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부시대신 알 고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어떻게 변했을까? 우선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80여 나라들과 함께 지구 온난화에 적극 대처하자는 교토협정에 서명했을 것이다. 미국은 이 두 가지만으로도 세계를 주도하는 초강대국의 신뢰도를 지켜갔을 것이다.
대선 당시, 알 고어는 부시측 흑색선전의 희생자였다. 그는 유머 없고 뻣뻣한 관료 정치꾼으로 부각돼왔다. 가장 심했던 건 고어가 자기를 ‘인터넷 발명자’라고 과대 포장했다는 조롱이다. 사실이 아닌데도 널리 퍼져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 그가 의원일 때, 군에만 허용되던 인터넷을 국민들에게도 보급하자고 주장, 법 제정에 적극 앞장섰다. 인터넷 확산에 끼친 공이 누구보다 큰데도 그는 여론오도로 몰염치한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낙동강 오리알이던 고어가 5년만에 재기하고 있다. 그의 인기 상승은 부시의 심각한 실정(失政)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고어의 변함없는 신념과 정도(正道)를 걷는 행보 때문인 듯하다. 이라크 침략 때, 애국심 대세에 밀려 민주당 중진들조차 묵시적 동조를 했었다. 그러나 고어는 자신이 싸웠던 베트남전쟁과 비견하며 침략을 시종일관 반대했다. 지금 와서야 미 국민들은 고어에 귀기울이지 못한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어가 뜨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만든 환경 기록영화 「불편한 진실」의 호평 때문이다. 부시가 석유 회사들을 노골적으로 비호하는 정책과 대비되면서 또 한번 미국인들의 양심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가 지난 6년간 세계를 돌며 펼친 환경문제 강연을 종합한 이 영화의 메세지는 명료하다. “지구온난화는 진실이며 인재(人災)이다. 지금 손쓰지 않으면 10년 내로 지구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라는 경고이다.
그의 경고는 방대한 과학적 자료에 근거를 두고있다. 최근 지구온난화를 다룬 논문 중 925편이 이 경고를 뒷받침하는 반면, 반박하는 논문은 단 한편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사진들은 빠르게 녹고있는 극지(極地)의 빙하들과 재앙적 규모의 홍수와 가뭄이 교차하는 지구촌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가 열거하는 과학적 진실들은 듣기에 참 불편하다. 지구온도를 측정한 수 만년 역사동안 최고치가 근래 14년 안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또 지난 30년간 초강력 허리케인의 빈도수가 배로 증가했다. 열대성 말라리아가 이젠 고도 7천 피트 이상 되는 안데스산맥에서 나타나고, 279종 생물들의 서식지가 점차 극지방으로 옮겨가는 게 밝혀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면 결과는 참담하다. 매년 30만 명의 희생자가 나고, 해수면이 20피트 이상 높아져 해안도시들의 침수는 물론, 남극과 그린랜드의 대 빙판이 소멸된다는 것. 더 놀라운 예측은 2050년까지 북극 얼음이 녹아 흰곰을 위시한 수백만 동식물이 멸종될 것이라는 것 등이다.
고어는 여기서 여론 조작(造作)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다. 과학계가 100% 온난화 현상에 동의했음에도 언론매체를 조사해보면 오히려 다수인 57%가 이에 반박하거나 회의적인 논조라는 것이다. 이는 에너지회사나 이권단체의 로비의 영향인데 수많은 지식층들도 속고있다. 역사적인 예가 담배논쟁이다. 흡연의 해로움은 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졌다. 그러나 담배재벌들의 집요한 여론오도로 아직도 담배가 건강에 꼭 나쁘지만은 않다라는 생각이 청소년층에 만연돼 있다.
과학적 진실을 인정치 않고 논쟁(論爭) 화하면 사람들은 혼돈에 빠진다. 그래서 사회악을 없애려는 노력에 분열을 가져온다. 고어는 양심적인 과학적 사실을 믿고 심화되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나부터 행동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석탄과 석유사용을 줄이기 위해 생활이 좀 불편하더라도 절전하고 차를 덜 타자고 권한다. 혼자는 작은 일이지만 지구촌이 힘을 합하면 큰 결과가 나타남을 강조한다. 10년쯤 후, 고어의「불편한 진실」에 귀기울이지 못한 죄책감에 다시 시달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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