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들에 나가 일하고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풀먹인 삼베적삼에서는 늘 쉬지근한 냄새가 났다. 새마을운동이 태동하던 60년대 우리나라 농촌에선 아직 옷감이 귀하던 때라 누리끼리한 광목으로 옷을 해 입기도 수월찮아 놓으니 그저 품 팔아 길쌈해 만든 삼베나마 중의,적삼도 만들고 심지어는 수건도 만들어 썼다. 함수율이 좋을 턱 없는 거친 삼베조각을 가장자리만 적당히 홀치기로 마감하여 수건이랍시고 걸이를 달아 놓으면 우리집 일곱식구가 일어난 순서대로 세수하고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막내이며 잠꾸러기였던 나는 늘 꼴찌로 수건 차지가 되었는데 축축하다 못해 물방울이 뚝뚝 듣는 삼베수건으로 졸린 눈을 훔쳐야 했다.
길쌈은 이른 봄에 시작해서 농한기인 동지섣달이나 되어야 끝나는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농사였다. 삼은 주로 텃밭이나 냇가가 멀지 않는 곳에 파종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3-4월 사질토양에 배수가 좋고 약간 그늘이 진 터에 배직하게 대마씨를 뿌리고 한 열흘이면 힘차게 싹이 돋는다. 오동나무처럼 쑥쑥 키가 커 두어 달이면 2미터 가까이 자라게 되는데, 각종 새 떼가 모이고 음습하여 모기도 끓었지만, 아이들은 서늘한 고랑사이를 아랑곳없이 뛰어다니며 놀았다.
소서가 지나 겨릅이 여물고 목피가 단단해 지면 낫으로 낱낱이 쪄서 한 아름씩 단을 지어 놓는다. 삼껍질은 삶아야 질겨지는데, 삼단의 부피가 크다보니 농부들은 부득불 공동작업으로 커다란 임시찜틀을 만들어 삼을 찐다. 냇가에 너른 터를 잡고 우선 바닥을 파내어 아궁이를 낸 다음 돌가마를 위에 쌓아 짓는다. 시골 냇가에 흔한게 돌멩이라 각진 돌들을 모아 차진 흙을 개어 가마벽을 만드는데, 담쌓기가 이골이 난 동네 장정들 대여섯이면 한식경에 가마 두어개 만드는 것쯤 여반장이었다. 남정네들은 제각기 준비한 삼단들을 지게로 공동작업장에 옮기는데, 생 것의 무게가 여간 아니어서 삼밭이 먼 이들은 삼단 열댓 개 져 나르려면 쎄(혀)가 빠졌다. 삼단은 미리 만들어 놓은 커다란 돌가마에 차곡차곡 쟁여 놓는다. 농부들은 키우는 소 얼굴도 알아보고 닭도 제 것은 구별해 내니 삼단에 굳이 이름 쓸 것도 없었다.
여름철이라 땔감 구하는 게 쉽지 않다. 각자 겨우내 쓰고 남은 마른 나무 잔가지며 뒤안에 쪼개 쌓아 놓았던 장작이나 고자배기 등을 자발적으로 들고 나와 모은다. 동네 어귀 벼락맞아 흉물스럽게 서있던 느티나무며 지난 초여름 장마에 산사태로 쓰러져 방치돼 있던 아카시아 나무 등걸도 이때 요긴하다. 물을 뿌려 가며 곰방대 피워가며 삼단을 찌는데, 햇볕에 화기에 일꾼들의 얼굴이 검붉게 익어간다.
장작불이 시뻘겋게 타는 동안 한켠에서는 물꼬를 돌려놨던 또랑에서 가재, 미꾸리, 빠가사리 등을 건져 올리고, 호박잎, 풋고추, 깻잎, 풋마늘 등 푸성귀를 장만하는 패, 닷말짜리 막걸리통과 두 되짜리 막소주를 져 나르는 패, 적당히 냇가에 걸어놓은 가마솥에 밥을 안치고 매운탕을 준비하는 아낙네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로 동네는 바야흐로 잔치판이다. 천직으로 알고 농사일에 매달렸던 우리 어른들- 그들에겐 이런 공동작업이 그나마 가뭄 콩나듯 즐겼던 낭만이었지 싶다.
이어 삼껍질을 벗겨 적당한 굵기로 째고, 초벌 삼아 잇고, 물레로 자아 타래를 만들어 양잿물에 탈색하고, 잘 헹구어 말린 뒤 재벌로 고쳐 삼아 날줄 만든다. 노오란 비자물로 염색하여 도투마리에 올리고 나면 긴긴 동짓달 밤 구슬픈 콧노래 가락에 장단을 실으며 베짜는 일이 남는다. 삼베 한 필이면 요즘 단위로 12미터(동네에 따라서는 9미터)인데, 그 놈을 짜려면 바디질 두어번에 베틀신끈 한번 놓고 당기며, 씨줄담긴 북통 양손으로 던져받기를 수만번-들일로 천근만근 곤비한 몸으로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길쌈을 하셨다.
대마가 마리화나(대마초)라 불리는 마약재료라 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기고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는 요즈음, 낯설고 물 선 타향객지 생활을 하다보니 그런지 너나없이 농부들의 후예인 우리들은 선대들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들을 너무나 쉽게 잊어 가고 있는 듯하다. 연초 미수를 한 해 앞두고 생신날에 주무시듯 돌아가신 내 어머니-땀에 젖은 삼베적삼에 삼태기 허리에 걸치고 사립문 들어서시는 어머니의 그 모습이 오늘따라 몹시도 그립다.
서공렬/컬럼비아,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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