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음악 인생, 명지휘자 지휘자 정명훈 인터뷰
내년 6월 시카고심포니와 협연
지난 21일부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와의 협연을 위해 시카고를 방문한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지난 26일 CSO와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시카고 다운타운 포시즌 호텔에 머물고 있는 그를 만났다. 세 아들들이 모두 성장한 이후로는 항상 부인과 함께 연주 여행을 다닌다는 정명훈씨는 본보 기자와 인터뷰하기 전에도 다정하게 부인과 함께 아침 산책을 다녀온 모습이었다. 다음은 마에스트로라는 칭호답지 않게 소탈하게 인터뷰에 응하는 정명훈 지휘자와의 일문일답이다.
▲시카고는 자주 오는지?
-작년 CSO와의 협연을 위해 시카고를 13년만에 방문했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 보다 시카고가 많이 깨끗해진 모습이다. CSO와의 좋은 연주만큼 시카고에 대한 인상도 좋아졌다. 아무래도 유럽에서 오래 활동을 해 와서 미국 오케스트라나 도시에 익숙한 편이지만 이번에 시카고에 다시 와 보니 다운타운의 건물들과 미시간 호수가 어우러져 굉장히 아름답다는 인상이다.
▲첫 공연을 지켜봤는데 관객 분위기나 공연 전체가 참 좋았다. 이번 CSO와의 협연은 어땠나? -유럽 오케스트라와 미국 오케스트라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좀더 테크닉 중심이라고 할까. 게다가 정식 지휘자가 아닌 초대된 입장으로 오케스트라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완벽하게 이끄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만족스러운 편이다. CSO 자체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오케스트라이기도 하고 작년에 지휘할 때도 느꼈지만 단원들과의 호흡이 잘 맞는 편이다.
▲서울 시향과 2008년까지 계약이기도 하지만 CSO에 지휘자로 온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결정된 사항이 아무것도 없다. 단 지휘자가 계약에 얽매여 본인의 음악 세계와 맞지 않는 오케스트라와 활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음악 세계가 안 맞아) 떠나야한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토벤 교향곡 9번으로 마에스트로 칭호를 받았는데 이번 CSO연주에도 포함됐다. 그 곡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
-베토벤 교향곡 중 첫 번째로 지휘를 한 것이 9번이다. 개인적으로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곡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호흡이 절대적인 곡이다. 이 곡의 연주를 통해서 그 오케스트라와 내가 얼마나 잘 맞춰나갈 수 있는지 가늠할 수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CSO는 나의 스타일과 잘 맞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악보없이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사실 지휘라는 것이 테크닉만으로 본다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정말 형편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또한 프로인 오케스트라 단원들 정도라면 모든 박자를 집어준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결국 지휘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악보에 대한 철저한 해석과 오케스트라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지휘자가 이를 가장 잘 이끌어내기 위해 악보를 모두 외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10월에 ‘윤이상 음악회’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는데.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가 나왔지만 북한 정부의 입장 변화로 실패한 적이 많았다. 북한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실 평양을 방문한다고 해서 북한을 안다고 알 수는 없지만 북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악을 나누면서 같은 민족으로 느끼는 점은 많을 것이라 본다. 현재 윤이상 음악회를 이후 북한 오케스트라를 초청 서울 시향과의 협연도 추진중에 있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특성은 뭐라고 생각하나?
-한국인의 특성은 뜨거움이다. 뜨거운 민족이 한국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지휘를 하면서는 아직까지 뜨거운 연주를 경험하지 못했다. 물론 여러가지 원인때문이지만 세계적인 음악학교에 많은 연주자들을 배출하고 있는 상황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수준은 형편없이 낮다.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부족한 편이고. 하지만 여태까지 한국 정부가 문화 산업에 대한 지원을 하는데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던 점도 인정한다. 대중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많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음악을 공부하는 한국학생들이 많다. 어린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음악이 성공의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성공을 위해 음악을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음악가의 삶은 음악을 정말로 좋아해서 그냥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면 지속하기에 참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삶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집의 경우에도 아이러니 하게 큰 아이에게만 어렸을 때 피아노를 시켰는데 오히려 음악 교육을 시키지 않은 둘째, 세째 아이가 나중에 음악을 하겠다고 스스로 선택하고 큰 아이는 다른 분야의 일을 하더라. 또한 지휘자와 연주자의 특성상 조금 다르겠지만 음악가에게는 많은 경험도 필요하다. 특히 연주자의 경우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삶의 폭이 좁아지는 경향이 있어 위험하다. 꼭 다양한 경험을 해 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모든 경험이 그의 음악에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 태어나도 음악을 하고 싶은가?
-다시 태어나서 뭘 다시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현재에 만족한다. 음악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없다면 존재 의미가 없다. 음악외에 굳이 좋아하는 일을 꼽자면 젊은 시절에는 운동이었고 지금은 요리 정도. 지금 상황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되나?
-26일 연주를 마치고 27일 뉴욕으로 갔다가 파리로 출발할 예정이다. 한국에서의 활동도 즐겁지만 유럽이 아직 삶의 근거지라고 볼 수 있다. 유럽에서 오래 활동하기도 했고 런던심포니나 라스깔라 오케스트라는 오랜 친구같은 존재다. 시카고에는 내년 1월 프랑스 쪽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위해 다시 시카고를 방문한다. 물론 CSO와의 협연도 6월에 다시 있을 예정이다.
김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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