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총상입은 박모씨 친모 본보 단독 인터뷰
“신변위협 느낀 경관의 총격은 정당방위”
지난달 29일 30대 한인남성 박모씨가 경찰에 저항하다 총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본보 6월 30일 1면 보도), 충격을 준 가운데 당사자 박모씨의 친모인 최숙자(63)씨가 6일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당시의 정황과 심경을 토로했다. 최씨는 아들이 경찰관의 총에 총상을 입는 현장을 목격, 누구보다도 큰 충격과 상심을 느꼈을텐데도 주위 한인들의 생각처럼 경찰의 과잉대응은 아니었으며 충분히 신변의 위협을 느낀 경찰관의 정당방위였다고 설명했다.
늙으수레한 경찰 혼자 좁은 집안에서 아들에게 쫓겨다니다가 나중에는 창문을 열어 허공에 매달리려고까지 하더라고요. 그러다 구석에 몰리니까 놀라서 총을 쐈지요. 처음부터 총을 꺼낸 건 아닙니다.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에 대해 최씨는 아들이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많이 아파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아들 박씨는 벌써 10년째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 사람을 무서워해 하루종일 침대에 있으면서 이상한 사람이 들어올까봐 출입문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자꾸 누군가 자기에게 말을 건다면서 혼잣말을 하는 걸 보니 환청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전했다. 게다가 아들은 당뇨가 심해 육체적으로도 고생이 심하다고 전한 최씨는 요새는 엄마가 없으면 하루종일 굶기도 하고 당뇨 때문인지 구토도 심했다며 안그래도 좋지 않은 건강에 치아 상태도 나빠 소화가 안돼서 활명수를 달고 사는데 물어보면 엄마 걱정시키기 싫어서인지 안아프다고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픈 게 눈에 보이는데 아들이 혼자서 참아볼 요량으로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지켜보는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진다.
당뇨 환자는 혈당이 올라도 문제지만 굶어서 저혈당이 되면 쇼크가 온다네요. 의사에게 물어봤더니 그러다 큰일나니까 위급으로 병원에 데려가라고 해서 이웃에게 신고를 부탁했지요. 그런데 그날따라 약을 안먹어서 다시 환청이 들리고 발작이 시작된 거라...
최씨에 따르면 아들 박씨는 원래 힘이 세고 체격이 좋아 애초부터 911에 전화해 경찰 5, 6명이 함께 왔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경찰이 1명밖에 오지 않았고 아들의 발작까지 시작되는 등 그날은 악재가 겹쳤다. 그는 내가 먼저 들어오고 경찰이 따라들어왔는데 아들이 옷장을 뒤집고 조그마한 낫을 어디서 찾았는지 꺼내들어 덤벼들었다. 정통으로 총을 맞고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냐면서 그날의 심각했던 상황을 전하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아들이 병원에 실려가서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뒤 엄마 나 다리가 많이 아프다라고 했을 때는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듯 최씨 역시 자신의 불편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아들 걱정만 태산이다. 자신도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어 3층 허름한 아파트를 오르내리기도 힘든 상태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아들의 아픈 다리 생각 밖에 없다. 최씨는 (아들이) 지금도 몸과 마음이 불편한데 이제 다리까지 절게 됐으니 앞으로 애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야 하겠냐며 내가 언제까지나 돌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생각할수록 눈물만 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15년 전 처음으로 미국에 올 때만 해도 잘생기고 멀쩡했던 아들이 왜 이렇게 됐을까. 최씨는 한숨을 내쉰다. 그에 따르면 아들 박씨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X-RAY 기사가 된다며 인근 대학에 진학할 때만 해도 멀쩡했다.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하루 10시간 이상 열심히 했다. 틈틈이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계에 보태기도 했던 착한 아들. 그랬던 그가 10년쯤 전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나이든 어머니가 힘에 부쳐 주저앉을 만큼 무거운 ‘짐’이 돼버렸다.
그래도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요. 내가 조금만 더 힘들면 되지. 하지만 사람들에게 괄시당하고 버림받을 것을 생각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예전에도 몇번 아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마다 최씨를 가장 서럽게 했던 건 사람들의 무시와 냉대였다.
특히 경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예전 911이 터졌을 때였어요. 애가 백에 음식을 잔뜩 사서 돌아다니다가 항상 같은 길로 왔다갔다 하니까 인근에 있던 시큐리티가 경찰에 신고해서 잡혀갔지요. 그런 경우가 한두번이면 말도 안해요. 언젠가는 (아들이) 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음악을 크게 틀어놨다가 경찰에 잡혔는데 주소도 전화도 모른다 하니 수용시설에 40일이나 가둬놓은 거 있죠. 자동차가 내 명의로 돼 있고 게다가 아들이 10년이 넘게 정신과 카운셀링을 받고 있다는 것도 조회하면 다 알 수 있는 건데 아무런 연락이 없더라구요. 아픈 아들을 잃어버려 정신없이 3주간 찾아다녔는데 사람을 가둬놓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으니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그냥 그 자리에서 목놓아 울어버렸지요.
그렇게 밖으로만 나가면 경찰에 항상 수모를 당하니 이제 아들도 안나가고 방에 틀어박혀 있으려고만 했다는 귀띔이다. 그런데 아들 박씨는 당뇨가 있는데도 하루종일 몸을 움직이지 않고 굶다가 엄마가 들어오면 폭식을 하고 있으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고. 최씨는“갈수록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마음이 너무 쓰라리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식이요법도 받고 있으니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마저 든다. 병원에서는 다리가 어느 정도 나은 다음에 정신과 치료를 한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앞으로 최씨는 아들이 병원 치료를 받고 풀려난 뒤에도 아픈 다리를 생각해서 당분간 인근 1층짜리 요양원에 보낼 생각이다. 그러다가 신청 중인 노인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 같이 들어가서 돌볼 계획이라는 것. 하지만 나라에서 보조하는 700달러로 살고 있는 그에게 이도저도 모두 버거운 부담이기는 하다. 최씨는 90년에 미국에 와서 10년 남짓 요양원 등지에서 일했다며 그러다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지난 2년간 일을 못했고 그저 나랏돈이나 받아 목구멍에 풀칠하며 살고 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갈수록 나이는 들어가고 그나마 몸도 성하지 않은데 언제까지 아들을 돌보며 살 수 있을까. 그래도 최씨에게는 아들 박씨가 삶을 지탱해주는 조그만 기쁨이다. 우리 아들이 나이는 서른세살이지만 완전 세살바기 아기에요. 주위 한인들은 다들 알겠지만 밖을 혼자 돌아다니다가 ‘아줌마 우리 엄마 알아? 안녕히 계세요’ 꾸벅 인사하고 돌아다니곤 하죠. 아기처럼 티없이 맑잖아요. 게다가 얼마나 제 엄마를 챙기는데요. 항상 주위 할머니들 볼 때마다 우리 엄마 좀 돌봐주세요 부탁하곤 해요. 내 아들이지만 정말 끔찍한 효자지요.
하지만 끝내 최씨는 말끝을 흐리고 만다. 차라리 불효자였다면 없는 셈치고 살텐데 그것도 아니니... 눈물이 자꾸 그의 앞을 적신다.
봉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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