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는 투자가들이 알아두면 유익한 속담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치마의 길이가 짧아질 때는 사고 길어질 때는 팔라”는 것이다. 경기가 회복되고 소비자들의 기분도 낙관적이 되면 여자들의 옷차림도 대담해진다. 따라서 이 때가 주식을 살 때라는 것이다. 반대로 경기가 침체되고 비관론이 우세할 때는 옷 입는 것도 보수적으로 변한다. 따라서 이 때는 팔아야 한다. 실제로 70년대 장기 불황이 계속됐을 때는 긴 스커트가 유행했었다. 반대로 80년대 이후 경기가 좋아지자 미니가 패션의 주종을 이뤘다.
또 지금까지 잘 맞아온 속담 중 하나에 “5월에는 팔고 가라”(Sell in May and go away)는 것이 있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국 주식은 평균적으로 11월부터 5월까지가 많이 오른다. 지난 70년간 주가 상승의 대부분이 이 때 이뤄졌다. 반면 6월부터 10월까지는 거의 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5월에 팔고 11월에 사고를 반복하면 일반 투자가들에 비해 월등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건 지금까지 이야기고 앞으로도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모든 투자가들이 이 전략을 흉내내기 시작하면 이 작전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게 된다.
그러나 올해 이 속담을 충실히 따른 투자가는 상당한 득을 봤을 것이다. 지난 3년간 꾸준히 오르던 세계 증시가 5월초를 기점으로 폭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상최고치를 80포인트 차로 근접해 가던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불과 한 달 사이 1,000포인트 가까이 빠졌다. 지난 2000년 1월 11,722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후 한 달 사이 1,000포인트 폭락했을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 다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고 하이텍 주식이 몰려 있는 나스닥은 두 달 사이 300포인트나 떨어지면서 올 들어 5%나 폭락했다.
수년간 세계 증시 상승을 리드해 온 소위 개발 도상국가 주식 하락폭은 이보다 더 심하다. 지난 3년간 200% 이상 올랐던 인도 주식은 한 달 새 26%, 100% 이상 오른 한국 증시는 15% 이상 떨어졌다. 이밖에 일본, 브라질, 러시아, 유럽 등 증시란 증시는 예외 없이 하락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개인 투자가들은 폭락 직전 이들 증시에 사상 최대 규모의 금액을 투자했다.
세계 각국 증시가 이처럼 동반 추락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그래서 다시 이런 사태가 재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당시는 타일랜드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의 외환사정 악화로 세계 경제가 요동쳤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지금 이들 각국은 수출이 잘 돼 달러가 넘쳐나고 있으면 이로 인해 환율을 절상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이번 동반추락의 원인은 오히려 미국 경기의 냉각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인플레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는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발언 이후 이런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를 ‘버냉키 쇼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FRB 의장의 영향력이 아무리 큰들 그의 한마디가 이처럼 세계 증시를 폭락시킬 수는 없다. 그동안 과도하게 올랐던 증시 거품이 그의 발언을 핑계로 빠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일례로 인도는 장기적으로 유망한 투자처이다. 인건비가 싸면서도 하이텍 산업이 발달돼 있고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 법치주의가 확립돼 있는 곳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열악한 인프라와 각종 행정규제 등 이 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런 장애물을 보지 않고 구름에 떠 있던 투자가들의 꿈이 버냉키의 발언으로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증시 버블은 급속한 경제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 곳, 다시 말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곳에서 일어난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그랬다. 공산국가나 일부 아프리카 같이 무정부 상태인 곳에서는 거품도 없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거품 빠지기는 세계 경제의 성장통이라 보면 된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이야기고 단기적으로는 한동안 추가 조정과 경기 둔화 등이 예상된다. 투자가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때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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