사실상 휴회에 들어간다. 재선을 앞둔 의원들이 막바지 캠페인을 위해 지역구로 날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분주한 이 와중에서 테러용의자에 대한 구금·신문 및 재판에 관한 입법화가 조급하게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전문가들조차 찬반을 표하기 쉽지 않다고 인정한다.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영향과 파장이 상당히 클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말 연방대법원은 부시 대통령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된 테러용의자들을 간이법정인 군사위원회 재판을 받게한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보호장치가 적은 간이재판에 이들을 회부한 것은 미 국내법에 어긋나는 부시 행정부의 월권행위이며 전쟁포로에 관한 국제법인 제네바협정에 대한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테러용의자를 전쟁포로로 인정하지 않는 백악관은 만만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의회에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백악관이 몇주전 선보인 법안은 상당히 강경했다. 포로에게 잔혹행위를 금지하고 인간적 대우를 규정한 제네바협정 3항을 재정의하여 그 이상의 거친 고문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물고문과 잠 안재우기, 벌거벗겨 모욕주기등 잔혹한 고문을 합법화시켜달라는 셈이었다.
강경보수가 주도한 하원 군사위는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각계의 비판이 빗발쳤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만이 아니라 전직 군사 및 안보 관계자들도 공개적으로 강력히 반대했다. 반발은 공화당 내에서도 나왔다. 존 매케인 등 3명의 중진 상원의원들이 주도한 반란으로 상원군사위는 백악관 법안을 대폭 완화시킨 대체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후 한 주동안 백악관과 공화당 반란파는 불편한 반목을 추스르며 지난주 ‘극적으로’ 타협에 성공했다.
제네바협정 준수에 합의한 백악관의 양보로 ‘타협의 틀’이 마련되었다고 생색을 냈으나 어떻게 보아도 이번 구금자 법안 통과의 승자는 부시 행정부다. 합의 내용은 복잡하다. 그러나 결론은 간단하다. 테러용의자에 대한 CIA의 강도 높은 신문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군사위원회에 의한 재판도 합법화되었다. 제네바 협약대로 가혹한 고문은 위법이지만 ‘대체’ 신문 테크닉은 허용된다. 무엇이 ‘대체’ 테크닉이며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것인가는 부시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백악관은 테러용의자를 전쟁포로가 아닌 ‘불법적인 적의 전투원(Unlawful enemy combatant)으로 규정한다. 그 정의가 광범위하다. ‘미국에 대해 적대행위를 하거나 그 적대행위에 의도적으로, 물질적으로 지지하는 자’다. 외국인은 물론 미시민권자도 해당된다. 합법적 미 이민자도 ‘유죄 증명이 아닌, 무죄가 증명될 때까지‘ 구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화당 중진들이 마지막까지 가장 문제를 삼은 것은 용의자들의 인신보호영장 청구권을 박탈한 부분이다. 억울하게 구금된 죄수들조차 억울함을 호소할 법적장치가 차단된 것이다. 이 법안 자체가 연방대법원에서 위헌으로 규정될 소지는 여기에 근거한다. 며칠 전 미국의 전직대사 31명은 합동으로 연방의회에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이런 구절이 들어있었다. “미국이 구금중인 외국 국민에 대해 합헌성 여부를 가려줄 인신보호영장 청구권을 거부한다면, 세계에 민주주의를 심겠다는 부시행정부의 노력은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원 청문회에서 한 전직 연방검사도 이렇게 경고했다. “나와 상원의원 여러분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죽고 난 훗날, 미국은 국가적인 사과를 해야할 것이다. 2차대전때 강제 수용했던 일본계 미국인에 대해 이제 와 사과했던 것처럼”
강도 높은 신문을 못하면 테러전쟁에서 승리하기 힘들다는 부시대통령의 말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솔직한 고백이다. 미국이 얼굴없는, 비열한 적들과 위험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가장 확실한 가이드가 도덕적으로 떳떳한 대의명분인 것도 사실이다. “세계가 미국의 테러전쟁의 도덕적 근간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비판은 새겨들을만한 경종이다.
의회가 이왕 마련하는 특별법인데 미국의 가치관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테러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내용일 수는 없었을까. 좀 더 시간을 갖고 좀 더 면밀히 검토하여 신중히 표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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