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3월 16일 찰리 중대는 미라이 지역을 순찰 중이었다. 이 마을은 공산 반군이 출몰하던 곳이었다. 반군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군인들은 그냥 돌아갈 기분이 아니었다. 그 전에 게릴라들의 습격을 받아 동료를 잃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베트콩의 소재를 묻자 주민들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화가 난 미군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살하기 시작했다. 이 때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347명에서 504명 선으로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모든 미군이 이 끔찍한 범죄에 가담한 것은 아니다. 육군 헬기 조종사 휴 탐슨은 만행을 저지른 윌리엄 캘리의 부대원들과 맞서 더 이상 민간인을 학살하면 헬기로 쏴 버리겠다고 위협, 11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와 2명의 동료들은 이 때문에 오랫동안 배신자 취급을 받았지만 나중에 전투가 아닌 공으로 군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훈장인 ‘군인 메달’을 받았다.
군은 처음 미라이 전투에서 128명의 적군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6개월 후 11 경보병 여단 소속 탐 글렌이 미군의 잔학상을 고발하는 편지를 쓰자 이 고발장을 접수한 콜린 파월 당시 육군 소령은 “편지의 주장과는 달리 미군과 월남인과의 관계는 매우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이 일반에 알려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론 라이든아워다. 그는 닉슨 대통령을 비롯, 국무부와 합참의장, 연방 의회에 미라이의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대부분은 이를 무시했으나 모리스 유달 연방하원의원이 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 미라이의 참상이 1년이 지난 후 밝혀지게 된 것이다. 캘리를 비롯 25명이 기소됐으나 대부분은 혐의가 기각되고 캘리만 살인죄로 3년 6개월을 복역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가뜩이나 끓고 있던 반전 운동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양심적 병역 기피자가 급증하고 여론이 악화되자 미국은 1973년 평화 협정을 빌미로 발을 빼기 시작하고 월남은 그 후 2년 뒤 패망한다.
미라이와 너무도 비슷한 사건이 작년 11월 19일 이라크의 하디타에서 일어났다. 반군 출몰 지역인 하디타를 순찰하던 킬로 중대 해병대원들이 동료 하나가 사제 폭탄에 의해 피살되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근 주민 24명을 사살한 것이다. 이중에는 부모와 다섯 형제를 하루아침에 고스란히 잃고 딸 혼자만 고아로 남은 집도 있다. 그리고는 반군과의 전투 중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이 사건은 그 후 지난 3월 타임지가 처음 의혹을 제기할 때까지 묻혀져 오다 점차 진상이 밝혀지면서 이라크 개전 이후 최악의 스캔들로 커지고 있다. 국방부는 지휘 책임이 있는 장교 2명을 해임하고 나머지 10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중이다.
이 사건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다고 한다. 워낙 많은 테러 사건이 일어나는 데다 사담 치하에서 군인들에게 숱하게 당해온 이라크 인들은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일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미군이 처벌받는 데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역사를 읽으며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잔인한 일을 저질렀을까 궁금해한다. 하디타 사건은 현대인도 야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미라이 때보다 학살자 수가 1/20로 줄고 진상이 4개월만에 드러났다는 것이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피아의 구분이 어려운 장기 게릴라전에 지친 미군 병사들이 동료의 죽음을 보고 정신이 돌아버린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적군의 공격을 받으면 그 보복으로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은 로마부터 징기스칸, 나치에 이르기까지 많은 군대들의 전통이다. 그러나 지금은 로마 시대가 아니고 미군은 나치가 아니다.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겠다고 주둔 중인 미군은 지난 번 아부 그라이브 포로 학대에 이어 하디타 학살로 이미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이런 사건이 재발한다면 이라크 내 반발은 물론이고 조속히 철군하라는 국내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범죄자들을 응징하고 병사들에 대한 재교육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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