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팔레스타인 인들이 살고 있는 여리고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로 불린다. 기원전 9,000년부터 이곳에 인간이 살기 시작해 숱한 전란과 자연 재해를 겪으면서도 한번도 인간의 발길이 끊긴 적이 없다고 한다.
수많은 민족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은 여호수아의 여리고 성 함락이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사제들이 성을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불자 성벽이 무너졌다고 적고 있다. 나팔 한번 불었다고 성벽이 무너진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더 경악스런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여호수아는 야훼의 명령이라며 자기가 보낸 스파이를 숨겨준 창녀 라합 일가를 제외한 여리고 주민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몰살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곡물도 불태우고 가축마저 살려두지 않는다.
지금보다 훨씬 잔혹했던 고대에도 이런 전쟁 방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장차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성인 남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노약자와 여성은 노예로 삼고 곡물과 가축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쪽이 이해타산으로 따져도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인종 청소‘는 다신교를 믿는 우상 숭배자들로부터 자신들만의 유일신 사상을 지키겠다는 종교적 광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유대인들의 타인종 학살은 여호수아가 처음도 끝도 아니다. 여호수아의 ‘사부’ 모세는 미디안 족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이스라엘 군이 남성만 죽이고 여성을 살려둔 데 분개하면서 “여자를 모두 살려뒀단 말인가”고 외친 후 “남자는 어린애까지 모두, 여자는 남자를 안 자는 모두 죽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살려 네 것으로 삼으라”고 명령한다. (민수기 31장 15절)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야곱의 자식들은 인근 마을에 사는 셰겜이 누이 디나를 능욕했다는 이유로 마을 남자를 모두 죽이고 그들 아내와 자식을 노예로 삼으며 그들의 재물을 빼앗는다.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은 자식들을 꾸짖지만 그 이유는 이들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인근 부족들이 더 수가 많고 강한데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그들이 뭉쳐 공격해 오면 우리 집은 이제 망했다는 식의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 때문이다.
유대인의 타인종 학살은 페르샤 시대에도 계속된다. 아하수에루스 왕 시절 하만이라는 신하가유대인들을 도륙하려 하자 유대인으로 왕비의 자리에 있던 에스더는 왕을 설득해 거꾸로 하만을 교수형에처하게 한다. 여기까지는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거기 만족치 못하고 이를 기화로 평소 유대인에 적대적이던 인사 7만5,000명을 학살한다. 그리고는 이 날을 명절로 삼아 대대손손 경축하고 있다. 소위 ‘퓨림절’이 그 날이다.
예수가 죽은 후 제자들이 기독교를 전파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을 가장 박해한 것도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의 박해가 심해지자 소아시아 사디스의 주교 멜리토는 유대인들이야말로 유일신의 아들이자 신과 동격인 예수를 죽인 살신(殺神)의 죄를 지은 민족이라고 비판한다. 당시는 힘없는 소수의 항변이던 이 주장은 나중에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만들면서 유대교 탄압의 근거가 된다.
그 후 1,000년이 넘게 탄압에 시달려온 유대인들의 고통은 히틀러의 인종말살 정책으로 절정에 달하게 되고 그로 인한 동정심의 결과 이스라엘이라는 독립 국가 건국에 성공하게 된다. 그 이스라엘이 요즘 헤즈볼라를 잡겠다는 이유로 레바논에 쳐들어 가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살상,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수천년 동안 유대인들이 이룬 업적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나라 없이 수천 년을 유랑하면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은 아니다. 자신들만이 유일신에 의해 선택받았다는 믿음이 상당한 역할을 했으리라. 그러나 이런 배타적인 믿음은 타인종과 마찰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바로 그 타인종이 다른 유일신을 믿을 때는 더욱 그렇다. 서로 자기 유일신이 진리라고 믿는 세력이 한데 모여 으르렁거리고 있다는데 중동의 비극이 있다. “진리는 하나다. 현자들은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뿐”이라는 성인의 가르침을 사람들은 언제나 깨달을 것인가.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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