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썰매도‘애물단지’
크레바스 빠져 구사일생
백정현(등반대장) 이준해(존)
이만우(피터) 최선영(브라이언)
유재일(에드워드·필자·사진)
개인장비 120파운드… 변통까지 본인이 직접 옮겨
Day 3
2006년 5월28일
해가 지고 난 후의 날씨는 영하 10도는 되는 것 같다.
갑작스런 추위와 환한 백야로 잠을 설치다 오전 8시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여전히 해는 밝게 빛나고 있다. 어제 잘 때와 같이 해는 동일하게 매킨리 산군을 비추고 있었으며 밤낮의 구분이 없었다.
오늘 좋은 날씨로 인하여 첫날부터 운행이 쉽겠구나! 브라이언이 칼국수에 떡국을 넣어 아침상을 만들었다.
모두들 일인당 120파운드가 넘는 짐들을 배낭과 썰매에 나누어 스키로 끌고 갈려니 엄두가 나지 않나 보다. 그래도 처음 1마일은 평평한 내리막길이라 모두들 쉬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실(스키 밑에 붙이는 생선 비늘처럼 생긴 것으로 앞으로는 잘 나가지만 뒤로는 나가지 않음)을 붙여 느린 스키의 속도와 무거운 짐을 싫어 가속이 붙는 썰매의 속도가 맞지 않아 애를 먹인다.
스키와 썰매는 지난겨울 동안 열심히 훈련을 한 대원들에게는 아주 편리한 이기가 되었으나 그렇지 못한 피터 형은 애물단지가 되어 매번 스키가 벗겨지거나, 넘어질 때마다 다른 대원들의 손을 빌려야 일어설 수가 있었다.
데날리(매킨리) 등반은 본인들이 먹고 사용할 장비, 한달 분의 많은 식량과 하물며 배설할 CMC(변통)까지 모두를 썰매와 배낭으로 본인들이 직접 옮기는 힘든 등반이라 많은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의 8,000m급의 산행과 똑같다고 하나 보다.
하늘 위의 해는 이글거리고, 드넓은 카힐트나 빙하의 눈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쉽지 않은 운행이라 운행중 우리는 하나하나 벗기 시작하였다.
결국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운행을 하며, 광활한 플래토의 빙하지대로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하였고 시간과 거리의 개념을 상실한 채 묵묵히 만년설 빙하 위를 걷고 또 걷고 있다.
앞에서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소리가 들려 앞을 보니 백 대장이 스키를 신은 체 크레바스(crevasses-빙하 위에 갈라진 균열)로 빠진다.
다행이 스키를 신어 허리 정도만 빠졌다가 나온다.
멀리서 이 곳을 보았을 때 이상하다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크레바스에 빠진 사람을 구출해낸 긴 자일이 얼음 틈 사이로 내려져 있고 짐을 가득 싫은 주인 없는 썰매가 크레바스에 걸려 있었으며, 노란 눈삽을 거꾸로 세워놓아 지나가는 산악인들에게 위험하다는 경고를 하고 있었다.
조심하자! 계속되는 크레바스를 돌고 돌아 끝없는 빙하 위를 얼마나 걸었을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든다.
보라! 저 눈부신 은빛 산야의 신비한 설원을 어느 곳이 하늘이고 어느 곳이 땅인지 구분이 안 되는 희고 파란 하늘과 땅 끝이 맞닿아 혼미한 무아지경을 이루며 황홀하게 펼쳐져 잠시라도 고글을 벗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 광활한 빙하의 한 복판에 우리는 C1(캠프 1)에 오후 5시 텐트를 친다.
텐트만이 이 곳에서 우리에게 그늘과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 오후 8시 정각에 레인저 오피스에서 전달받은 내일의 날씨를 듣고는 모두들 피곤한지 눕자마자 코를 곤다.
레인저 오피스로부터 날씨를 전달받고 있는 등반대.
Day 4
2006년 5월29일
어제 운행이 힘이 들었었는지 모두들 이 곳에 불필요한 식량들을 두고 가자고 한다. 식량을 묻고 표식기를 꽃아 다음에 알기 쉽게 해둔다.
대략 출발시간이 오전 9시. 이 곳은 일찍 일어나도 너무나 추워 모두들 해가 떠서 춥지 않은 늦은 시간에 운행들을 한다. 비교적 따뜻한 기온이 운행하기에 쉽기 때문이다.
캠프2로 오르는 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설원으로 앞서간 사람들의 스키와 썰매 자국으로 어지럽게 되어 있다. 내려오는 팀들로부터 간간이 듣는 정보는 나쁜 일기로, 하이 캠프에서 일주일을 보내다가 정상도 못하고 내려온다는 스페인팀 등, 모두들 정상을 못하고 그냥 돌아간다는 답답한 소식들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나름대로 산행 정보를 분석하며, 지금까지는 계속 일기가 안 좋았으니 우리가 정상을 할 때는 날씨가 좋을 것이라며 위안을 삼으며 올라간다.
모두들 무거운 짐에 힘들어서 쉬고 있는 사이 다른 팀들은 우리들을 추월해서 지나간다. 랜딩 포인트에서부터 운행을 함께 한 딸내미들(콜로라도 여대생 3명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은 벌써 짐을 데포(cache-등반시 장비나 식량 등을 보관하는 장소)에 내려놓고 썰매를 배낭에 지고 신나게 스키를 타며 내려온다. 우리의 운행 속도는 느리고 우리 뒤에 등반팀이 없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카힐트나 빙하도 거대한 산에 가로막혀서 우측으로 굽어지며 경사가 가팔라졌다. 앞장서서 가던 백 대장이 무거운 썰매의 무게 때문에 스키가 뒤로 밀린다며 이 곳부터는 스키를 벗고 크램폰(빙설사면의 등하강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등산화 바닥에 착용하는 발톱 달린 금속물)을 착용하고 가자고 한다.
스키를 벗으며 크램폰을 착용하는 사이 피터 형이 올라온다. 아픈 허리 때문에 모두들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올라왔다.
크램폰을 신고 썰매를 끌며 올라가는 데도 너무나 무거운 짐 때문인지 썰매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조금 가다가 쉬는 것을 반복하며 한참을 썰매와 씨름하고 있는 사이 캠프할 곳을 찾았다.
본래 다른 등반대의 경우 카힐트나 패스의 캠프는 생략하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이 곳에 텐트를 치기로 한다. 우리는 텐트를 칠 터를 잡아 톱으로 눈을 자르고 바람을 막아줄 블럭 담을 쌓아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아직은 별다른 고소증세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작은 움직임에도 숨이 가빠져 왔다.
이날 저녁은 브라이언이 특별히 요리한 청국장 김치찌개와 하얀 쌀밥이 우리의 외로움과 갈증을 달래주었다. 오늘의 휴식은 천고만고 끝에 얻은 것인 만큼 값지고 값진 것 인간의 행복이란 이 작은 안도감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밤이다.
<다음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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