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못지않은 도로 위 공공의 적이 또 하나 등장했다. ‘통화운전’이다.
“전에는 길에서 비틀대는 차를 보면 우선 ‘음주운전자구나’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통화 중이군’으로 바뀌었다. 대부분 틀림없다” 최근 LA타임스 한 사설의 첫머리다. 신호도 안 준채 불쑥 끼어드는가 하면 아무리 깜박이를 켜대며 다가가도 좀체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급회전을 하거나 스톱사인은 무시하기 일쑤고 빨간 신호등을 버젓이 지나치기도 한다. 놀라고 화가 나 운전석을 살펴보면 술 취해 깜박깜박 조는 아저씨도 있지만 셀폰 통화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아가씨도 적지 않다. 빵- 경적을 울리면 술 취한 아저씨는 펄쩍 놀라 정신을 가다듬지만 전화하던 아가씨는 팍 인상한번 쓴 후엔 수다 떨기로 되돌아 간다.
그래서 일까.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한 것이 통화운전이라고 유타대학의 연구팀은 지적한다. 셀폰 통화운전은 혈중 알콜농도 0.1% 상태 운전과 비슷하지만 보행자나 신호등을 발견했을 때 브레이크를 밟는 등 비상시 대처능력은 오히려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셀폰이 교통사고의 최신 주범임을 증명하는 통계도 나왔다. 작년 한해 캘리포니아주에서 셀폰 운전자가 낸 사고는 1,200건으로 집계되었다. 통화중 발생률은 안할 때 보다 4배나 높다.
요즘은 미국에서도 셀폰이 개를 제치고 ‘인간의 베스트 프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심심찮게 지적된 ‘셀폰 공해’도 지금까지의 매너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음악회 도중 울리는 셀폰 벨소리와 운전 중 셀폰 통화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한 기분과 생명 위협의 차이다.
캘리포니아에서도 통화운전 금지법이 곧 마련될 전망이다. 한달여전 주 상원을 통과했고 다음달 주 하원에 부쳐진다. 손으로 전화기를 들고하는 ‘핸드헬드’ 통화는 금지하되 헤드셋 등을 사용하는 이른바 ‘핸즈프리’ 통화는 허용하며 첫 위반에는 20달러, 계속 위반하면 50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비상시에는 핸드헬드도 허용되지만 물론 ‘중요한 미팅에 늦어서’등은 비상시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원에선 2년전 비슷한 법안이 통과된 적이 있었고 지난 주말 슈워제네거 주지사도 적극 지지의사를 밝혔다.
5년전부터 계속 추진해오다 겨우 빛을 보게 된 셈인데 반대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또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사실 운전자의 집중력을 떨어트려 안전운전을 방해하는 게 어찌 셀폰 뿐이겠는가. 정신 빼놓기는 뒷좌석에서 싸우고 울어대는 아이들이 훨씬 심하다. CD 바꿔 넣기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거울보고 화장하거나 뜨거운 커피 마시며 곡예운전했던 아찔한 경험은 대부분의 우리도 한두번쯤 갖고 있다.
뿐만 아니다. 멀티태스킹의 세상이다. 모든 차에는 컵홀더와 조명 거울이 부착되었으며 DVD와 TV까지 설치해놓고 운전하는 시간을 ‘즐겁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라고 부추긴다. 우는 아이 태우기나 커피마시기 금지안은 왜 안 만드느냐, 새 테크놀로지가 나올 때마다 금지법을 만들 것이냐고 반대자들은 되물으며 따진다. 그보다는 기존의 난폭운전 단속법을 강화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한다. 담배피지 말라, 안전벨트해라에서 이젠 전화해라 말라까지 정부의 간섭을 받아야 하느냐는 반발도 있다.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운전중 통화는 개인의 문제고 상식의 문제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으로만 위험하게 행동하는 인구가 늘어난다면 규제를 해서라도 공공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게 법의 의무다.
반대보다 더 큰 걱정은 실질적 효과다. 이미 금지법은 세계 45개국과 미국내 뉴욕, 뉴저지, 컨넥티컷, 워싱턴DC등에서 시행중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상습위반의 경우 3개월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고 폴랜드의 벌금은 최고 1천달러까지 부과된다. 3년전 시행 첫 해 뉴욕주는 14만2천장의 티켓을 발부했었다. 그런데 요즘 뉴욕의 통화운전은 금지안 시행전보다 별로 줄지 않았다. “나도 경찰이 보이면 스피커폰을 쓰다가 안보이면 ‘정상적으로’ 통화를 하거든요” 뉴욕시 교통분석가의 자백이다.
담배 끊듯이 운전 중 셀폰 끊으면 보험료를 깎아준다면 모를까, 55마일 속도제한법처럼 사문화될 것이라는 비관론은 지지자들 사이에도 많다. 그러나 안전벨트법처럼 서서히 정착될 수도 있다. 1984년 제정된 안전벨트법이 정착되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요즘은 90%이상의 운전자가 이를 준수한다. 셀폰 통화도 안전벨트처럼 어느 한순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심어져야 한다.
통화운전에 대한 도움말이 필요해서 한 ‘전문가’에게 전화를 건다. 음주운전과의 차이도 설명 듣고 금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듣는다. 끊기 직전 지나가는 인사삼아 묻는다. “지금 어디계세요?” “차 안이예요. 퇴근길입니다” “예? 죄송합니다. 그만 끊겠습니다” “아직은 괜찮아요, 그리고 제가 아주 안전한 운전자거든요, 하하”
정말 철저한 계몽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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