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노리는데 대체 뭡니까?” “그건 북한에게 물어볼 문제지요”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강행 의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수염도 못 깎은 덥수룩한 모습으로 어제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던진 대답이었다.
지난 며칠 태평양을 가운데 두고 지구의 하늘은 참 어수선했다. 한쪽에선 주말부터 미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불꽃놀이가 쉴새없이 하늘을 수놓았고 두 번이나 발사가 연기되었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도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태평양 저쪽에서, 북한도 결국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연장전 마지막 2분에 2골을 터뜨린 이탈리아의 저력에 경탄하며, 온가족이 모여 뒷마당 바비큐를 즐기며, 이렇게 한가롭게 휴일을 즐기다가 우리 모두는 ‘할말’을 잃었다. “6.25때도 그랬는데…” 지나치게 비약적인 8순 노모의 한마디가 잠시지만 우리들을 섬뜩하게 했다. 온종일 CNN은 북한미사일 특집을 방송했고 불꽃놀이도, 축구도, 디스커버리도 미사일의 뒤쪽으로 묻혀버렸다.
국제사회 전체가 그렇게 만류하고 경고했는데도 북한은 결국 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한미양국의 전문가들이 추정한 다양한 해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김정일 정권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서다. 붕괴직전의 경제로 흔들리는 국내체제의 결속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다각도로 압박을 가해오는 국제사회를 향해서도 효과적일 수 있다. 극약처방이라는 것을 계산 안 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섰을 테고 바로 그 심리가 북한을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이란의 핵개발에만 조명되는 세계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면 그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미국을 사정권 안에 둔 대포동 2호는 발사 직후 추락해 실패했지만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겼으니 미사일 능력도 과시했다. 미사일 관련 수출로 연 15억달러에 달하는 외화벌이도 크게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북한의 가장 큰 목적은 대미관계에 있다. 미국을 향해 자신들을 ‘타겟’으로 삼지말고 동등한 파트너로 ‘존중’해달라는 위협적인 요구다.
지금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직접대화다. 경제문제도, 국제외교도, 정권강화도 미국과 손만 잡으면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어 보이는 것이다. 미국내 적지않은 정치인들과 학자들도 부시행정부에게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피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존스합킨스 대학의 존 오버도퍼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과의 직접 대화가 북한의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주는 마법은 아니지만 문제해결을 위해선 필요한 첫 단계다…소련에게 강경하게 대처했던 레이건이 한편으로 직접대화를 병행하지 않았다면 냉전 종식기는 훨씬 더 위험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강수를 둔 것은 나름대로 믿는 데가 있어서다. 98년 대포동 1호 발사후의 대응을 보고 얻은 자신감이다. 당시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낙하했고 경악한 세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제재를 촉구했다. 그러나 안보리가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은 별로 강경하지 못한 의장의 ‘대언론 성명’에 불과했다. 주권국가의 미사일 발사를 제한하는 국제법의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인접국가에 알리지 않은 외교상의 과실은 질책할 수 있으나 위법으로 다스리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결국 미국과의 직접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클린턴의 미국과 부시의 미국은 다르다. ‘클린턴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지만 부시가 원하는 것은 정권의 교체’다.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악의 축과의 거래를 용납하기 힘든 것이다. 이번에도 백악관은 또 다른 ‘악의 축’ 이란과의 협상을 보고 희망을 갖는 북한에게 직접대화는 꿈도 꾸지 말라고 강력하게 못박고 있다.
부시는 이번 미사일 사태가 가져온 소득이 있다면 그건 ‘국제사회의 단결’이라고 말했지만 시원한 대응책이 많은 것은 아니다. 군사보복은 애초에 제외되었고 안보리 제재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쉽게 동의할 기색도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미사일 발사를 실제적 안보위협이 아닌 ‘정치적 불꽃놀이’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무모한 ‘새벽 도발’이 결국 어떤 득실을 거둘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 가장 큰 위험에 처하는 것이 한국·한국인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당장 일상이 무너질 한국인들로부터 남북을 구별 못하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악의 축’ 이미지를 감수해야하는 재미한인들에게 이르기까지 당사자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 대응에서 한국은 한쪽으로 제껴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왜 미 언론들까지 한국보다 중국과 일본의 반응을 열심히 알리는 것일까.
미·일 공조와 함께 중국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역설하던 한 전문가가 CNN의 래리 킹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국이요? 기대할 만한 파트너가 못됩니다. 전혀 협조적이 아니예요” 이번 사태가 한국정부의 대북자세를 바꾸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끌려가지 않고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쪽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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