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작이다. 2006 월드컵이 내일 개막한다. 록밴드 U2의 보노도 ESPN 화면에 등장해 축제의 열기를 북돋는다 - “학교도 닫고, 가게도 닫고, 시청도 닫고, 그리고 전쟁도 멈추게 하는 월드컵…” 못지않은 열정으로 월드컵을 기대하면서도 축구평론가 사이먼 쿠퍼는 ‘축구는 전쟁’이라고 단언한다.
지난 3년간 내전을 계속해온 아이보리코스트는 사상 처음 월드컵 출전권을 따내자 내전을 멈추었다. 나이제리아도 축구황제 펠레의 경기를 보기위해 비아프라전쟁을 이틀간 휴전했었다. 보노의 찬사가 과장만은 아니라는 증거다.
쿠퍼의 단언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훨씬 더 많다.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축구의 기원은 한마디로 패싸움이었다. 공을 차지하기위해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서로 물어뜯고 눈을 찌르기도 했다. 법으로 축구를 금지시킬 정도였다. 신교도와 구교도 팀이 맞붙었던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더비’는 전쟁을 능가하는 폭력적인 경기여서 사람도 많이 죽었는데 경기장에 죽은 사람의 뼈를 뿌리고 복수전을 치렀다.
전쟁에서 난동까지 축구를 둘러싼 폭력은 현대에 들어서도 수없이 발생했다. 최악의 사건은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벌인 100시간 전쟁이다. 워낙 국경문제로 사이 나쁜 두 나라가 월드컵 본선 진출을 놓고 맞붙은 것이다. 엘살바도르에서 가진 경기중 양쪽 관중들이 충돌하며 난동이 벌어졌다. 온두라스 응원단이 부상당한채 피투성이로 추방당하자 온두라스에 거주하던 엘살바도르인들이 습격당하고…양국은 전쟁에 돌입했고 2000여명이 희생당했다.
축구장 난동에는 선진국, 후진국의 차이가 없다. 카메룬이나 페루에서도 심판의 판정에 불만 품은 관중들이 난투극을 벌여 수백명이 죽었지만 신사의 나라 영국이나 모델국가 네델란드 축구팬들의 과열된 편들기가 끔찍한 약탈과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 또한 한두번이 아니다.
이처럼 난동을 일으키는 극렬 축구팬이 이른바 ‘훌리건’이다. 영국에서 비롯되었지만 네델란드, 폴랜드, 독일에도 상당히 많다. 영국정부는 이번 월드컵 기간중 3,200명 훌리건들의 여권을 임시 압수하고 이들의 출국을 금지시켰다. 그런데도 독일에 모여들 훌리건의 수는 2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 테러 위험까지 겹쳐 독일은 사상 최대의 경비작전에 들어갔다. 미국등의 경기엔 팬텀전투기가 상공을 경계하는가하면 13개국에서 파견된 경찰과 검사와 판사들이 자국 훌리건들의 불상사를 즉심처리하게 된다.
2003년 유엔 보고서에 나타난 축구의 속성은 전혀 다르다. ‘축구는 개인과 커뮤니티를 한데 묶고, 분열하는 문화와 인종간의 유대와 공동의식을 북돋우며…’ 훨씬 긍정적이다. 국가 구성의 필수요건은 교과서에 나와있는 국토와 인구, 정부등 3가지외에 요즘은 축구국가대표팀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조크도 생겼다.
1954년 ‘베른의 기적’도 한 국가를 살리는 축구의 힘을 증언한다.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헝가리에 역전승한 독일의 승전사다. 나치라는 역사의 짐을 지고 세계 앞에 머리 숙였던 패전국 독일의 국민들에게 살맛을 선사한 ‘베른의 기적’은 경제부흥을 일으킨 ‘라인강의 기적’으로 이어졌었다.
축구의 폭력을 목격한 사람들은 월드컵을 ‘전쟁터’라고 부른다. 베른의 기적과 2002년 서울의 거리응원에 감동한 사람들은 월드컵을 ‘지구촌의 대축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월드컵의 진짜 파워를 본 사람들은 ‘22명 억만장자들의 그라운드 쇼’라고도 말한다. 서유럽 축구리그가 벌어들이는 연간 수입은 82억달러를 넘고, 월드컵 스타선수들의 몸값 또한 억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월드컵과 올림픽중 어느 쪽이 더 인기가 있을까. 스폰서들에겐 단연 월드컵이다. 2006 월드컵의 15개 후원업체가 국제축구연맹(FIFA)에게 지불한 15억달러를 조성하기위해 2004 올림픽위원회는 1백여개가 넘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열광하기 때문이다. 금년 월드컵은 연인원 4백억명이 시청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엄청난 눈들이 하나의 스포츠에 쏠리는 것이다. 세계의 대기업들이 다투어 공식 스폰서를 신청하지 않을 수 없다.
재력이 든든한 FIFA가 앞으로 4년간 1억달러를 투입해 개발하는 축구시장은 아프리카다. 2002 월드컵의 한국처럼 금년의 신데렐라는 아프리카의 처녀출전팀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우리와 첫 경기를 치르는 토고도 그중 하나다.
우스개 소리로 세계를 둘로 나누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평소 후자에 속하는 나도 지금은 내일이, 그리고 다음주 화요일이 기다려진다. 첫경기에 지면 16강진출 확률이 적게는 4%에서 많아도 18%밖에 안된다는데, 설마, 토고는 이기겠지… 가슴 졸이며 TV앞에 앉을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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