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우승컵은 세계 2차대전 패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독일 전체를 환희의 물결로 넘치게 했다.
당시 독일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감독은 제프 헤르베르거. 그는 “공은 둥글다”란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은 축구에서 “승부는 예측할 수 없다”라는 의미로 주로 해석된다.
승부의 세계에서 운이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운동 경기뿐만 아니라 포커 혹은 바둑에서 운이 피 말랐던 승부의 대세를 좌우한 사례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승부의 세계에서 운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승부의 세계가 냉혹하면 냉혹할수록 더욱 좋다. 강한 사람, 이기기 위해 준비한 사람, 비법을 강구한 사람이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한국 사람은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경기를 최소 4번은 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조 예선에서 3번의 경기를 치르니 이는 한국팀이 조 예선을 통과, 16강에 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일본·영국·독일 등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한인들의 염원이다.
지난 9일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축구 팬의 한 사람으로서 TV를 통해 가능한 많은 경기를 보려고 노력중이다.
한국팀의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울리면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밴다. 한국팀이 출전하지 않았지만 긴장 속에 시청했던 경기는 스위스와 토고간의 경기.
16일 이른 아침 TV로 이 경기를 시청하면서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한국팀과 같은 조에 속한 이들 팀간의 경기 결과가 한국의 16강 진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따졌기 때문이다.
한국팀이 토고를 이겼으니 토고가 스위스를 이기면 어떻게 되는가 혹은 지면·비기면 어떻게 되는가를 따지면서 토고의 선전을 기대했다.
경기는 잘 알다시피 스위스의 2대0 승리로 결말이 났다. 토고가 승리했을 경우를 가정한 경우의 수 따지기는 의미가 없게 됐다.
우리는 지난해 12월 독일 라이프치히 노이에 메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 조 추첨식을 기억한다.
한국팀 프랑스, 토고, 스위스와 함께 한 조에 편성됐을 때 우리는 환호했다. 우리들의 기쁨은 강팀들이 몰린 죽음의 조에 걸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의 발로였다. 거함 프랑스는 제쳐 두고라도 토고와 스위스는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16강 진출을 확신하는 기쁨의 박수를 쳤다.
월드컵 예선은 정상궤도를 달리고 있다. 축구 팬들을 놀라게 한 이변은 별로 일어나지 않은 채 축구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독일, 영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전통의 축구 강국들이 속속 16강 대열에 합류한 것은 이를 반영한다. 앞으로 이들 팀들간의 진검 승부는 월드컵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것이 분명하다.
한국팀 태극전사의 16강 진출은 오늘(23일) 스위스와의 한판 승부로 결정된다.
같은 시간대에 열리는 프랑스와 토고와의 경기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가 지거나 혹은 비기더라도 이 경기의 결과에 따라 한국팀은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있다. 그러나 프랑스가 토고를 이길 확률이 훨씬 높다. 이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국팀은 16강에 진출하기 위해 무조건 이기야만 하는 것이 절박한 현실이다.
한국팀이 스위스에 졌으나 토고가 프랑스를 이기는 이변으로 16강에 오르는 것은 결코 상큼하지 않다. 전세계 축구 강국이 외나무다리 승부를 벌이는 16강에는 그만한 역량을 갖춘 팀이 올라가 잔치를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팀이 강인한 체력과 기술, 훌륭한 팀웍으로 스위스를 이기고 당당히 16강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황동휘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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