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으로 할멈의 주름진 손이 모이를 뿌렸다.
“구구구구! ”
할멈은 아랫입술을 내밀어 소리를 내며 각질로 마디진 손가락 사이로 후드득 좁쌀을 뿌리다 마른 입맛을 다셨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이렇게 사나운 장닭을 보냈단 말인고. 잡아먹지도 못할 것, 그렇다고 알을 받을 수나 있나. 모이만 축내는 짓이여.”
옆에 섰던 할아범이 끙! 소리를 냈다.
“제 딴엔 생각해서 보낸 것을 어쩔 것이여. 어떻게 틈을 봐서 요절을 내야지.”
할아범은 지난봄이 시작될 때 다리건너 사는 조카가 몸보신이나 하라고 보내온 나를 잡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원! 사납기는! 세상에 살다가 이렇게 사나운 장닭 내 처음 본겨.”
할아범은 다시 끙! 소리를 내며 툇마루로 올라서 버렸다.
그래! 나는 사납고 사나운 장닭 한 마리다. 제법 살림살이가 넉넉한 할아범의 조카는 제 집 뒤뜰 닭장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검은 털에 둘러싸인 몸집이 큰 나를 골라내었다.
“저거 저 새까만 놈 작은 아버지 갖다드려. 봄도 되었는디 뭔 생색이라도 내야지.”
그가 행랑아범에게 눈짓을 했다.
“저건 장닭이라 살이 좀 질긴 것인디유. 이왕이면 씨암탉으로다 한 마리 보내시지유. 노인네 이빨도 성치 않으실틴디 고기가 연해야지유.”
행랑아범의 간섭에 그는 듣기 싫다는 듯 몸을 홱 돌려 앞마당으로 걸어가 버렸다.
“어구야! 장손이라고 선대 재산은 자기가 다 독식해 놓고 어렵게 사는 숙부님한테 씨암탉 한 마리도 아깝다냐?”
군시렁 대던 행랑아범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닭장 문을 열고 안 잡히려 버둥대는 나를 끄집어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개울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행랑아범은 나를 안고 징검다리를 건넜다. 잰 걸음 끝에 할아범네 함석대문을 들어서던 행랑아범은 봄 햇살 마냥 환히 웃어 보였다.
“어르신 몸보신 하시라고 제일 큰 놈으로 골라 보내셨구먼유.”
“이런 고마울 데가….”
마침 할아범이 밭일을 나간 터라 할멈은 나를 덥석 받아 안았다. 나는 그 순간 검은 날개를 퍼득대며 첫 번째 사나움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내가 이 집에 오게 된 이유, 그 살기를 할멈의 품 안에서 대뜸 감지했기 때문이다.
“에고! 이 놈이 왜 이 지랄이랴?”
할멈은 조카네 행랑아범이 다시 나를 붙들고 있는 사이 새끼줄로 내 한쪽 발목을 묶어 그 길다린 끝을 툇마루 기둥에 매어 놓았다.
어둑신 해진 저녁 할아범이 돌아오기 전에 나는 할멈이 부뚜막에서 뭔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는 틈을 타 새끼줄을 끊고 푸다닥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당으로 풀려나갔다.
“아고! 저것이 어떻게 새끼줄을 끊었다냐?”
놀라 뛰쳐나온 할멈이 날 잡으려고 앞마당 뒷마당으로 종종걸음을 쳤지만 나는 사납게 검은 날개를 펼치고 담장 높이까지 날아올랐다. 마침 막 대문을 들어서던 할아범이 그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다리건너 당신 큰조카가 장닭 한 마리를 보냈구먼유. 근디 어찌 사나운지 새끼줄을 끊고 저리 날뛰지 않어유.”
할멈은 진땀을 흘리며 숨을 헉헉거렸다.
“그려? 냅두지 뭐. 지가 가면 어딜 갈겨? 대문 단속이나 잘혀. 내일 낮에 내가 그냥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텐께. 임자는 저놈 데칠 물이나 한솥 끓여놓구랴.”
할아범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지만 나는 뒤뜰 풀밭에 두 발을 버티고 서서 결코 잡히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그저 장닭 한 마리, 생각이란 게 내게 스며든 건 다리건너에서부터 나를 안고 온 행랑아범의 손에서 이집 할멈의 품으로 옮겨가던 찰나였다. 할멈의 가슴에서 고동치던 식욕의 기쁨은 내게 섬뜩한 살기로 직감되었다. 나는 그 순간에 그저 모이를 쪼던 한 마리 장닭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뛰는 사나운 생명체로 변하고 말았다. 새끼줄을 끊고 그 집 마당을 헤매게 된 건 새로운 체험이었다. 다리건너 닭장에서 태어나 그저 그 안에서 살아온 내게 그것은 또 다른 세계였다.
그 봄의 시작에서 초여름이 오기까지 할아범과 나 사이엔 쫓고 쫓기는 스릴러가 계속되었다. 늙은 할아범은 나를 당해내지 못했다. 내가 삶에의 욕구에 날갯짓을 하면 할수록 내 가슴근육은 점점 단단해 졌고 두 다리는 더 빠르고 튼실해졌다. 틈만 나면 나를 잡으려 앞뒤마당으로 뛰던 할아범은 이내 숨을 헉헉대며 체념하기를 몇 번, 할멈도 쓸데없이 가마솥에 물을 끓였다가 그 물이 아까워 기름기가 빠진 제 몸만 애꿎게 씻고 또 씻어냈다.
밤이고 낮이고 죽음의 위협 속에 눈을 부릅뜨고 있던 나는 가끔 피로에 젖어 꼬박꼬박 졸기도 했지만 할아범의 기척이 들려오기 전에 반드시 잠을 깨고 사납게 날개를 퍼드득 거렸다.
늙은 부부 둘이서만 살고 있는 이 오두막에 언제부턴가 자그만 아이가 하나 생겼다.
“언제 데릴러 온다했어?”
“한 일주일만 데리고 있어 달라고요. 이사하고 정리하려면 그쯤 걸린다고.”
“그려?”
서울 사는 할아범의 아들이 잠시 맡겨놓고 간 세 살배기 여자애가 한낮이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쫄쫄 따라다녔다. 순진무구한 그 눈에 어른대는 내 검은 깃털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내가 부끄러워 왔다. 그 애 앞에서만은 감히 사나운 호기를 부리지 못하고 나는 조금이라도 사랑스런 몸짓을 하려고 조그맣게 구구구! 소리를 내며 붉은 볏을 흔들었다.
아이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히히히 웃음소리를 냈고 어느새 따라다니는 것은 그 애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아이의 분홍신발 끝을 종종 쫓고 있었다.
한동안 집안을 가득 채우던 살기는 불현듯 자취를 감추었고 아이의 웃음소리, 귀엽게 종알대는 혀 짧은 발음이 한낮이면 마당을 굴러 다녔다. 나는 좀 느슨해졌다. 할아범이 마당에 서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 옆을 걸어 다녔으며 전보다 자주 졸을 때가 많았다. 그들이 나를 잡아먹을 마음을 거두었을 거라고 믿었던 나는 역시 한 마리의 장닭, 닭대가리였다.
휘어진 문틀에 잘 닫히지도 않던 할멈의 부엌 뒷문, 벌쭘 열린 그 여닫이 문짝 위에 올라서 나는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아침녘에 할멈이 듬뿍 뿌려준 좁쌀을 배불리 먹고 이 빠진 사기대접에 부어준 물도 양껏 마셨다. 아이는 아침 내내 나와 함께 온 마당을 종종 걸어 다니다 낮잠이 들고 나는 나른한 기운에 푸드득 그 문짝 끝으로 올라 살풋 잠이 들었다. 노곤한 잠 속에 빠져 있을 때 무엇인가가 내 두 다리를 확 잡아채는 억센 기운에 후딱 눈을 떴다. 키가 작은 할아범이 문짝 옆 흙벽에 사다리를 세워놓고 올라와 나를 낚아챈 것이다. 있는 힘을 대해 퍼득대며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는 일, 그 옆에서 할멈의 옴팡한 눈이 고소하다는 듯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얼른 새끼줄로 두 다리를 묶어버려유. 저놈이 얼마나 사나운지 영감도 알잖아유. 또 놓칠라…. 우리 애기 서울 가기 전에 닭국물이라도 뽀얗게 고아 먹여야지유. 지 애비가 데리러 올 날이 이제 다 되었구먼유.”
할멈은 그동안 뿌려준 좁쌀모이를 기어이 보상받겠다는 듯 앙다문 표정으로 서둘러 새끼줄을 내밀었다.
내 두 발목을 꽁꽁 묶은 할아범은 나를 거꾸로 든 채 우물가로 갔다. 꼬꼬댁! 꼬꼬댁! 소리를 쳤지만 나는 이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농사로 다져진 할아범의 손아귀에서 그만 목이 비틀어지리라는 것을…. 그러나 할아범은 나를 우물가 판판한 돌 위에 눕혀 놓았다. 할멈이 숫돌에 잘 벼려진 식칼을 들고 부엌에서 촐랑촐랑 걸어왔다.
“목을 비틀어 죽이는 것 보다는 이게 더 고기 맛이 좋다면서유.”
“글쎄! 그렇다네. 피가 쭉 빠져서 고기가 맛있다는 구먼.”
둘이 주고받는 말 속에 나는 곧 참수형을 당하리라는 걸 눈치 챘다. 그건 짐작도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충격 속에 버둥거림마저 늦춘 채 물기가 번득이는 돌 위에서 잠잠해 졌다. 이윽고 할아범이 칼을 쳐들었다. 햇살이 번쩍 반사된 칼날 모서리에 내 짧은 생이 한 줄기 바람처럼 후드득 스쳐지나갔다. 눈을 질끈 감았다고 생각한 순간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우지끈 내 뼈를 분질렀다. 버둥거리는 내 몸뚱이가 돌 위에 누워 있었다. 그것은 잠시 가까이 보였다 멀리 보였다를 거듭했는데 이미 잘려버린 내 목이 몇 번인가 튀어 오르던 때문이었다.
그 순간 소멸되어 가던 내 의식 안으로 여자아이가 보였다. 아니 아직 시력이 살아 있는 내 눈동자 위에 그 아이가 또렷하게 투영되어 왔다.
“와~ 앙~”
아이는 금세 울음을 터트리며 제 할머니 치마폭에 매달렸다.
“아니 울 애기가 언제 깨어 나왔다냐.”
할멈은 얼른 아이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거렸지만 아이는 겁에 질린 듯 더 크게 울어댔고, 그 소리는 내 귀에서 희미해지다 한 순간 어둠에 삼켜진 듯 그만 먹통이 되었다.
** **
30년 후 도시의 어느 방, 여자가 울고 있다. 아리땁고 가냘픈 여자는 한 남자의 사랑을 극진히 받아왔다. 닭고기를 입에 대지 못하는 여자의 까다로운 식성을 남자는 오히려 더 여성스런 장점으로 받아들이며 그녀를 잘 보호해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은 곧 합쳐져 같이 잠을 들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시간이 가면서 남자는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와 함께는 단 한 점도 먹을 수 없는 닭고기…. 세상에 닭으로 만든 음식은 너무도 많았다. 사랑을 위해 절제되었던 남자의 식욕은 여자에 대한 다른 탐심으로 이어졌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여자는 점점 남자가 힘겨워졌다.
그들은 자주 다투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간 남자는 버릇처럼 동네 통닭집에 혼자 앉아 생맥주를 마시며 닭다리를 뜯었다. 몇 번인가의 결별을 겪고 홀로 사는 통닭집 주인여자는 차츰 그 남자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튀긴 닭고기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양이 늘어났던 어느 날, 남자는 통닭집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했다.
남자를 떠나보낸 여자는 서럽게 울고만 있다. 아주 오래 전 장닭의 복수였다.
■소설가/ 소설집 ‘안개의 칼날’, 장편소설 ‘구부러진 길’ 발간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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