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난들을 잘 키워 자신이 완쾌된 것 같다는 윤연순씨
웃음 되찾은 윤연순 씨가 부르는 희망의 노래
“죽음 가까이 가니 삶을 보는 눈이 달라져요”
“암환우들과 고통 나누며 투병의지 북돋고 싶어
사는 것이 남과의 경쟁이 아니란 걸 알았다면…”
암 선고받고 감사한 마음이 앞섰다
98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윤연순씨는 지금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일까,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 원망하는 보통 암환자들과 그는 달랐다. 92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큰 사고로 죽어야 할 사람이 지금껏 생명을 부지했다는 것도 감사했고 사는 이유가 됐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신의 도움이 없어도 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치료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암 선고받기 몇 달 전 재혼한 남편이 ‘그럼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 바람에 살아야 할 이유를 또 찾았다. 결국 남편의 끈질긴 설득에 굴복당해 수술을 받았다.
이 난들이 나를 살렸다
그 뒤 6개월간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을 주사로 투여하는 키모 치료를 받았다. 내 머린 안빠질 거야 장담했건만 자고 나면 한웅큼씩 머리카락이 손에 쥐어졌다. 제때 잠을 잘 수도 없었고 토하는 일은 예사였다. 이때 남편 친구들과 이웃들이 쾌유하라는 의미로 그에게 난을 선물해주었다. 둘러보니 그의 집 곳곳에 난 화분이 자리해 있다. “지금도 이 난들을 소중하게 키워요. 이 난들은 내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하는 행복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겠다는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온몸이 뒤틀리는 키모 치료과정에서 윤씨는 오히려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잘난체 하며 살던 마음도 욕심도 버려지고, 내 자신을 넉넉하게 바라보고, 큰 잘못을 해도 용서하게 된다.” 가까이 갔던 죽음의 위기로 오히려 삶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 것이다. 수술 후 8년간 재발방지하는 약을 복용하고 있다. 앞으로 1년 더 먹어야 한다. 때로는 약의 부작용으로 출혈 현상을 보일 때는 초긴장, 병원을 오가며 숨을 몰아쉴 때도 있다.
요즘 그는 신앙생활에 빠져 있다. 친정어머니를 모셔만 드릴려고 했는데 어느날 말씀이 그의 마음밭에 떨어져 씨앗을 틔웠다. 30여년간 교회 문턱과 담을 쌓고 지내다가 지금은 예배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엔 오클랜드 우리교회(담임 최병구 목사) 부엌에 들어가 밥을 푸기도 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정삼각형 같았던 세 식구의 삶
윤씨가 사고로 남편을 잃고 자신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말도 못할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간호사에게 쓸 것을 가져달라고 하는 부탁이었다. “그때 나는 보험도 없고 돈도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간호사는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하지만 몸이 아픈 것보다 다음달 렌트비가 더 걱정됐다.” 그후 그는 라피엣에 있는 마케팅회사를 다니며 두 아이를 키웠다. “그때 우리의 삶은 정삼각형 같았어요. 어느 한 각이 흐트러지면 다 무너지는… 나는 아이들을 라이드해주고, 퇴근해서 저녁해먹고, 다시 아침에 출근하고…꽉 짜여진 틀 속에서 지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숨돌릴 만해질 무렵 병이 발견되었다. 아이들은 우리 엄마가 고생해서 걸렸다며 울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앞섰다. 다시 살아야 할 이유가 명확해지자 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로부터 미리 자신이 겪어야 할 과정들을 전해들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고 7-8년간 암예방 요리책을 스터디하며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았다. “쉰살이 넘어 몸의 기능도 다 끝났는데 몸의 일부를 떼어낸다한들 크게 상심할 일도 아니다 싶었다.”
형제의 아픔은 곧 내 아픔
암 발견 직전부터 알바니 버클리 굿이어 타이어(대표 김훈)의 제너널 매니저로 일하는 그는 오히려 자신이 암환자였다는 사실을 서슴없이 꺼내놓는다. “의외로 암환자들은 많다. 침울해 하는 고객들, 직원들과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암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내 수술자국을 보여주며 나도 그랬다고 말해준다. 그러면 그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이 상처가 사람들의 마음을 오픈시킬 줄 몰랐다.”
그는 이제 자신이 겪는 것과 유사한 일을 겪을 사람들에게 도움주기를 원하고 있다. ‘형제끼리는 그 아픔이 내 아픔이 되는 것’이라며 부끄럼없이 속내를 나누려 한다.
“우리는 모두 암세포를 가지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길 수도 있고 문제를 자학해서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사는 것이 남과의 경쟁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현명하게 포기한다는 것이다. 늙으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질병이다. 질병도 잘 다스리기만 하면 유익할 수 있다.”
그는 지난 7월 EB 암환우 및 가족후원회 창립총회서 ‘살아있는 것이 큰 축복’이라며 완쾌간증을 했고 지난 19일 2차 모임에 나가 암환우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암환자들은 육체적인 질병의 후유증보다 더 큰 심리적인 병을 얻게 된다. 병은 쉬쉬 하면서 감추는 것이 아니라 자꾸 알려야 고통을 덜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투병지식을 서로 나누면 서로 큰 힘이 될 것이다.”
그의 남편 게리 홀트(Gary Holt)씨는 도예가로 한국에도 여러 번 방문해 도예전을 연 바 있다.
<신영주 기자 yj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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