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바이스 산악회 원정대 유재일씨 23박24일 등반기 <1>
해발 6,194m 북극 최고봉 탈키트나, 자정돼도 백야
에델바이스 산악회(회장 양재철)는 지난 5월26일부터 24일간 미주지역 최고봉인 매킨리 등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다. 이번 등반은 특히 셀파를 고용하지 않고 산악회 원정대가 단독으로 등정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 성과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원정대의 유재일 대원의 실감나는 등반기와 기록사진을 통해 당시의 환희와 고통을 전해 듣는다. 등반기는 시리즈로 연재된다.
▲Day 1-2006년 5월26일
등산을 하다 보면 가끔씩 미치도록 큰산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나를 숨죽이게 만들고, 그 엄청난 위압감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의 큰 산 앞에 서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내 능력이 되던 안 되던 문명이 그어놓은 의미의 경계선상 너머의 산을 보고 싶은 열정에 내 몸이 뜨거워졌을 때 마음 가득 산이 자리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의지하며 산에 오르고 싶었다.
우리의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던 알 수 없는 열정은 차라리 광기였다. 정신은 언제나 죽도록 사랑할 무언가를 찾아 헤맸고 육신은 가혹한 정신의 매질에 늘 멍들어 있었다. 인생은 꿈을 잃을 때 목표를 잃을 때는 인생이 아니다.
빙하위 착륙… 진입부터 고소느껴
기상나빠 6시간 공항대기
고상돈·이일교 묘비 참배
우리는 쿡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으며 포터나 고소포터가 일일이 짐을 날라다 주고, 셀파가 앞장을 서서 길을 안내하고, 위험한 구간은 먼저 올라가서 로프를 깔아주는 히말라야와 같은 편안한 원정 등반에서 탈피 우리들이 고생을 하며 모든 일들을 해결해 나가는 산행이 그리워 모든 산악인들이 꼭 한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북극 대륙의 최고봉 매킨리(6,194m)를 향해서 가고 있다.
새벽 6시 LA 공항에서 에델바이스 회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나누고 대원 5명이 알래스카 항공을 타고 시애틀을 경유하여 앵커리지에 오후 1시에 도착, 탈키나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셔틀버스는 알래스카의 광활한 침엽수림과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호수의 늪을 지나 와실라를 거쳐, 작지만 아담한 탈키트나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이곳은 백야 현상으로 자정이 되어서도 어두워지지 않아 긴 여행의 피로도 잊은 체 탈키트나 시내를 둘러본 후 떡라면을 먹고 벙커에서 내일부터 펼쳐질 매킨리 산의 파노라마와 등정을 위한 꿈을 꾸며 무더운 여름밤을 보낸다.
▲Day 2-2006년 5월27일
어두움이 없는 백야와 이상기온의 무더위로 밤새 뒤척였지만 대원들 모두 6시30분에 기상하여 시내에서 커피를 마시며 탈키트나 시내를 한바퀴 돌아 레인저 스테이션과 공항 옆에 있는 고상돈·이일교 산악인의 묘비에 참배를 하고 매킨리 등반 코스를 상공에서 정찰하는 세스나 경비행기를 타러 간다.
세스나 경비행기는 낡고 초라하여 과연 이 비행기가 뜰 것인가 의문이었고, 이 비행기에 어떻게 우리 일행들이 다 탈것인가 하는 걱정으로 가슴을 졸였지만, 공항에는 끊임없이 경비행기의 이착륙이 반복되고 있었다. 비행 수칙을 조종사로부터 듣고 경비행기에 오전 8시 올랐다. 경비행기는 매킨리 산군의 위엄을 가로질러 광활한 침엽수림과 빙하가 깎아 내린 절벽 사이로 유유히 오름을 계속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침엽수림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수많은 호수와 강줄기가 거미줄처럼 깔려 있었지만, 우리 일행들이 보고 싶어했던 매킨리 등반코스는 볼 수가 없어 아쉬움만을 남기고 돌아왔다.
매킨리 입산을 위해서 우리 일행은 탈키트나의 레인저 사무실에서 입산 허가를 받고(3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함. 입산료 200달러), 30여분 동안 등반에 필요한 교육을 마친 후, CMC(변통) 4개를 받아서 탈키트나 공항으로 이동하여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펼쳐 놓은 후 장비를 체크하면서 카고 백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랜딩 포인트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1인당 110파운드라고 했지만, 상관없었음), 불필요한 장비는 공항 창고에 무료로 보관했다.
에어버스 사무실에는 헌터 봉으로 등반을 떠난 한국 원정대원 2명의 실종 전문이 있어서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그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이 곳에서 CB 라디오(80달러 위급한 상황에는 레인저와 무전이 됨)와 버너에 넣을 기름 6갤런(1갤런 7달러, 랜딩 포인트에서 받을 수 있음)을 사고 랜딩 포인트로 향하는 비행기표(1인당 400달러) 요금을 낸다.
오후 1시에 탑승하기로 한 출발시간은 기상조건의 악화로 언제 출발을 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어 탈키트나 시내로 나가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고 공항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여섯 시간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을 즈음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탈키트나 항공사의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소식에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오후 5시 세스나 경비행기에 장비와 몸을 실었다.
히말라야 등반에서는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출발한 세스나기가 깊은 산과 계곡 사이를 돌면서 루쿠라라는 마을로 올라간다면 매킨리 등반은 탈키트나에서 출발해 편편하고 평온한 끝없이 펼쳐진 침엽수림과 수많은 호수와 강줄기를 따라서 만년설 빙하가 넓게 펼쳐진 광활한 탈키트나 빙하계곡이 비행기 밑으로 스치며 지나간다.
1시간 후 4인승 세스나기는 만년설 빙하지대에 착륙지점을 발견한 듯 하늘을 선회한 후 만년설 빙하 위에 하얀 눈보라를 일으키며 착륙했다.
4인승 세스나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에게 와 닿는 것은 고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박한 공기와 하얗게 다가오는 북극 매킨리 특유의 고소 냄새다.
이 희박한 공기 속의 고소가 앞으로 우리들에게 안겨 주는 것은 무엇일까? 고통일까? 좌절의 비탄일까? 가슴 벅차게 밀려오는 걱정일까? 아님 기쁨의 환희일까?
랜딩 포인트는 빙하 상 넓은 계곡의 하구였다. 제법 넓게 펼쳐져 있는 만년설 빙하 지대의 중간 부분이다.
랜딩 포인트에서 바라본 우측 헌터봉(4,442m)의 위압감과 중앙 매킨리(6,194m) 주봉의 웅장함, 좌측 포레이커봉은 신비감을 갖게 하며 만년설의 힘겨운 무게를 이고 있었으며 끊임없는 눈사태와 바람이 계곡을 깎아놓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앞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크레파스와 블랙홀이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상주하는 레인저는 우리를 반기는 듯 인사를 건넨 후 연료 6통을 우리에게 건네주고“GOOD LUCKY”을 기원하며 또 다른 비행기를 마중하러 간다.
이제부터 등반의 시작인가? 재빨리 몸을 놀려 이미 자리가 비워져 있는 큰 캠프사이트를 확보한다.
각자 주어진 임무와 역할을 배분하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먼저 각자의 역할을 소화하며,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일들은 직접 부딪치며 해결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텐트 두 동을 설치한 후 플래스틱 파이프로 썰매의 결속 끈을 만들고, 내일 운행에 필요한 시뮬레이션을 완료한 후 짜파게티로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자정을 넘긴 12시30분에도 이 곳은 해가 지지 않았지만, 내일부터 있을 등반을 위해 눈을 감는다.
▲Day 3-2006년 5월28일
해가 지고 난 후의 날씨는 영하 10도는 되는 것 같다.
갑작스런 추위와 환한 백야로 잠을 설치다 오전 8시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여전히 해는 밝게 빛나고 있다. 어제 잘 때와 같이 해는 동일하게 매킨리 산군을 비추고 있었으며 밤낮의 구분이 없었다.
오늘 좋은 날씨로 인하여 첫날부터 운행이 쉽겠구나! 생각하며 CMC 캔을 들고 변기텐트에 가서 시원하게 볼일을 해결하고 오니 브라이언이 칼국수에 떡국을 넣어 아침상을 만들었다. 텐트를 걷고, 등반을 마치고 내려와서 쓸 짐들과 식량을 랜딩 포인트 눈구덩이에 묻고(CACHE), 대나무로 된 표식기 완다를 꽃아 알기 쉽게 해두고서 10시가 다 되어서야 운행을 시작한다.
모두들 일인당 120파운드가 넘는 짐들을 배낭과 썰매에 나누어 스키로 끌고 갈려니 엄두가 나지 않나 보다. 그래도 처음 1마일은 평평한 내리막길이라 모두들 쉬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씰을 붙여 느린 스키의 속도와 무거운 짐을 싫어 가속이 붙는 썰매의 속도가 맞지 않아 애를 먹인다.
스키와 썰매는 지난겨울 동안 열심히 훈련을 한 대원들에게는 아주 편리한 이기가 되었으나 그렇지 못한 피터 형은 애물단지가 되어 매번 스키가 벗겨지거나, 넘어질 때마다 다른 대원들의 손을 빌려야 일어설 수가 있었다.
데날리(매킨리) 등반은 본인들이 먹고 사용할 장비, 한 달분의 많은 식량과 하물며 배설할 CMC(변통)까지 모두를 썰매와 배낭으로 본인들이 직접 옮기는 힘든 등반이라 많은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의 8,000m급의 산행과 똑같다고 하나 보다.
피터 형은 처음부터 내려오지를 못한다. 할 수 없이 내가 다시 올라가 스키를 벗고 걸어서 내려가라며 썰매를 끌며 걸어서 같이 내려왔다. 그러는 사이 타이완에서 온 팀 3명이 우리를 추월해서 지나간다.
하늘 위의 해는 이글거리고, 드넓은 카힐트나 빙하의 눈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쉽지 않은 운행이라 운행 중 우리는 하나하나 벗기 시작하였다.
결국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운행을 하며, 광활한 플래토의 빙하지대로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하였고 시간과 거리의 개념을 상실한 채 묵묵히 만년설 빙하 위를 걷고 또 걷고 있다.
앞에서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소리가 들려 앞을 보니 백 대장이 스키를 신은 체 크레바스로 빠진다. 다행이 스키를 신어 허리 정도만 빠졌다가 나온다.
멀리서 이 곳을 보았을 때 이상하다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크레바스에 빠진 사람을 구출해낸 긴 자일이 얼음 틈 사이로 내려져 있고 짐을 가득 싫은 주인 없는 썰매가 크레바스에 걸려 있었으며, 노란 눈삽을 거꾸로 세워놓아 지나가는 산악인들에게 위험하다는 경고를 하고 있었다.
조심하자!
계속되는 크레바스를 돌고 돌아 끝없는 빙하 위를 얼마나 걸었을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든다.
보라! 저 눈부신 은빛 산야의 신비한 설원을 어느 곳이 하늘이고 어느 곳이 땅인지 구분이 안 되는 희고 파란 하늘과 땅 끝이 맞닿아 혼미한 무아지경을 이루며 황홀하게 펼쳐져 잠시라도 고글을 벗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 광활한 빙하의 한 복판에 우리는 C 1(캠프 1)에 오후 5시 텐트를 친다.
텐트만이 이곳에서 우리에게 그늘과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
다른 등반 팀은 우리가 도착한 C1을 지나쳐서 C2로 향하고 있는 팀도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정대로 이 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결정한다.
저녁식사 후, 빼먹을 수 없는 것이 내일 날씨의 일기예보로 오후 8시 정각에 레인저 오피스에서 페어뱅크에서 전달받아 방송하는 내일의 날씨를 듣고는 모두들 피곤한지 눕자마자 코를 곤다.
정상을 향해 첫발을 디디고 있는 에델바이스 산악회의 매킨리 원정등반대.
대원들이 등반로 정찰을 위해 세스나에 탑승하고 있다.
원정대가 첫날 도착한 탈키나.
만년설 빙하 위에 하얀 눈보라를 일으키며 착륙한 세스나 비행기.
고상돈·이일교 산악인의 묘비에 참배를 하고 있는 대원들.
정리 `백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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