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둘째가 여러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끊지 않고 있어 더 이상은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될까봐 보고만 있다. 두 번이나 단연 경력이 있는 나는 둘째가 비록 일주일에 한갑 정도 태우는 담배이지만 어린 두 아이를 가진 가장에다 건강을 돌보아야 할 중년 나이에 접어들고 있어 마음이 쓰인다.
나도 40대 초반에 미국에 오기까지 하루에 갑 반을 피우는 골초였고 혈압이 높아 담배를 끊었던 아버지는 나에게도 담배끊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서 시작한 담배는 혼란기의 고뇌와 고민을 다독여주던 친구였고 그 뒤는 담배의 삼매경 미학에 깊이 빠져 있어 나는 쉽게 결심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못마땅해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77년도에 미국으로 이민 올 때 “제발 담배를 끊어라. 그런 결심도 없이 저 어린것들을 데리고 미국 가서 어떻게 살려 하노, 네가 건강해야 저것들을 먹여 살릴 것 아닌가” 하고 거듭 간곡히 부탁하셨다.
그때만 해도 지극히 먼 나라로 인식되던 미국에 자식을 떠나 보내면서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을 예감하셨는지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셨다. 그 날부터 3개월 뒤 아버지는 자식들이 낌새를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눈물은 두고두고 내 가슴속을 적시고 있다.
이민 와서도 나는 미국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세수를 하다가 뒤통수에 미약하나마 불쾌한 통증을 느꼈다. 문득 계시 같은 아버지의 말씀이 머리속을 스쳤다. 내가 잘못되면 아내와 두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하는 두려움이 가슴을 때렸다.
충격은 컸고 결심은 곧 섰다. 우선 담배를 없애고 아침에 일어나면 변기에 앉아 첫 담배를 시작했던 타성부터 극복해야만 했다. 담배의 중독성은 뜻밖에도 강했고 갈증이 광기를 부렸다. 20여년을 피워오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는 다는 것은 지옥 같은 고통이 었다.
나를 두고 나와 또 나와의 처절한 싸움이다. 사흘을 버티고 나니 담배의 유혹은 한풀 꺾였다. 일주일 지나고서는 냉수에다 밥을 말아먹으며 입맛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4년 뒤 리커스토어를 하면서 긴 시간에다 강도와 좀도둑 그리고 미성년자들과의 충돌에 심신은 지쳤고 담배가 바로 곁에 있어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그 위에 아침과 점심을 거의 커피와 컵 케이크, 소다와 컵 라면으로 때우던 나는 돌연 오른쪽 수족에 가벼운 마비가 오고서는 의사의 경고에 따라 두 번째 담배를 끊게 되었다.
고희에 이르러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인생은 크고 작은 인과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 세상 도처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혹이 있고 신기루 같은 환상의 함정이 있다. 마약과 알콜과 노름의 환상은 인간을 걸레로 만들고 할리웃의 멋과 낭만의 담배는 인간을 죽음의 계곡으로 내몬다. 본시 없었던 내가 부모에 의해 태어난 선택받은 인생이고 보면 내가 마음과 몸이 건강해야 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내 가족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자식들의 깨달음은 더디고 회한의 골은 깊다, 둘째를 바라보는 내 가슴속에는 아버지의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남진식/사이프러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