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운송업은 화물 자체가 바로 보스이다. 화물차량 운전기사가 편하도록 화물이 따라와 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그야 말로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화물은 필요로 하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서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해야만 하고, 준비된 화물은 차량과 운전자를 찾게 된다는 이치를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LA를 떠나서 대륙을 가로질러 며칠을 한 2,500마일 달리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수다를 떤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느냐”는 질문에는 아주 자신 있게 답을 하지만 “언제 돌아오느냐? 지금 가는 곳에서 다음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질문에는 할 말이 없다. 지금 달고 가는 짐을 풀어 놔야 만 다음 일정이 잡히는 것이다.
예외는 있을 수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달고 다니는 트레일러가 비워져야 다음 일정이 주어진다. 그것은 많은 변수, 즉 일기, 길 사정, 차 사정, 사람사정 등이 있어 배달이 늦어질 수가 있어서 미리 다음 일정을 잡아 놓으면 계속적으로 일이 꼬일 수가 있다.
집에서 첫 번째 목적지는 알고 떠나지만 그 다음은 그때 가봐야 알 수 있고,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다가 10여일 후에나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잡혀진다. 무리를 하면 빨리 올 수도 있지만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니 필요 없이 자주 집에 오는 것은 직업상 그리 잘 하는 일이라고 할 수가 없겠다.
최우선의 임무는 정해진 날에 안전하게 배달을 하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일정이 빡빡하게 잡히게 마련이고, 그래야만 수입이 올라가기 때문에 규정 속도로 가면서도 차질 없이 운행을 해야 하니 자연 샤워를 한다든지,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양보하면서 될수록 많은 시간을 운전대를 잡게 된다.
이번 일만 마치고는 옷도 갈아입고, 면도도 하고, 샤워도 하고, 맛있는 것도 좀 먹고....
안전하게 정시에 배달을 끝내고는 송장에 싸인을 받아드는 순간, 다음 일이 어떻게 될 지가 궁금해진다. 여러가지 벼르던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또 다음 일에만 관심이 가 있다. 새로운 일을 잡아놓고 나서 하려고 벼르던 일을 해야지, 그리고 다음 일은 그리 서두르지 말고 좀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아야지 라고 맘을 조금 바꿔 먹는다.
일이 끝나고, 다음 일이 연결되는 그 공백시간에는 어딘지도 모르는 광활한 벌판에서 기약도 없이 마냥 기다리고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있다.
많은 경험 있는 운전자들은 심하게는 4,5일씩 할 일 없이 시간을 허비한 기억들을 다 가지고 있다. 차분히 신변 정리를 하고, 피곤함을 달래는 아주 좋은 기회를 다 놓치고는 다음 일정이 잡히면 또 허겁지겁 운전대를 잡고 또 다시 벼르던 일에 관하여 생각하면서 길을 달려간다.
학교 다닐 때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하면서 시험만 끝나면 뭐 뭐를 해야지 라고 벼르다가도 시험이 끝나면 뭘 벼르고 있었던가 조차도 잊어버리고 그 다음 시험 때에 가서야 후회하면서 이번 시험만 끝나면 하면서 다시 벼르던 그 버릇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느낌이다.
사업이 왕성하여 돈푼께나 만지던 때는 ‘조금만 더’하는 마음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미루며 벼르기만 했고, 욕심은 현실적 치부를 항상 앞서가기만 해서 남도 좀 도우며 선심을 쓰고 싶다던 이전의 각오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왔었다.
지금은 이럭저럭 십 여대의 차량을 굴리며, 운송업을 하고 있어 물질적인 면에서는 다소 여유가 생겼다. 멀리 있고, 그리고 덩치가 큰 선행을 베풀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또 다시 벼르기만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매일 반성하며, 지금 할 수 있는 일, 작으면 작은 대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먼 길을 떠나는 운전기사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찾아 하고 있다. 큰 차를 몰며, 대륙을 가로질러 길을 떠나는 트럭에 2,3일은 신선하리라 생각되는 과일 한 봉지를 넣어주는 일이다.
신 영 트럭 운수업 roadandtr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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