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포들께 평소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귀하를 부르는 ‘동포’라는 호칭, 과연 맘에 드는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 호칭 문제는 비단 나 하나만의 관심이 아닌 듯 싶다. 2주전 이 난을 통해 내가 소개한, 서울이 해외동포를 보는 ‘몇가지 이론’을 읽고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한승주 전 고대 교수가 내게 e메일을 보내셨는데 그 분의 관찰 역시 예의 호칭에 관한 것이었다.
“(전략)… 미국에 사는 동포들이 우리 나라라고 말할 때는 한국을 지칭하고, 중국이나 구 소련에 사는 동포들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지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후자는 한국민을 말할 때 우리 민족이라고 하더군요…”
모국에 대한 해외동포들의 호칭이 이처럼 다를진대 이들을 무턱대고 ‘동포’라 불러온 서울 측 호칭 역시 차제에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다.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동포라는 호칭을 차제에 바꿨으면 싶다.
우선 동포라는 단어에 담겨진 ‘한’(恨)이라는 의미가 주는 거부감이 싫다. 우리 이민사가 바로 한의 역사인 탓이다.
우리 이민사는 140년 전, 구 소련 연해주 땅으로 몰래 월경한 함경도민들로 시작된다. 이들의 숫자가 거의 20만에 이를 무렵 스탈린은 이들 모두를 기차에 실어 중앙아시아 사막지대에 버린다. 이 가운데 8만이 추위와 굶주림에 죽고, 지금 구 소련 땅에 살고 있는 55만의 동포는 살아 남은 자들이 자식에 자식을 낳아 불린 후손들로, 지금 ‘고려인’으로 불리고 있다.
재중동포 역시 한의 역사다. 러시아 동포처럼 한반도 전역에서 기근에 허덕이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몰래 건넜거나, 아니면 일제의 강제 이주로 중국의 동북 3성에 내팽개쳐진 유맹(流氓)의 잔흔이다.
이들은 일제 때 8,000여명이 한꺼번에 집단 학살당하거나, 6.25 때 북한을 도와 남한 동족들한테 총부리를 겨누는 비운을 겪는다. 심지어는 학자들의 연구 대상에 올라 있다. 요녕성 A지역에는 경상도 상주 출신 이민자만, 흑룡간성 B지역엔 전라도 나주 출신 이민자만 100년 넘게 모여 살다보니 이조시대 지역별 풍속사를 연구하는 서울의 학자들의 단골 방문지가 돼 왔다. ‘조선족’이라 불리는, 소위 재중동포 230만의 현주소다.
요즘엔 조선족 말고 ‘신선족’(新鮮族)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한중 수교 후 중국 땅에 새로 발을 들인 한국 출신 상공인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70만에 이르는 재일동포 역시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간 우리 노무자 또는 농민들이 그 모체다. 50년 남짓 두 파로 갈려 툭하면 싸움을 벌여온지라 서울에서는 일단 ‘민단계’ 또는 ‘조총련계’로 나눠 부르고 있다.
재미교포는 예외다. 이민 초기 하와이 사탕수수 시절의 악몽은 있었지만, 지금 축복 받은 땅에서 꿈을 이루며 사는 유복한 계층이다. 허나 가난한 조선족한테는 자칫 ‘신선족’(神仙族)으로 비칠 소지도 있다. 재미동포 중엔 아예 한국계로 분류되는 걸 대놓고 싫어하는 층도 없지 않다.
이처럼 난립하고 범람하는 동포의 호칭을 하나로 규격화 할 수는 없을까. 지금 당장 대안용어를 찾기 힘들다면 Korean American이라는 미국식 표현을 그대로 본 따 한미인(韓美人), 한일인(韓日人), 또는 한화인(韓華人)으로 부르면 어떨까.
세 단어 어디에도 예의 역겨운 ‘한’ 냄새가 풍기지 않아 좋다. 우리보다 수십 배의 해외이민을 가진 중국의 경우, 아예 화인(華人)과 화교(華僑)로 양분해서 부른다. 화인은 외국에 살되 거주국 시민권을 가진 중국인을, 화교는 우리로 치면 재미 영주권자처럼 현지 국적을 따지 않고 사는 이민을 말한다.
요즘 서울에선 `탈북자`라는 말 대신 `새 터민`이라는 용어로 바꾸자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이왕 부를 바에야 듣는 사람 쪽에 한이나 악몽을 상기시킬 호칭일랑 삼가자는 취지다. 또 솔직히 말해 이 동포라는 단어, 민족주의 냄새가 펄펄 나는 데다, 이민자가 아닌 일반 서울 사람들이 들어도 얼마나 고색창연한 단어인가.
요즘 남녀의 사랑을 얘기할 때 이수일-심순애 시절의 ‘월하(月下)의 맹세’를 운운하는 사람이 있던가. ‘동포’라는 호칭, 정말 다시 생각해 볼 때다.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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