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토맥 칼럼
▶ 김필규 <메릴랜드대 정치학과장>
애국가가 장중하게 울려 퍼졌다. 러시아 땅에서!
지난주 서방 주요 7개국과 러시아(G-8)의 정상회담이 열렸던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길목, 러시아 토산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한 광장에서였다. 순간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고 쏠린 시선을 따라 발길을 옮겼더니 3인조 악단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트럼펫과 아코디언, 튜바로 연주하는 애국가! 이어 ‘아리랑’ 그리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계속 이어졌다.
이역 땅 구 소련 러시아에서 애국가를 들으니 마음이 뭉클하기까지 하였다. 여행자의 마음을 움직인 이들에게 우리일행은 각자 30루블(1불이 조금 넘음)을 기꺼이 기부금 통에 넣었다. “말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사람을 사귀라”는 러시아의 속담처럼 이들은 한국인에게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마치 러시아와 한국과의 밝은 미래를 알리는 전주곡 같이 들리기도 했다.
러시아는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한때는 공산국의 종주국인 구 소련 모스크바엔 북한 유학생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천명이 넘었다고 하지만 1991년 소련의 붕괴 후 이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지금은 모스크바 공항에서부터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는 도로와 중요건물 옥상에 한국제품(LG와 삼성전자) 광고가 눈길을 끌었고 도로에 질주하는 외국산 포드, BMW, 토요타 자동차들 가운데 현대와 기아가 경쟁이라도 하듯 눈에 자주 뜨인다. 모스크바를 끼고 흐르는 볼가 강 언덕에 자리 잡은 정부청사 근방에는 삼성전자 네온사인이 모스크바 야경을 더욱 빛내주었다.
지난 6월14일부터 6월21일 기간 동안 러시아 외교 아카데미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의 후원으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한·러 학술회의에서 러시아 학자들은 러시아가 석유, 천연가스 등 풍부한 지하자원에 힘입어 높은 경제성장의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과 경제 개발에 한국기업의 투자를 강조했다.
타스통신 사장(Vitaly Ignatenko)은 러시아가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는 한국제품의 높은 인지도 때문이라고 했고,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총장(Uri Fokine)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신흥 공업국 한국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건설과 공동 우주개발, 군사기술분야, 에너지 프로젝트에 러시아의 동반자가 되어 참여할 것을 권장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부총장(Stanislav Tkachenko)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한반도종단 철도 연결사업의 중요성 을 강조하면서 일찍이 푸틴 대통령이 2000-2001년 남북한을 동시 방문하고 이를 강조한 것을 상기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의회에서(2002년), 한국문제에 관련하여 통일된 한반도는 동북아 안보와 러시아 경제 발전에 중요함을 피력하고 한국통일에 그의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부총장(Eugene Bazhanov)도 통일한국이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균형자’이론을 전개하면서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고 현상유지에만 관심이 있지만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강대국 중 남북한 통일을 진정으로 바라는 국가라고 지적하고 향후 한-러 긴밀한 관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 관점에서 미국과 함께 한반도 분단에 관여해왔다. 우리와 함께 분단되었던 독일은 미국과 소련의 도움을 받아 이미 통일의 위업을 성취했으나 불행히도 우리는 이 통일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한국은 아세아의 모델 국으로서 등장했으나 그 후 위정자의 좁은 안목과 자신의 개인치부 정권욕에 사로잡힌 결과 정파싸움이 끊이지 않고 통일 외교는 북한의 조종 하에 딸려 가는 형식에 불과한 남북협상으로 방향 없이 표류하여왔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통일 외교노력이 필요하며 더 이상 방향 없이 표류하지 말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미국과 소련을 지렛대로 통일을 이룩한 독일을 타산지석으로 본받아 미래지향적인 안목으로 미국과 러시아와 잘 협조하여 한반도통일을 앞당기는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을 위한 한국외교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긴밀히 유지하고 러시아와도 밀접한 관계를 모색함이 바람직하다.
한-러 밝은 미래를 위해 전주곡처럼 울려 퍼졌던 우리 애국가와 고향의 봄 노래를 멀지 않은 장래에 모스크바 발 서울행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들을 그날을 기대해본다. 학술회의 마지막 날 백야의 발틱 해변 이름 모를 카페에서 모스크바 대학 두 교수들과 푸시킨의 시를 읊으며 석별의 아쉬움을 나눌 즈음 석양이 붉게 바다에 물들고 있었다.
김필규 <메릴랜드대 정치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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