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주지사선거가 어느새 10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아직 민주당 후보 필 앤젤리데스의 존재는 분명치가 않다. 상처투성이 현직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의 발목을 낚아채기는커녕 건드리지도 못한 채 예선 후 두 달을 훌쩍 넘기고 있다. 사실 앤젤리데스는 색깔이 선명한 정치인이다. 당의 정책을 충실히 지키며 신념을 굽히지 않는 배짱도 있고 입장을 쉽게 바꾸지 않는 일관성도 뚜렷하다.
그러나 정치인의 자산으로 꼽혀온 ‘일관성’이 이번 선거전에선 별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듯하다. 오히려 슈워제네거의 드라마틱한 ‘변신’이 유권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참신한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를 내세워 중도파 유권자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주지사에 당선되었던 그는 취임 몇 달이 못되어 강경한 보수우파로 탈바꿈했었다. 화합정치 공약은 내팽개치고 민주당 주도 주의회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소모적 정쟁의 하이라이트가 지난 11월의 특별선거였고 자신의 재임 2년에 대한 중간평가였던 4개의 주민발의안 투표에서 그는 참패당했다. 보통 정치가였다면 그의 정치생명은 여기에서 끝났어야 했다. 반대로 그는 힘차게 외쳤다 - “마이 미스테이크!”
즉시 재선을 겨냥한 변신에 돌입했다. 취임 초기 70%에 달했던 지지율이 순식간에 절반으로 폭락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감수해야했던 그는 빠르게 움직였다. 포퓰리즘을 끌어안았다. 긴축예산을 완화시키며 정부지출을 9%나 늘였다. ‘계집애 같은 녀석들’이라고 멸시했던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화해의 악수를 열렬히 청했다. 제스처에 그친게 아니었다. 초당적인 예산안도 순조롭게 합의를 끌어냈고 민주당의 기대를 넘어설 정도의 대규모 기간시설 확충 공채발의안도 마련했으며 이번 주엔 지난해까지 강력 반대해온 최저임금 인상안과 중산층 처방약 할인혜택안까지 합의했다. ‘정쟁보다는 민생위해 일하는 새크라멘토’라는 느낌이 유권자들에게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한때 앙숙으로 대립했던 민주당의 파비안 누네즈 하원의장과는 ‘절친한’ 친구로 발전했다. 누네즈가 “슈워제네거는 인간적으로 정말 좋은 사람”이라며 “때때로 난 ‘그가 공화당인 걸 잊지말자’고 다짐합니다”라고 털어놓을 정도다.
금년11월의 중간선거는 ‘민주당 쓰나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렁에 빠진 이라크전쟁과 개솔린값 인상으로 쪼들리는 서민 가계, 의회 로비 스캔들에 국내 도청까지 반 공화당 정서가 민주장의 압승을 몰고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연히 전국 공화 후보들의 기피대상 1호는 지지율이 바닥에 떨어진 부시 대통령이다.
슈워제네거의 주요전략중 하나도 부시와 거리두기다. 부시와 특별히 가깝지도 않고 또 공화당 내에선 비주류이지만 앤젤리데스가 ‘부시-슈워제네거’ 공격에 성공한다면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먼저 부시행정부에 정면반격을 감행했다. 부시가 반대해온 지구온난화 대책, 줄기세포 연구지원등에 적극 나서며 “캘리포니아는 연방정부가 행동을 취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공개 선언도 불사했다.
이처럼 내놓고 변신했으니 공화당 보수파의 반발은 당연하다. 공화당 표만으로는 부족하니중도 유권자의 마음을 잡아야하는데…공화보수층이 앤젤리데스를 찍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아예 기권하면 큰일이다. 양쪽 다 잡아야 한다. 양다리 작전이다. 민주아성 캘리포니아의 공화당 후보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난 주말 슈워제네거의 캠페인이 양다리작전의 전형적 행보였다. 토요일엔 공화당 주전당대회에서 불법이민 강경대책을 역설했고 일요일엔 민주당의 전통표밭인 사우스LA 흑인교회의 흥겨운 예배에 참석해 ‘마음 따뜻하고 정의감 가득찬 주지사가 되라’는 기도에 머리 숙였다.
논쟁 심한 이민법 이슈에서도 양다리가 확연하다. 보수파들에겐 국경수비 강화와 불체자 운전면허 발급 반대를 강조하고 라티노 모임에선 초청노동자 프로와 기존 불체자 구제를 포함한 포괄적 이민 개혁안을 지지한다. 기본 입장은 ‘국경수비는 강화하되 인도주의를 지킨다’이지만 대상에 따라 강조하는 부분이 다른 것이다.
좋게 말해 실용적이고 나쁘게 말해 기회주의적인 슈워제네거의 변신과 양다리는 지금까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1월에 39%였던 업무평가 긍정도가 7월엔 48%로 뛰어올랐다. 앤젤리데스도 45% 대 37%로 여유있게 리드하고 있다.
민주당 보다 더 민주당 같은 슈워제네거 때문에 입지를 제대로 확보못한 앤젤리데스는 ‘증세를 주창하는 진보 좌파’로 채색당한채 아직 고전 중이다. 그에겐 노동절 연휴까지의 앞으로 열흘이 중요한 시기다. 전통적으로 이때가 전격반전의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간다. 노동절 연휴를 기다리며 미 전국은 선거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그 선거의 결과가 우리의 일상을 좌지우지 할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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