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학자들은 1930년대와 40년대를 ‘대압축의 시대’라고 부른다. 계층간 소득의 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시기다. 물론 대공황이후 경제부흥을 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주요인이었다. 제조업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67%나 늘어나고 최고 부유층 1%의 실질소득은 17% 하락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에 의하면 이때가 미국의 중산층이 태동한 시기다.
그후 70년대 초까지는 중산층의 황금기였다. 미국의 생산성과 중산층의 소득이 똑같이 104%나 되는 증가율을 기록했다. 한 베이비부머는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자랄 때 우리집은 중산층이었지요. 아버지는 회사에 다녔고 어머니는 주부였어요. 부자는 아니었지만 가난하지도 않았지요. 집과 자동차, 약간의 땅도 있었고, 은행에 저축도 있었으니까요. 우리형제들은 비싼 것은 못 사도 필요한 것은 다 가질 수 있었고 아파도 보험이 있으니 걱정이 없었지요…”
열심히 일하면 별로 쪼들리지 않고 대부분 집과 차를 사고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전 세계인의 동경의 대상이며 희망이기도 했던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이같은 미국의 중산층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이후다. 그후 20여년동안 최고 부유층의 실질소득은 135%나 늘어났다. 나머지 대다수의 실질임금은 정체되거나 하락했다.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기 시작하면서 중산층도 점점 더 안정을 잃어갔다.
29일 발표된 미 연방센서스국의 보고서는 이같은 추세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의 중간가구소득이 4만6,326달러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1.1% 늘어난 숫자지만 증가분은 65세이상 노년층의 투자와 소셜시큐리티 소득에 해당한다. 65세이하 9천만 가구의 소득은 0.5%가 줄어들었다. 무보험인구는 4,660만명으로 전년보다 130만명이나 늘어났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상황은 상당히 좋다. 2004년의 경우 4.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미 최고부유층 1%의 실질소득은 자산증가를 빼고도 12.5%나 늘었다. 중산층을 포함한 대부분에겐 풍요 속의 빈곤이다.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 이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연소득 10만달러에도 주택 모기지와 관리비, 자동차 유지비, 의료보험, 두 자녀 대학학비…‘필수 비용’을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충분히 가난하지는 못해’ 자녀의 학비보조 혜택도 받지 못한다. ‘중산층이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세금을 내는 사람, 미국을 떠받치고 있지만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잊혀진 계층’이라는 비아냥도 일리가 있다.
누가 중산층인가. 개념정의도 정확치 않고 소득에 따른 분류도 여러 가지다. 중간 20%인 연소득 2만5천에서 10만달러 계층을 꼽기도 하고 연소득 1만4천달러에서 7만9천달러인 60%를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숫자상의 중산층일 뿐이다. 전통적 의미의 중산층, ‘안정적’인 중산층 라이프스타일은 실현하기도, 유지하기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다수의 불만이 높아지면 정치가 뜨거워지게 마련이다. 두달 남은 선거와 2008년 대선까지를 겨냥, 공화당의 안보이슈에 맞서 민주당이 중산층을 되살리는 ‘아메리칸 드림’ 이슈를 들고 나왔다. 집권 보수파들은 소득의 불균형은 기술혁신에서부터 세계화된 경쟁에 이르기까지 경제 환경변화의 소산이며 정권의 책임은 아니라고 강변하고 야당 진보파는 부유층 세제혜택과 근로자 임금 및 베네핏 삭감을 부추긴 경제정책의 탓이 크다고 공격한다.
양쪽 다 일리가 있다. 경제환경 변화는 컨트롤하기 힘든 필연적 현상이다. 또 소득의 격차는 자본주의 경제의 원동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장의 혜택이 극소수에만 편중된다면, 그래서 중산층을 포함한 대다수의 꿈이 무너진다면 그 사회는 건강할 수가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정치를 바라본다. 성장의 혜택이 폭넓게 공유될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고민인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획기적 개혁일 수도 있고 비숙련 근로자에 대한 훈련교육일 수도 있으며 중산층에 대한 자녀학비 보조나 세제혜택 확대일 수도 있다.
사흘 후면 노동절이다. 풍요로운 삶을 세계 어떤 나라보다 폭넓게 누려 온 미국인들이 ‘열심히 일하면 실현되는 아메리칸 드림’을 기리는 축제일이다. 노동절을 계기로 선거의 열기도 뜨거워진다. 중산층은 휘청대는데 집권당이 계속 ‘경제는 호황’이라고만 주장한다면 유권자들은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지난봄 퍼레이드 잡지가 실시한 서베이 결과에 의하면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84%나 되었다. 이 빌, 저 빌 다 보내고 나면 여유자금이 전혀없다는 응답이 83%나 되었고 ‘은퇴나 휴가는 잊고 산다’도 절반에 달했지만 80%가 아메리칸 드림의 성취는 아직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아직 아메리칸 드림을 믿고 있는 중산층입니까.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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