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헌법은 가장 고치기 어려운 법의 하나다. 연방 상하원 각각 2/3의 동의가 있거나 50개 주 의회 2/3의 발의로 헌법 수정에 관한 회의를 열어 3/4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지난 200여 년간 수백개의 수정안이 발의됐지만 정작 통과된 것은 27개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수정 헌법 21조는 18조를 폐기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25개뿐이다.
여러 수정 헌법 조항 중 유일하게 폐기된 18조는 미국 전역에서 술의 생산과 판매, 수입을 금지한 것이다. 1919년 수많은 금주 운동 단체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통과된 이 법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분 ‘진보주의 운동’의 결정판이었다. 이 법안 지지자들은 음주의 해악과 술이 사라질 때 얼마나 좋은 사회가 도래할 것인가를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설파했다.
그러나 막상 이 법이 발효하자 결과는 영 딴 판이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몰래 술을 사기 위해 ‘스피크이지’(speakeasy)란 비밀 술집으로 몰려들었고 밀주 생산과 판매망을 장악한 갱단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기승을 부렸다. 지금도 갱 두목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알 카포네가 시카고를 자기 세상으로 만든 것도 이 금주법 덕택이다.
이 법의 폐해가 너무나 명백해지자 연방 의회는 1933년 수정 헌법 21조를 통해 이를 폐기했다. 이처럼 좋은 의도로 제정된 법이 뜻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뜻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제정된 웰페어 제도가 오히려 이들의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고 웰페어에만 생계를 의존하는 생활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그 한 예다. 이런 웰페어 중독자 수가 급증하자 연방 의회는 1996년 수혜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근로를 의무화하는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그 후 웰페어 수혜자 수는 2/3나 줄어들었고 이들은 지금일자리를 얻어 ‘생산적인 사회인’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다.
금주법 하에서의 술 구입과 같은 범죄를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불린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합의하에 물건을 주고받았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법이 정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처벌받는다. 이런 ‘피해자 없는 범죄’를 처벌할 때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 처벌하기도 어렵고 그로 인한 실익도 불확실한 데다 자칫 하면 ‘뜻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에 따라 개악이 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피해자 없는 범죄’의 대표격이 불법 체류자의 취업이다. 현재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농장 노동, 쓰레기 청소, 막노동 등 일반 미국인들은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것들이다. 이런 잡은 미국인들에게는 허드렛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불볕이 내려 쬐는 사막과 눈 덮인 고산을 넘어오는 라티노들에게는 귀중한 일자리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는 10년이 걸려도 만져보지 못할 돈을 1~2년이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국민 중에 불법 체류자가 딴 과일이나 야채를 먹지 않고 이들이 지은 집에 살지 않으며 이들에게 청소와 빨래를 맡기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면서도 툭 하면 온갖 사회 문제를 이들 탓으로 돌리고 발로 차 내쫓으려 한다. 이들이 일시에 사라지면 그 경제적 결과를 감당할 자신은 있는 것일까.
이민국의 후신인 이민 관세국(ICE)은 최근 들어 불법 체류자 고용 업소에 대한 단속을 크게 강화했다. 2002년 25건에 달하던 불법 체류자 고용주에 대한 기소가 올 들어 이미 445건을 넘어섰다. 이 와중에 2,700명의 노동자가 추방됐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불법 체류자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미국 내 불법 체류자 수는 1,200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1년에 만 명씩 추방해도 다 내쫓으려면 1,200년이 걸린다.
미국은 지금 ‘테러와의 전쟁’부터 소셜 시큐리티 개혁에 이르기까지 시급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모두가 기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며 좀 먹고 살겠다고 애를 쓰는 라티노를 잡아 쫓아내는 일은 급하지 않다. 미 정부 당국은 ‘피해자 없는 범죄’ 단속의 ‘뜻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기 바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