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도, 작가도 없는 짤막한 시가 9.11테러 희생자 추모 웹사이트에 올라있다.
‘문밖에 촛불을 밝힌다 / 그 많은 이름들을 기억하려 애쓰며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가,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말없이 남겨졌나를 생각하며…/ 아직도 그들은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 그 깊은 흙더미 어딘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질 그날을.
2,996명. 지난해 9.11테러 4주년때 나온 희생자 공식집계다. 그중 24명은 아직 ‘실종’으로 분류된다. ‘이종민, 24세’도 그 속에 들어있다. 한국공관이 밝힌 한인사망자는 18명이다. 사망자만 658명이었던 증권회사 캔터 피츠제랄드사의 피해는 충격적이었다. 회사의 추모 사이트에 들어가 한인들의 이름을 발견한다, 한명, 두명, 세명…가족과 친구와 동료,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이 보낸 글들이 아직도 눈물겹게 올라오고 있다. 추모 페이지를 넘기다 한 곳에 멈추어 선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매일매일 보아온 듯한 반듯한 한인 청년의 미소가 눈길을 잡아끈다. 강준구, 34세, 시스팀 분석가 - 누이동생들이 올린 사연을 읽는다.
“…우린 신에게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그 비극적인 9월11일 아침에 왜 우리 오빠를 살리지 않았느냐고. 왜 그가 하루 전 월요일에 회사에서 실직당한 20여명 속에 끼지 않았는지, 왜 그가 감기가 채 낫지도 않았는데 그 화요일 아침에 출근했는지, 왜 아직 미혼이어서 자녀없는 우리들이 대신 희생될 수 없었는지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랬다면 언니와 조카들은 남편없이, 아빠없이 남겨지지 않았을텐데요. 아버지에게 드림 카를 사드리겠다고 약속했던 다정한 외아들을 잃은 우리 부모의 슬픔을, 7년동안이나 직접 키운 맏손자를 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 우리에겐 오빠가 가장 필요한 힘든 시기인데…” 14세에 도미해 일 나간 부모를 대신해 세명의 어린 누이동생들을 공부시키고 돌보면서 아이비 리그로 진학했던 그의 모습에서 전형적인 한인 이민가정의 아들들을 본다.
“joon koo oppa”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누이동생들은 고백한다. “한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도, 우리가 오빠를 얼마나 우러러 보았는지도 말한 적 없었지. 우리 가족은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었으니까…안녕이라고 인사할 기회조차 못가졌는데. 한밤중 눈물이 흐를때면 이별은 잠깐이고 우린 곧 다시 만날 것임을 기억하려고 노력해. 그러나 지금은 너무너무 보고싶어요”
5년 전이다. 긴 세월 같기도 하고, 바로 어제 같기도 한 시간 속에서 그 날을 얼마쯤은 잊고 얼마쯤은 생생하게 기억하며 미국인들의 삶은 계속되어왔다. 그러나 변화된 일상이다. 어떤 변화인가. 다양한 분석이 제시된다. 9.11 이전엔 미국인들은 외교정책 방향 같은 것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탁상공론처럼 여겼다. 이제는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직결된 이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국가의 안보가 달린 외교정책은 세금 못지않게 미국인의 일상 이슈로 다가왔다.
현재 미국에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상황은 9.11에 얽혀져 있다.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으로 심화된 유럽과 중동의 반미기류도, 해프닝이 속출하는 세계의 테러 노이로제도 9.11의 소산이다. 테러직후 전세계가 보냈던 성원과 지지는 부시의 테러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사라졌다. 뜨거운 애국심으로 하나가 되었던 국내여론도 보수와 진보로 양극화되어 맞서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안전했던 ‘수퍼파워’ 미국의 국민들은 내 주변으로 다가 온 안보위기를 처음으로 체험하면서 달라졌다. 빌딩 앞에 콘크리트 방어벽이 세워지고, 정부청사 이건 풋볼구장이건 가방 열어보이고 신발 벗어야하는 검문검색이 계속되는가하면, 하이웨이엔 수상한 자를 신고하라는 사인판이 세워졌어도 불평하지 않는다. 공항에서의 긴 줄과 까다로운 짐 검사, 사생활을 침해하는 도청과 거래내역 추적도 기꺼이 감수한다. 민주당과 진보적 언론들은 ‘도덕적 명분을 잃은’ 부시의 테러전쟁을 맹렬히 비판하지만 여론의 다수는 ‘안보가 우선’ 쪽에 서 있다. 아직은 그렇다.
9.11을 통해 테러의 파워를 목격했지만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리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금속탐지기 설치나 기내 로션반입금지로 안전이 보장된다고 믿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늘의 아이들이 내일의 테러리스트로 자라고 있는 국제정세가 계속되고 있는한…”이라는 한 중동 특파원의 보도가 그같은 불안의 근거를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5년전 그날의 재난은 ‘본질적으로 정치에 관한 것도, 안보에 관한 것도 , 테러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는 몇년전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되새겨본다. 그들의 죽음은 한꺼번에 수천 가정의 저녁식탁에 영원한 빈자리가 생겼음을 뜻한다. 각 개인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아물기 힘든 상처를 남겨놓은 죽음이다.
3천에 달하는 ‘아까운’ 죽음은 무엇을 남겼을까. 9.11테러 10주년이 되면 미국은 그 해답을,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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