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브라운이 돌아왔다. 한인사회 웬만한 올드타이머라면 다 기억하는 이름이다. 1975년부터 8년간 파릇하게 젊었던 주지사 시절 한인타운에 자주 들러 한국일보 미주본사도 방문했고 한국에도 몇 번 다녀오며 한인사회와 친근했던 얼굴이다. 그가 다음 주 실시되는 캘리포니아 예선에서 주 검찰총장 민주당 후보 지명전에 ‘등장’한 것이다.
따분하기 짝이 없다는 이번 6일 예선에서 그중 다이내믹한 부분이 검찰총장 민주당 후보뽑기다. 물론 순전히 브라운의 컴백 덕분이다. LA타임스 여론조사에 의하면 상대인 록키 델가디요 LA시 검사장을 60% 대 27%의 압도적 차이로 리드하고 있다. 유권자의 67%가 호감을 표시한다. 델가디요에 대해선 아예 모르는 유권자가 64%나 된다. 일찌감치 공화당 후보로 결정된 척 푸치지언 주 상원의원은 더 심한 ‘무명’이어서 91%가 그게 누군데?라고 되물을 정도다.
그러므로 궁금한 건 그가 이길까, 질까가 아니다. 왜 출마했나에 관심이 모아진다.
그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정계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이었다. 경력이 화려하다. 아버지 팻 브라운도 2선 주지사로 캘리포니아에선 최고의 정치 명문가 태생이다. UC버클리와 예일법대를 졸업하고 32세에 주 총무처장관에 당선되었던 그는 36세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어 전국의 각광 속에 타임지의 커버인물로 소개되기도 했다. 재선되어 8년동안 젊은 열정과 튀는 아이디어로 캘리포니아를 이끌었다. 몽상적 이론가로 야유당하며 ‘달빛 주지사’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환경보호법과 노동법을 개선했고 여성과 소수계를 적극적으로 등용했다.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며 연방상원직과 대통령직에도 출마했다가 실패했다. 특히 대선에는 3번이나 도전했는데 클린턴과 맞붙었던 92년 예선에선 6개주에서 승리하며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가는 저력을 발휘했었다.
정치를 뺀 그의 일생도 컬러플하다. 미국 최고 신랑감의 하나로 꼽혔던 총각 주지사 시절 가수 린다 론슈타트, 배우 나탈리 우드와 데이트를 즐겼던 그는 한때 가톨릭 신학생이었는가 하면 일본으로 건너가 선불교에 심취도 했고 인도로 날아가 테레사 수녀를 도와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위원장을 역임하다가 돈에 휘둘리는 기성정치가 혐오스럽다며 가차없는 비판과 함께 사임하기도 했고 미전국 대도시에 방송되는 진보적인 라디오의 토크쇼 호스트로 3년동안 리버럴한 자신의 신념을 쏟아내기도 했다.
느닷없이 북가주 오클랜드의 시장으로 출마를 선언하며 정계로 복귀한 것이 98년이었다. 범죄율 높고 빈곤층 많은 오클랜드시장으로 8년간 일한 그의 성적표는 대체로 합격점이다. 약속대로 죽어가던 다운타운에 민간투자를 유치해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범죄율도 30% 하락했다. 금년 들어 살인범죄가 급증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졌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우중충하던 다운타운에 새 아파트와 콘도가 들어서고 시예산도 흑자를 기록했으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만하면 하고싶은 일 다해본 셈이다. 게다가 68세다. 야심가라해도 주변을 정리하고 은퇴를 계획할 때다.
주 검찰총장직은 주지사로 가는 가장 확실한 디딤돌로 꼽힌다.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45세의 야심만만한 델가디요가 검찰총장에서 주지사, 그리고 백악관까지를 꿈꾸고 있다는 것은 정가에선 알려진 사실이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왜 주지사를 2번 역임한 60대 후반의 역전노장 브라운이 이제와 노선을 거슬러 다시 출발선에 서는 것일까.
오히려 그래서 한눈 안팔고 현직에 전념하는 풀타임 주 검찰총장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역설한다. 주정부 최고의 법률자문 업무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자신에겐 넘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갱을 비롯한 범죄단속은 말할 것도 없고 소비자와 환경보호, 민권옹호 그리고 무엇보다 서류미비 종업원을 채용하여 건강보험과 안전대책을 소홀히 하는 고용주를 엄단하고 당파적 정쟁이 극심한 주정부에서 이성과 상식을 대변하는 고참 자문역할도 기꺼이 담당하고 싶다.
그는 지칠 줄을 모른다. 끊임없이 움직인다. 범죄단속도 지시만 하는게 아니라 범죄다발 지역에 들어가 직접 살면서 체험하며 대책을 강구한다. 검찰총장직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노우, 70대 후반에도 나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마치 ‘정치’가 그를 살아가게 하는 힘인 듯 하다. 그래서 정말 주지사 다시 하겠다고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이제 브라운은 그만 보고싶다”는 유권자도 적지 않다.
선거는 뚜껑을 열어보아야 안다. 그러나 이변이 없는한 그의 새크라멘토 재입성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주정부와 계속 멀어져온 한인사회엔 나쁘지 않은 일이다. 민주당으로서도 오랜만에 공화당 ‘터미네이터’ 주지사에 맞설 수 있는 명성과 저력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달빛’과 ‘터미네이터’ - 캘리포니아 선거가 조금씩 흥미롭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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