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타이슨이 하심 라흐만(왼쪽)과 올레그 마스카에프의 대전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손을 들어 주고 있다. ‘미국 복싱의 마지막 디펜스 라인’으로 명명됐던 이 경기서 라흐만이 패함으로써 세계 헤비급은 구 소련 복서들의 독무대로 변했다.
7피트2인치의 거인 니콜라이 발루에프는 WBA 챔피언.
루이스, 알리 등 전통의 헤비급 최강국은 옛말
현 4대 기구 세계 챔피언 구 소련 복서가 싹쓸이
미국은 세계 챔피언 한명 없는 불모지로 전락
헝그리 정신 실종에 ‘빅 가이’들 풋볼 농구로 빠져
“보았노라, 왔노라, 점령했노라.” 미국의 세계 헤비급 복싱 왕국을 완전 점령한 구 소련 출신 복서들의 기세등등한 함성이다. 세계 헤비급 복싱을 독식해온 미국의 영광은 흘러간 옛일일 뿐이다. ‘미국의 마지막 디펜스 라인‘으로 명명됐던 라흐만과 마스카에프의 WBC타이틀 전에서 라흐만이 패함으로써 미국은 4개나 되는 세계 헤비급 타이틀 중 하나도 갖지 못한 헤비급의 불모지로 전락했다. 대신 헤비급 왕좌에는 마스카에프, 클리쉬코, 리아코비치, 발루에프와 같은 러시아 이름들만 가득 차 있다.
올레그 마스카에프는 현재 국적은 미국이지만 카자크스탄 출신으로 바로 얼마전에 귀화했고, IBF 챔피언 블라디미르 클리쉬코는 우크라이나, WBO의 세르구에이 리아코비치는 벨라루스, WBA의 7피트2인치 니콜라이 발루에프는 ‘러시안 자이언트’다. 전부 구 소련 출신들이다. 영화 록키에서 패했던 드라고가 미소냉전이 종식된지 20여년만에 헤비급 최강자로 부상한 것이다.
물론 이들 소련 챔피언들중 유료 TV 시청료 50달러를 내고 구경할만한 선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런 허약한 헤비급 무대지만 정상에 미국선수가 한명도 없다는 것은 전통의 헤비급의 강국 미국의 서글픈 현실임은 분명하다.
라흐만의 경기에서 정작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헤비급의 걸작들인 레녹스 루이스와 마이크 타이슨은 은퇴하여 링사이드에 앉아 해설이나 하고 있다. 라흐만 같은 감자 포대를 구경하고 앉아 있어야 하니 지금 미국 헤비급의 풍경이 가관이다.
어찌나 참혹한 광경이던지 래리 홈즈가 자신이 다시 복싱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80년대 초반 헤비급을 석권했던 홈즈 할아버지는 말한다. “ 챔피언 벨트가 몇 개나 있어? 4개? 내가 나서야겠다.” 농담이지만 진짜로 나설지도 모른다. 홈즈 할아버지는 52세에도 싸웠지 않은가. 그리고 56세인 지금도 글러브를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미국 챔피언이 한명도 없는 경우는 영국의 레녹스 루이스가 헤비급을 통합했던 1999년 이후 처음이다. 루이스 이후에는 볼만한 챔피언이 어디에도 없다.
돌이켜보면 미국의 헤비급은 화려했다. 지난 1세기 이상을 독무대로 장악해왔다. ‘마네사의 학살자’ 잭 뎀프시, 193~40년대 ‘갈색의 폭격기’ 조 루이스, 50년대 무적의 챔피언 로키 마르시아노, 6~70년대의 ‘더 크레이티스트’ 무하마드 알리와 ‘스모킹’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등등.
이탈리아의 거한 프리모 카네라와 스웨덴의 잉게마르 요한슨 등 외지인들이 잠시 끼어들기는 했지만 미국의 헤비급 승계는 면면히 이어져 왔다.
알리 이후에도 래리 홈즈에 이어 마이크 타이슨과 홀리필드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를 장악했다.
그때까지 소련 선수들은 프로복싱에 얼굴을 내밀지도 못했다. 아마추어에 묶여 고작 올림픽 금메달이 지상 목표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도 종식됐다. 동 유럽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밀려들면서 스포츠 강국 미국의 지위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복싱은 물론이고 농구와 야구 등 다른 스포츠에서도 더 이상 압도적인 세계 1위가 아니다.
이런 외적인 변화와 더불어 미국복싱 자체의 쇄락이 급락을 불러왔다.
오만과 지배의 역사가 너무 길었던 탓인가. 미국 헤비급 복싱은 살만 디룩디룩 찌고 나태해지고 거만해져 버렸다.
도살장에서 쇠망치로 소머리를 내려치던 일을 하다가 훗날 헤비급 챔피언이 된 조 프레이저는 미국복싱이 허약해진 이유를 헝그리 정신의 실종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 미국에서는 모든 이들이 너무나 쉽게 가진다. 테이블 위에 빵이 그냥 놓여져 있다. 구소련 친구들은 굶주려 있다. 굶주려 본 자만이 정상에 오른다”
인종차별과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었기에 쾌쾌한 냄새 나는 이너시티의 짐에서 비지땀을 흘렸고 그런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위대한 복서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도 트레이너로 선수들을 키우고 있는 프레이저는 현재 가능성 있는 선수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며 자신과 알리가 벌였던 수준의 헤비급 경기가 다시 나오기 위해서는 엄청난 가르침과 훈련, 의지와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고 말한다.
프레이저가 샌드백을 두들기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거의 공짜’다. 거의 고생하지 않고 좀 한다싶으면 돈방석이 기다린다. 아마추어에서 한두번 이기면 트로피가 주어지고, 트로피 몇 개 모으면 프로서에서 계약하자고 달려든다. 프로 몇전 치르면 큰 계약이 따른다.
근성이 생길 계기도 없고 실력을 연마할 훈련도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빅 마니가 안겨지니 허약 체질이 되고 만다. 미국 헤비급 복싱은 리딕 보우 병에 걸린 것이다. 뉴욕의 슬럼가 출신의 리딕 보우는 챔피언이 될 때 까지는 주먹에 독기가 서려있었으나 돈 방석에 오른 뒤 갑자기 감자 포대로 변해 몰락해 버렸다.
헤비급 프로 무대의 파이프라인이었던 아마추어 복싱이 말라버린 탓도 크다.
무하마드 알리가 뛰던 40년전에는 쓸만한 재목들은 복싱에 입문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NFL 라인맨의 연봉이 기껏 5천달러였고 농구 선수들은 거의 돈을 받지 못했었다. “만약 알리가 지금 활동한다면 고등학교 풋볼팀에서 타이트 엔드를 할 것이다. 땀내 나는 짐에서 올림픽 메달을 따기 위해 비지땀을 쏟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미국서 자란 ‘빅 가이’들은 농구나 풋볼로 가지 복싱으로는 오지 않는다. 복싱에서는 인재 풀이 텅 비어버렸다“고 프로모터 밥 애럼은 말한다.
미국 아마추어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헤비급 챔피언이 된 경우는 조지 포먼이 마지막으로 지난 1968년의 일이다.
미국은 가고, 구소련에서 세계 헤비급 챔피언들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희망이 없는 불모의 땅에서 최고의 파이터는 탄생하기 때문이다.
<케빈 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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