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링컨·루즈벨트…’ - 낯익은 이름들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꼽을 때 항상 거명되기 때문이다. ‘…피어스·뷰캐넌·하딩’ - ‘가장 위대한’의 반대편에 서 있는 대통령들이다. 한 마디로 실패한 대통령들이다.
이 이름들은 그리 친숙한 편이 못된다. 역사는 실패자에게 그리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게다. 그 중 하딩이라는 이름은 그래도 제법 알려진 편이다. 뭐 다른 뜻에서가 아니다. 실패한 대통령 중에서도 항상 ‘최악’으로 선정돼서다.
하딩은 사실 무명의 정치인이 어느 날 대통령이 된 케이스다. 1920년 치열한 당내 계보 싸움 결과 엉뚱하게 공화당 후보로 결정되자 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가장 큰 걱정은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자기 주제는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딩은 결국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리고는 대통령직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It’s hell! No other word to describe it!” 의역하면 이런 정도가 되는 게 아닐까. “정말이지, 대통령 짓 못해 먹겠다!”
온통 ‘최악’이란 단어만 눈에 들어온다. ‘사상 최악의 패배’ ‘노 정권 지지도 최악의 세계적 기록’ ‘최악의 정국 전망’- 5.31지방선거 결과를 다룬 기사들의 제목이다.
왜 세계적으로 최악의 지지도인가.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 지지도가 20% 이하로 떨어진 적이 거의 없어서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쫓겨난 닉슨도 최악 상황의 지지도가 24%였다.
여야의 정당 득표차가 600만이 넘었다. 수도권에서 전멸을 당했다. 20대 연령층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았다. 5.31 선거결과다. 집권여당으로서는 모든 것이 최악을 기록했다.
모든 데이터가 이처럼 최악이다. 그 한 가운데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50% 이상의 유권자가 노 대통령의 실정에 진저리를 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질문이 슬며시 피어오른다.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에 대한 평가다. 혹시 ‘최악’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노무현 정권의 주테마는 인터넷과 반미주의다.” 노 대통령이 남길 역사적 유산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한 미국 언론인이 한 말이다.
사상 처음 ‘네티즌’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됐다. 그 네티즌들의 무기인 인터넷은 그리고 한국에서 반미주의 확산의 도구가 됐다. 노 대통령을 평가하는데 있어 이 둘은 그러므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란 지적이다.
처음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한 미군병사가 납치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자 달라졌다. 웹사이트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반미주의 선동에 대한 관심 말이다.
그 상황이 이제는 역시 웹사이트를 통해 미국에 알려지고 있다. 의회의 주요 스태프들도 한국의 반미주의 상황과 관련해 그런 웹사이트를 참고할 정도다. 그 결과 동맹을 재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미국에서 점차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터넷을 통한 반미주의 선동이 부메랑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린 결론은 그래서 이렇다. “노 대통령 남기게 될 유산은 다른 게 아니다. 한미동맹 와해다.”
주로 미국적 시각으로 노무현 정권을 바라보고 있다. 거기다가 노 대통령의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았다. 이런 점에서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망은 앞으로 정국의 방향성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방어용이다.” 노 대통령의 말이다. 선거참패가 확실시되는 지난 5월29일의 시점에서 한 발언이다. 선거 후의 발언도 그렇다. 최악의 패배는 내 탓이 아니라는 뉘앙스다. 그동안 추진해온 정부 정책을 계속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대 국민사과도 없었고.
선거결과에 개의치 않겠다는 오연한 태도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정국 반전 카드를 쓸 수도 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선거결과 ‘반(反)노 세력’은 80%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세력을 역공격해 무력화시킬 전면적 총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제스처로도 보인다.
잘못된 관측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베팅을 하라면 반대쪽이다. 상황반전에 관한 한 자신들의 천재성을 스스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게 노 정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5.31 이후의 한국 정국은 역시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 제2의 탄핵사태까지 몰고 온 그동안의 흐름에서 이미 경험했지만 대한민국의 국기(國基)를 뒤흔들 좌경 모험주의의 흉흉한 파도가 더 한층 거세게 몰아닥칠 것으로 예상되어서다.
노 대통령은 과연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을까. 앞으로의 정국 추이가 그 해답이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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