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도 긴 호흡이 필요해요”
믈라디 체임버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동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6세에 최연소 입상
그 후 16년의 시간…
한층 깊어진 삶과 음악
“로맨틱, 모던한 곡 좋아”
바이얼리니스트 알리사 박(33). 그녀는 199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사상 최연소로 3위에 입상하면서 화려하게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그 때 나이 16세. 또 한 사람의 스타 탄생이었다. 그 후 알리사는 한동안 국제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과 기립박수를 지칠 만큼 받았다. 그 10대 신동이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 만한 세월이 흐르면 10대 스타의 음악 인생은 얼마나 달라지고, 음악을 보는 눈은 또 얼마나 바뀌게 되는 걸까. 많은 음악팬들은 10대 스타의 탄생에는 주목하지만 그후 그들이 겪는 음악적 굴곡과 갈등, 혹은 그 성숙의 이면사에는 눈을 닫아건다. 그 때처럼 화려하지는 않을 지 몰라도 유럽이 사랑하는 현대음악 연주가의 한 사람으로 성장한 알리사 박. 그녀를 만나 연륜과 함께 깊어진 그녀의 삶과 음악 이야기를 들었다.
어스름이 질 무렵 도착한 그녀의 집 앞. 문틈 사이로 바이얼린과 첼로 2중주가 흘렀다. 열심히 벨을 눌렀건만 음악 소리가 그치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 불쑥 문을 열었다. 연습에 몰입해 시간가는 줄 몰랐다며 당황해하는 그녀 옆에서 첼리스트가 오후 3시부터 연습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이렇게(오후 7시) 된 줄 정말 몰랐다고 변명했다.
“2002년 가을 남편을 만나 LA로 옮겨왔어요. 어려서부터 익숙했던 30~40분의 연주를 위한 희생, 큰 공연이 끝나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헤어나기 힘든 공허감 등이 누적돼 나도 모르게 변화를 원했나 봐요”
그녀의 집은 벽면에 온통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모두가 그녀의 작품들이다. 페인팅을 시작한 지 4년. 한쪽 벽면을 차지한 만화 같은 페인팅이 일본작가 요시토모 나라에게 바치는 작품 ‘나라 걸’이라고 한다. 그녀처럼 풋풋한 얼굴에 묘한 여유가 풍긴다. “그림은 바이얼린 연주와 정반대”라고 표현하는 그녀는 교육도 안 받고, 어떤 규칙에 얽매이지도 않아 한없이 자유로운 느낌. 결과가 좋든 나쁘든 걱정할 필요도 없이 단지 본능에 충실해 캔버스를 채워 가는 기쁨 때문에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어릴 적 발레리나를 꿈꿨다는 알리사 박. 다섯 살 때부터 바이얼린과 발레를 동시에 배우며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지만, 켄터키주에 거주하는 의사 아버지 박응길씨와 도예가 어머니 박경희씨는 똑똑하고 야무진 딸이 하버드에 진학하길 바랐다. 줄리아드 교수인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할 당시도, 부모님은 그녀가 바이얼니스트의 길을 택하는 걸 반대했다.
도로시 딜레이 교수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출전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위치를 평가하고 싶었다고 했다. 콩쿠르를 앞두고 발레 선생과 심각한 대화를 나눴던 그녀는 자신의 발레 실력이 ‘중간’이라는 평가가 돌아오자, 그 길로 발레를 그만두고 콩쿠르를 택했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사상 최연소 입상의 기록을 세운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떠오르는 스타가 됐다. 이후 10년을 연주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신시내티 대학을 늦깎이로 졸업했을 때 그녀에게 첫 번째 인생의 고비가 찾아왔다.
“연주자로 성공하려면 적절한 마케팅이 필요해요. 어려서 유명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되는 바람에 마케팅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10대에도 20대에도 차이코프스키 최연소 수상자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서른을 바라보면서 마케팅 전략이 흔들리기 시작했죠. 영원히 ‘영 아티스트’로 불릴 순 없잖아요?”
연주자가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싶어진 건 그 무렵이었다. UCLA 박사과정에 재학 중 오리건 주립대에서 교수 제의가 왔고, 뉴욕생활을 포기할 수 없어 뉴욕과 포틀랜드를 오가며 객원교수로 강의를 나갔다. 그러나, 딱 일년만에 그만두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그녀에게 회의감만 가져다줄 뿐,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들만큼 스스로는 소명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그녀는 스스럼없이 이유를 밝혔다.
“간혹 레슨을 하다보면, 한인 학생들은 재능이 뛰어난데 연주에만 매달리다보니 너무 일찍 에너지가 소진되는 경향이 짙어요. 위대한 음악가를 꿈꾸는 건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재능에다 시간과 경제력,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해요. 무작정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죠”
LA로 터전을 옮긴 후 오케스트라 연주에 관심을 갖게 된 그녀는 현재 믈라디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악장이다. 믈라디(Mladi)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없이 30명의 단원들로 구성된 체임버 앙상블로, FM 105.1 K-Mozart가 방송하는 클래식 실내악 음악회 ‘선데이 라이브’의 고정출연진이다.
오늘(12일) 오후 8시 LA다운타운 캘리포니아 플라자 야외음악회와 20일 오후 6시 LA카운티 뮤지엄(LACMA) 빙디어터 ‘선데이 라이브’연주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믈라디 연주 일정이 끝나는 대로 그녀는 독일과 슬로바키아, 칠레 등 유럽순회연주를 떠난다. 바로크나 초기 클래식보다는 로맨틱하고 모던한 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그녀. 유럽 연주길이 즐겁기만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바이얼리니스트 알리사 박
1985년 신시내티 챔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데뷔
88년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 콘체르토 경연대회 우승
90년 차이코프스티 국제 콩쿠르 최연소 수상. 동메달과 심사위원 특별상
91년 링컨센터 앨리스 털리홀 리사이틀로 뉴욕 데뷔
콜린 데이비스경이 지휘하는 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유럽 데뷔
96년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 강사로 참가
2000년 오리건 주립대 바이얼린 객원교수
2002년 LA로 이사. 믈라디 체임버 오케스트라 악장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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