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을 밟았더라면 이민개혁안은 지금쯤 백악관에서 부시대통령의 서명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상하 양원의 절충안은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이민개혁안’은 도대체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양보하기 힘든 차이를 드러낸 상원안과 하원안이 서로 노려보며 표류한 것이 벌써 석달째로 접어들었다. 결국 이민개혁안은 이번 회기 중엔 살아남지 못하고 폐기될 것인가. 부음을 쓰기는 아직 이르지만 전망은 어둡다.
금년 상반기 ‘이민’은 이라크전 못지않은 핫 이슈였다. 부시대통령이 평소의 자신답지 않게 중도입장에 서면서까지 통과를 천명했고, 수백만 이민자 시위물결이 전국 대도시를 휩쓸었으며 온라인-오프라인 모든 미디어의 오피니언 공간은 각계각층 미국인들의 한마디로 넘쳐났었다. 무엇보다 1986년 개정안 이후 20년이나 지났는데 그동안 줄어들기는커녕 두배로 늘어난 불법체류자에 대한 대책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시급했다.
이처럼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개혁안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했다. 그러나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해선 의견이 달랐다. 하원은 단속강화만을 고집하고 상원은 단속강화와 함께 불체자 구제와 초청노동자프로도 병행하는 현실적 대책을 강조했다. 공화당 보수우파가 주도하는 하원은 지난 12월 토의 시작 2주도 채 안돼 초강경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그후 상원은 몇 달의 진통끝에 공화당 중도파와 민주당이 손을 잡고 5월말 포괄적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서로의 입장도 강경하고 시각의 차이도 너무 커서 타협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진작부터 나왔다. 힘들어도 양원 절충안을 만들 조정위를 구성하고 협상에 들어가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다. 그런데 하원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절충에 앞서 휴회중인 8월에 전국 순회 공청회를 열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청회란 자기 법안 표결전에 여는 것이 관행이다. 더구나 상원안을 비판하는 하원의 공청회는 전례없는 일이다. 상원과 민주당이 발끈하고 이 무슨 정치게임이냐고 비난했지만 하원 공화 지도부는 요지부동, 굽히지 않았다.
이렇게 강행된 하원의 한여름 로드쇼, 이민공청회는 요즘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8월 한달동안 13개주 21개 지역에서 개최된다. 캘리포니아나 텍사스같은 국경지대 뿐 아니라 밀입국과는 별 연관없는 인디애나, 아이오와주에서도 열린다. 11월선거를 앞두고 공화후보들이 고전하는 지역들이다. 표면상으로야 이민법안에 대한 민심을 직접 듣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셈은 다르다. 반이민 정서를 부추겨 보수표밭을 다지려는 전략이다.
공청회 주제부터가 선동적이다. “수백만 불법외국인에 대한 상원의 사면안을 받아들여야하는가” “허술한 국경과 국제테러” “납세자에 끼치는 불법이민 영향”…이런 식이다. 상원안을 꼬박꼬박 ‘케네디안’이라고 부르는 것도 속 보인다.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와 공화당의 존 매케인이 공동제안하여 ‘매케인-케네디안’으로 명명되었는데 공화당 매케인의 이름은 슬그머니 빼버린 것이다.
9월초까지 계속될 순회공청회의 공과를 당장 평가하기는 힘들다. 지난 몇달 각 지역에서 예선을 치른 후보들은 이민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민감했다고 전한다. 민주당 현역의원들까지 국경단속 요구가 강경해서 놀랐다고 털어놓는다. 하원안을 지지하는 것이 극우파만이 아니라는 현실을 목격한 것이다. 반대로 ‘8월의 순회공연’은 공화당주도 하원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양극화 논쟁만을 부추긴 소모적인 해프닝이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공화당 유권자의 대다수도 단속만을 강조한 하원안보다는 포괄적인 상원안을 지지하한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으니까.
문제는 시간이다. 9월초 시작되는 연방의회는 한달이 채 못되어 다시 재선캠페인을 위한 사실상의 휴회에 들어간다. 그사이 실제로 일 할수 있는 워킹데이는 15일밖에 안된다. 상하원 주장을 한발씩 양보하는 타협안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양쪽의 거센 반대를 잠재우며 합의를 이끌어내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이 짧은 토막기간엔 중대하고 복잡한 이슈는 다루기 힘들뿐 아니라 또 다루지 않는 것이 관례이기도 하다. 선거가 끝나고 돌아오는 레임덕 기간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통과되지 못한채 이번 회기가 끝나면 현재안은 폐기되고 새의회가 열린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합리적 이민개혁안을 성사시킬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합리적 사고를 가진 의회를 선출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어서 반이민 공청회가 열리는 이 여름에 우리가 할 일도 뚜렷해진다. 11월 선거를 위한 유권자등록이다. 이민자들의 표밭을 일궈놓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이민법개혁안은 앞으로도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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