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더니스탄’(Londonistan).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멜라니 필립스란 영국의 칼럼니스트가 펴낸 책이다. 아시아 타임스에 실렸던가. 그 서평이 재미있다.
“악어에게 잡아먹혀도 ‘나는 마지막’일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게 유화주의자다.” 윈스턴 처칠이 남긴 이 말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오늘날의 악어는 그처럼 참을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고.
서방은 오늘날 이슬람과의 종교전쟁에 돌입했다. 그 현실에서 그러나 일부러 눈을 돌리고 있다. 왜. 무지 때문이 아니다. 두려움 때문이다. 종교전쟁의 위험, 그 독소를 잘 아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다.
히틀러의 거짓 약속을 체임벌레인은 믿었다. 아니, 믿기로 했다. 당시 영국민의 다수도 그렇다. 1차 대전의 참화를 겪은 기억이 생생하다. 때문에 나치 독일과의 대결이 두렵기만 하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그런 사태를 모면해야지. 오늘날 영국이 그런 상황에 있다는 거다.
단순한 테러가 아니다. 런던 지하철 테러, 또 유럽의 각 도시에서 일어온 잇단 이슬람 소요사태에 대한 진단이다. 테러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위다. 유럽에서의 지하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문명, 더 나아가 서방문명 그 존재에 대한 공격이다. 그러므로 본질에 있어 종교전쟁이다. 그러나 영국의 기득권층은 현실을 회피하려고만 든다. 1938년, 그러니까 2차 대전 발발 바로 전해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주장이다.
“A.D. 70년과 135년. 로마제국은 유대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수십만이 살해되고, 노예로 팔려갔다.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1,871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유대인의 생존과 관련해 주목할 일이 일어나고 있다.” 찰스 크라우트해머의 지적이다.
“핵폭탄 한 방이면 이스라엘은 멸절이 된다. 이스라엘도 핵 반격을 가하겠지. 그러나 이슬람 세계가 받는 피해는 극히 제한적이다.” 정신병자의 독백이 아니다. 이란 회교혁명 정권 핵심들이 공공연히 하는 소리다. 그것도 온건파로 알려진 라프산자니가 한 말이다.
단순한 엄포로 보지 않았다. 개연성이 충분한 미래의 사태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 직전 한 말을 새삼 상기시킨다. “또 한 차례 전쟁이 있다면… 그 결과는 유대인 말살이다.” 광신적 독재자의 말은 결코 엄포가 아니란 게 판명됐다.
오늘날의 상황을 그 역시 600만 유대인 학살사태를 가져온 2차 대전 발발 전의 해, 1938년과 비교한 것이다.
지나친 비관론인가. 그렇게도 보인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라크 전쟁, 더 나아가 앞으로 있을 이란 침공을 앞두고 급조해 낸 개념에, 프로퍼갠더라는 것이다.
‘1938년의 유럽을 방불케 한다’-. 이 주장은 그러나 하나의 담론으로 굳어지는 느낌이다. 뉘앙스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헨리 키신저도 같은 의견이다. 거기다가 이슬람 연구의 세계적 권위 버나드 루이스도 동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종교와 정치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세계는 이슬람의 땅과 비(非) 이슬람의 땅 둘로 나뉘어 있다. 그 비 이슬람 땅의 정점에 있는 게 미국이다. 이슬람의 미국에 대한 증오는 그러므로 미국이 보여온 행동에 있는 게 아니다. 그 존재 자체다.”
이런 분석과 함께 루이스는 9.11사태가 나기 훨씬 이전 이미 이슬람이스트의 공격을 예언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했다. “이라크의 민주화는 이란 회교정권 담당자들에게는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그가 ‘1938년이 되돌아온 느낌’이라고 말한 것이다.
저 멀리 상공에 먹구름이 몰려든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폭풍으로 변모할 조짐이다. 90평생 이슬람권을 연구해온 이 노학자에게 그 기상변화는 온 몸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얘기다.
부시와 후진타오가 만났다. 그 회담이 끝나기 무섭게 이루어진 게 탈북자의 미 입국러시다. 이 상황에 한국의 대통령이 한마디했다.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겠고, 이를 위해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거다.
그 발언은 남북정상회담으로 구체화된다. 한반도의 운명을 미국에만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북한의 조평통도 거들고 나선다. 까불면 전쟁이 난다는 으름장이다. 이 와중에 DJ의 방북추진은 급물살을 탄다. 그러던 어느 날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가 발생한다.
해묵은 한반도의 정치달력을 새삼 되짚어본다.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의 맥박이 여간 빨라진 게 아니다.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다. 대한제국 말년, 전후 해방공간…. 아무래도 조금 더 사태를 주시해야 할 것 같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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