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월드컵 축구는 끝났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스위스의 벽을 결국 넘지 못한 채. 그런데도 아쉬움이 남는다. 뭔가가 더 있을 텐데 하는.
“A조에서는 미국이 역시 최강이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을 꺾었고 이라크 전에서도 승점을 굳혔다. 시리아와의 경기는 볼 것도 없고.”
“A조 못지 않은 곳이 B조다. 만만치 않은 팀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있다. 일본이 있고, 한국도 있다. 이 조에서 주목할 팀은 그러나 북한이다. 전력은 약하지만 변칙 플레이 일색의 예측불허의 전법을 구사해서다.”
월드컵은 계속되고 있다. 월드컵 풋볼이 아니다. 월드컵 폴리틱스다.
느닷없다고 할까. 북한의 신형 미사일 발사 움직임 말이다. 전 세계가 아연 긴장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핵탄두를 보유한 데다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도 성공했다는 건가. 이건 동북아의 안보환경이 대대적 변화를 겪고 있다는 걸 예고하는 게 아닌가.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기를 한 주. 북한이 슬며시 꼬리를 내리는 기미다. 결국 안 쏘는 게 아니라, 못 쏘는 것이다. 점차 그쪽으로 관망이 굳어간다.
쏜다면 지구상에서 완전 고립이다. 벼랑 끝 전술을 통해 뭘 좀 얻어내려는 것도 안 통한다.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를 끌어낸다. 그것도 몽상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나빠질 것이다.
김정일 체제에 그토록 유화적인 노무현 정부도 난색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지원을 할 명분이 자꾸 약해지니까. DJ의 북한 방문도 부도가 났다. 도대체 무슨 계산에서 김정일은 미사일 카드를 내밀었을까. 자살 꼴에 준하는 헛발질인가. 천만에다.
언뜻 보면 실패작 같다. 대 미국용으로만 볼 때는. 김정일의 미사일 카드를 북한 국내용, 한 발 더 나가 대 남한용이란 측면으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1998년 북한은 대포동 1호를 발사했다. 이후 김정일의 국내 입지는 더 굳어졌다. 대포동 2호 발사 움직임도 같은 맥락으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자본주의적 사고가 확산하고 있다. 체제이완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충격을 줄 필요가 있다. 그건 다른 게 아니다. 위대한 김일성 주석도 일찍이 못한 일을 하는 것이다. 미국 본토까지 사정거리에 든 장거리 신형 미사일 발사다.
그게 성공하는 날이면 권력의 핵심인 군부의 지지는 더욱 확고해진다. 게다가 군사적 억지력을 튼튼히 한 위대한 지도자로 자리 매김을 하는 것이다.
대 남한용의 성격이 더 짙다는 이유는 이렇다. 대포동 1호 발사 이후 남한의 북한 정책은 확연히 달라졌다. 유화 쪽으로 급선회를 한 것. 그리고 전에 없던 일이 발생했다. 한국과 미국 관계가 점차 소원해지면서 동맹관계는 심각한 균열증세를 보이기에 이른 것이다.
또 한 차례의 미사일 위기, 이를 통해 김정일이 우선 노리는 건 한미간의 불화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이 노림은 벌써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북한 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만이 북한이 준비중인 발사체를 ‘인공위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 워싱턴은 상당한 불만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당사자인 한국을 우선논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부시는 한국의 대통령에게 전화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DJ의 북한 방문 부도는 그러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완전히 무산된 게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추진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미국의 한 안보전문 관측통의 말이다.
“미사일을 발사하든 안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찌됐든 한반도에서 위기를 계속 조성한다. 그 클라이맥스의 시점에 DJ의 방북을 허용한다. DJ는 지난 94년 북한 핵 위기 때 카터가 맡았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미사일 발사계획 파기만 선언하는 게 아니다. 더 깜짝 놀랄 선물도 안겨준다. 가령 서울방문 약속을 한다든지 하는. 그렇게 되면 상황 일변이다. 5.31 이후 반(反)햇볕, 반(反)노무현으로 굳어진 한국의 정치판이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말하자면 DJ 방북카드는 수세에서 공세로 극적인 국면전환을 가져올 조커로 이용도가 여전히 높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타이밍이다. 언제쯤 될까. 빠르면 올 여름이라는 관측이다.
그 시점을 시발로 대대적 공세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거다. 그 라인업은 이미 짜여졌다. 뭐랄까, 한반도의 남북을 관통하는 좌파 대연합이라고 할까.
여전히 아쉽다. 조 리그에서 결국 탈락하다니. 그나저나 축구는 축구일 뿐이지 않은가. 월드컵 폴리틱스에서 패배했을 때는. ‘고립무원의 대한민국…’ 오싹한 느낌이 든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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