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월드컵 개막이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온 세계가 월드컵이라는 거대한 용광로를 향해 서서히 빠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지구상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월드컵 축구에 대한 광적인 열기가 없는 나라처럼 느껴지는 미국에 사는 탓에 그나마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뿌리는 어쩔 수 없어서 우리는 4년 주기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과 함께 뜨거운 ‘월드컵 열병’을 앓는다.
중남미 국가에서 월드컵 기간에 관공서 업무시간을 변경하고 멀쩡한 평일을 임시 공휴일로 선포했다는 뉴스가 들려올 때 “정말 대단한 극성이군”이라며 혀를 내두르지만 사실 그다지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그들과 우리의 ‘코드’가 맞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서 대입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 월드컵 중계를 볼 것이냐, 아니면 입시공부를 할 것이냐 여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다는 소식, 방글라데시에서 대학 기숙사생들이 고장난 TV를 고쳐주지 않는다고 난동을 부렸다는 뉴스, 남측에 뭔가를 부탁하는 것을 민족 자존심 문제로 결부시켜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북한이 한국측에 월드컵 중계를 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도대체 월드컵이 뭐길래’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축구를 할 줄 아는지조차 불분명한 방글라데시(갑자기 궁금해서 FIFA 사이트를 뒤져보니 방글라데시의 5월 세계 축구랭킹은 140위였다)가 자신들과 아무 상관없는 남들 잔치에 그토록 ‘목숨걸고’ 열광하는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그 생명 같은 자존심도 잠시 접어두고 월드컵 중계를 꼭 보게 해달라고 한국에 매달리는 것도 월드컵의 막강한 위력을 실감시켜 준다. ‘목숨걸고’ 시험 공부하는 대입 수험생들조차 심각하게 갈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월드컵이다. 평소 축구의 ‘축’자에도 관심 없던 사람들의 가슴조차 설레게 만드는 것이 월드컵의 마력이다. 지난 2002년 세계인의 축제를 베푸는 호스트가 됐던 벅찬 감격과 꿈같은 4강 신화의 기적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 월드컵을 향한 흥분과 기대는 오히려 더 커진 듯한 느낌이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월드컵의 매력이 무엇이다’라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할 수는 없어도 축구 팬들이라면 누구나 직감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도 그들의 처지에 서면 똑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들이 다 ‘football’이라고 부르는 축구를 ‘soccer’라고 부를 만큼 그야말로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미국인(미국 FIFA 랭킹은 5위지만 이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들만 빼면 누구라도 이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매력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전 세계를 이토록 집단 환각(?)상태로 만들어놓는 것일까. 스포츠로선 축구의 매력과 극도로 뜨거워진 내셔널리즘의 완벽한 결합이 만들어낸 현상이라는 거창한 답변이 흔히 들리지만 그 정도론 전쟁까지도 멈춰 세울 수 있는 월드컵의 위력을 커버하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자기 나라도 나오지 않은 대회의 경기를 보기 위해 폭동까지 불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월드컵은 이미 스포츠의 범주를 초월한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이벤트라고 봐야 한다.
월드컵은 지구촌의 축제다. 물론 승부의 세계에선 당연히 이기는 것이 최대 목표지만 이와 함께 진정한 의미에서 축제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전 세계가 함께 열광할 수 있는 공통분모로서 월드컵은 세계인들에게 큰 자산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번 대회에 응원할 팀도 많다. 한국은 물론이고 ‘제2의 조국’ 미국과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 역시 애정이 가지 않을 수 없는 팀들이다.
이젠 시선을 넓히자. 열광할 뿐 아니라 즐기자. 월드컵의 바다에 풍덩 빠져 그 뜨거운 열기에 한 번 흠뻑 젖어보자. “대∼한민국!”
김동우 스포츠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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