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버클리 주니어는 미국 보수파의 대부격인 인물이다. 1943년 18살의 나이로 제2차 대전에 참전한 후 1945년 전쟁이 끝나자 예일대에 입학한 그는 대학 내 엘리트 클럽인 ‘스컬 & 본즈’ 회원이 되며 교지 편집장으로 활약한다. 졸업 후 한 때 CIA 요원으로 뛰기도 했으나 정작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예일에서의 신과 인간’(God and Man at Yale)을 펴내면서부터다. 그는 이 책에서 신을 부인하고 좌파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예일대 풍토를 비판했다.
그는 1955년에는 지금까지 미국 보수파의 기관지 비슷한 ‘내셔널 리뷰’를 창간, 보수주의 논객을 발굴하고 정계에 보수파 목소리가 널리 퍼지는데 큰공을 세웠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에는 예일대 입학 동기이자 같은 ‘스컬 & 본즈’ 회원인 아버지 부시로부터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자유 메달’을 받았다. 아들 부시도 작년 그의 80회 생일 및’내셔널 리뷰’ 창간 30주년 행사를 백악관에서 성대하게 치러줬다.
그런 그가 최근 백악관을 정면으로 비판,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올 초 칼럼에서 “이라크에서 미국의 목표가 실패했음을 의심할 수 없다”며 “이를 인정하고 그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이 전쟁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보수파 논객은 그만이 아니다. 작년까지 이라크 전을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의 하나인 ‘내셔널 리뷰’의 편집장 리치 라우리는 이 달 “이라크에서의 성공은 3년전 개전 이래 어느 때보다 멀다”며 부시 행정부의 실패를 질타했다.
영향력 있는 보수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최근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현실주의자들은 중동의 안정을 목표로 삼아왔지만 그 비판자들은 현실주의는 너무 소극적이며 안정이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이제 그 문제는 해결됐다”며 현 정부의 이라크 정책을 비꼬았다. 이에 격분한 부시 행정부는 그 칼럼 3배 분량의 반박문을 써보냈다.
보수파는 아니지만 이라크 전을 지지해 온 토마스 프리드먼도 이 달 칼럼에서 “더 이상 현 코스를 밟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철군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때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이었다 언론인으로 변신한 조 스카버러는 MSNBC 프로에서 과연 부시가 미국을 이끌만한 정신 능력을 갖췄는지 의심스럽다는 인신 공격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물론 모든 보수 논객이 부시를 버린 것은 아니다. ‘커멘터리’의 노먼 포도레츠나 ‘위클리 스탠더드’의 프레드 반즈와 같이 이라크 침공을 앞장서 부추긴 네오콘 지식인들은 아직도 이라크 전을 지지하고 있다. 이라크 전 지지자들은 처음 일본과 독일의 예를 들며 중동이라고 자유 민주주의가 꽃피지 말란 법이 있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두 나라는 오랜 전쟁을 통해 미국에 대한 저항 세력이 완전히 제거됐고 이미 민주주의와 경제 강국을 건설한 경험이 있었다. 민주주의 전통이 없고 적대 세력으로 둘러싸인 중동 한복판에서 이 실험이 성공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조지 윌은 최근 한 만찬에서 “이라크 민주화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이 4명 있다. 하나는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는 조지 워싱턴, 또 하나는 이들을 만족시킬 헌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제임스 매디슨, 다른 하나는 경제 성장의 기초를 닦을 알렉산더 해밀턴, 마지막으로 법치주의의 전통을 세울 존 마샬”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이 없이 민주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데 이라크의 비극이 있다.
‘중동 민주화’라는 야심찬 목표로 시작됐던 ‘이라크 사업’이 3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보수 진영의 분열을 초래하는 악재로 변하고 있다. 이라크 사태가 계속 악화할 경우 철군 압력은 가중될 것이고 철군하게 되면 미국의 위상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을 것이다. 부시와 그의 지지자들도 3년 전 이런 결과를 예상치는 못했을 것이다. 과연 이라크로부터의 출구는 있는 것일까.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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