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미국에 살면서 미국팀을 잊었군요
팀USA, 이탈리아 체코 가나와 함께 죽음의 E조 편성
미래낭보 가능성은 무궁 독일낭보 가능성은 글쎄
도노반 비슬리 존슨 성장했으나 레이나 맥헤드 노쇠
미국에서 축구는 찬밥이었다. 야구(MLB) 풋볼(NFL) 농구(NBA) 아이스하키(NHL) 등 인기종목에 비하면 아직도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언론의 조명도 거의 못받고
음지에서 하다보니 실력마저 우스운 취급을 받아온 게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축구는 결코 우습지 않다. 무서울 정도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한 것, 1950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우승을 따놓은 당상처럼 여기며 첫 출전한 축구종주국 잉글랜드를 보기좋게 1대0으로 깔아뭉개 월드컵 이변사의 첫 페이지를 것,
1990년 미국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예상을 뒤엎고 16강고지에 합류하고 16강전에서도 호마리우가 이끄는 그 대회 챔피언 브라질에 90분 내내 애를 먹이다 0대1로 석패한 것 등은 아주 오래된 무용담이라고 쳐도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승을 장담하던 ‘유럽의 브라질’ 포르투갈을 3대2로 때려뉘고 북중이 호랑이를 자처하는 멕시코에 2대0 완승을 거두는 등 승승장구 끝에 8강고지를 밟은 전력을 보고도 미국을 축구의 불모지라 우긴다면
세상물정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02월드컵 8강전 독일과의 경기도 내용면에서는 미국의 우세였다. 독일판 축구황제 프란츠 베켄바워가 관전평에서 독일에게 수치였다며 미국의 거듭된 불운이 아니었다면 승리는 틀림없이 그들의 것이었다고 말했을까. 세계의 축구황제 펠레는 오죽했으면 미국축구 저변이 매우 탄탄해 앞으로 미국이 세계축구계를 호령한다 해도 놀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을까.
그럼에도 독일월드컵 격전장으로 향하는 팀USA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다. 워낙 버거운 강호들과 같은조(E조)에 편성돼 02년 성적표를 깨끗이 잊어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다.
예리한 창까지 갖춘 빗장수비축구의 이탈리아와 요즘 활활 타오르는 동유럽의 자존심 체코에다 한번 물결을 타면 8강권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가나가 미국과 함께 E조에
할당된 2장의 티켓을 다툴 상대들이다. 지난해 12월 조추첨 직후 AP통신 등은 미국이 ‘죽음의 계곡’에 빠진 것 같다고 타전했다. 상황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물론, 미국(4위)이 평가전과 대륙컵 등 자잘한 농사를 잘 지은 덕분에 4월 현재 FIFA 랭킹상 체코(2위)에만 뒤질 뿐 이탈리아(14위)나 가나(50위)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랭킹 믿고 안심할 처지가 아니라는 건 미국이 더 잘 안다.
브루스 아레나-. 8년 가까이 팀USA를 이끌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온 이 꾀주머니 사령탑은 과연 올해 여름에도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Everything can happen
out there.(거기, 즉 필드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기자들의 까탈스런 질문을 곧잘 알쏭달쏭 답변으로 받아넘겨온 아레나 감독의 미국팀 예상성적 관련 모범답안은 대개 이렇다.
은근히 믿는 구석은 있다. 20대 중반이 돼 더욱 눈이 트이고 물이 오른 재간둥이 미드필더 랜던 도노반과 다마커스 비슬리가 빠른 발과 센스를 이용해 상대 진영을 휘젓고, 다시 불러들인 노장 플레이메이커 클라우디오 레이나가 느릿느릿 후닥후닥 완급을 조절하면서 압박해나가다 이때다 싶을 때 한방씩 배급해주면, 헤딩에 관한 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브라이언 맥브라이드(헤딩을 잘한다고 해서 그의 별명은 맥헤드)와 신병기 에디 존슨의 마무리로 어느 골문이든 열어제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수비라인은 노련한 성실맨 에디 포프와 스티븐 처룬돌로가 중앙을 지키고 카를로스 보카네그라(좌)와 프랭키 헤이덕(우)이 양옆을 틀어막는다. 골문은 노장 케이시
켈러가 맡는다. 문제는 믿는 발 레이나와 믿는 머리 맥브라이드가 30대 초중반으로 예전같은 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태수 기자>
◇미국팀 경기일정(SF시간)
체코전 6월12일 오전 9시
이탈리아전 6월17일 낮 12시
가나전 22일 오전 7시
사진/ 지난 23일 테네시주 내슈빌서 벌어진 평가전에서 미국의 재간둥이 미드필더 랜던 도노반(왼쪽)이 자카리아 아붑의 육탄방어를 뚫고 대시하려 하고 있다.
<연재>
인류의 대제전 월드컵 76년사④
◆제6회 스웨덴월드컵(1958년)
기쁘다 펠레 오셨네. 이렇게 표현해도 무방한 대회였다. 17세 소년 펠레(진주라는 뜻, 본명 에드손 아란데스 도 나시멘토.)가 소년답지 않은 농익은 플레이로 세계 축구팬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영원한 우승후보이면서도 우승 한번 못해본 브라질에 비로소 챔피언 트로피를 안겨줌과 동시에 장차 축구황제로 등극할 것임을 예고했다.
브라질이 풀어놓은 선물은 펠레만이 아니었다. 4-2-4 포메이션의 확립 또한 큰 선물이었다. 그 이전에 무적함대 헝가리가 어느정도 선보이고 이 즈음 브라질이 완성한 이 포메이션은 소위 공을 따라 떼몰려다니는 식의 뻥축구를 포지셔별 특화를 통해 현대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모처럼 ‘결석팀’ 없이 16팀이 출전한 이 대회는 종전과 달리 4팀씩 4개조로 나뉘어 풀리그로 상위 2팀이 8강에 진출하고 이때부터 녹다운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방식은
1970년 멕시코월드컵까지 유지됐다.
깡마른 몸 앳된 얼굴에 가볍고 부드러운 볼컨트롤로 상대선수들을 농락해 박수갈채를 받은 펠레의 등장은 브라질의 조별리그 3차전 소련과의 경기에서였다. 그 다음 웨일스와의 준준결승에서 유일결승골을 넣은 펠레는 득점왕 퐁텐느(13골)가 이끄는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 곡예사같은 기술로 상대선수들도 관중도 넋을 잃게 만들며 해트트릭을 기록해 5대2 승리를 도맡더니, 홈팀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도 후반 11분 허벅지로 받아놓고
돌아서며 때린 기막힌 발리쐐기골로 역시 5대2 대승의 큰몫을 차지했다. 브라질로서는 때늦은 것이었지만 개최대륙 우승전통을 처음으로 깬 우승이기도 했다.
사진/ 펠레
◆제7회 칠레월드컵(1962년)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월드컵을 개최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제7회 월드컵대회가 ‘준비된 아르헨티나’ 대신 ‘준비안된 칠레’로 향하게 된 것은 뜻밖에도 카를로스 디트본 칠레축구협회장의 이처럼 솔직한 호소가 주효했다. 그러나 그는 오매불망 그리던 칠레월드컵 개막을 한달여 앞둔 4월28일 갑작스레 타계했다.
출전국은 남미 5개국, 유럽 10개국, 북중미 1개국. 불가리아와 콜롬비아가 첫선을 보였다. 방식은 종전과 같았으나 1차리그 결과 승점이 같으면 플레이오프 대신 골득실차로 우열을 가리기로 했다. 디트본에 대한 묵념과 함께 칠레-스위스 개막전으로 열전에 돌입한 대회는 승부열이 워낙 뜨거워 툭하면 난타전이 벌어졌고 퇴장명령도 무시한 채 폭력을 휘두르는 선수도 있었다. 브라질 선수가 이탈리아팀으로, 헝가리 선수가 스페인팀으로 출전하는 등 국경없는 스카웃이 횡행, 이중국적 문제가 큰 화두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브라질축구의 예술적 마력을 덮을 수는 없었다. 종전의 4-2-4 전형에서 허리와 수비를 안정시킨 4-3-3 포메이션으로 재무장한 브라질은 왼쪽날개 가린샤의 측면공격과 펠레, 디디, 자갈로가 중앙수비를 파헤치는 전술을 혼합해 칠레월드컵을 누볐다. 체코의 페어플레이도 흑탕물 속 진주와 같았다. 사타구니 부상으로 제컨디션이 아닌 펠레에게 거친 수비를 자제, 펠레가 훗날 자서전에서 경의를 표하게 만들었다.
결승전은 펠레 빠진 브라질과 체코의 재대결. 브라질은 선취골을 먹은 뒤 더욱 분발해
아마릴도-지토-바바가 릴레이 골세례를 퍼부으며 2연속 챔프고지 등정에 성공했다.
기쁨에 겨우 주앙 오울라르트 브라질대통령은 사자후를 토했다. 우리는 쌀과 빵은 많지 않지만 펠레와 가린샤와 아마릴도와 줄리메컵을 갖고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계속>
♥미니상식
붉은 악마라니? 붉은 악마는요!
며칠전 기자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북가주 한인사회에서 매우 유명한 태권도인 M 사범이었다. 그는 붉은 악마란 명칭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런 명칭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개탄조로 말했다. 기독교의 땅 미국에서 저주받을 악마를 국가대표팀 응원단 이름으로 쓴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한국축구대표팀 서포터스클럽의 공식명칭인 붉은 악마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주로 기독교계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친다. 그러나 붉은 악마란 용어는 한국의 비기독교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AP통신 등 미국에
뿌리를 둔 세계적 언론들이 만들어 붙여준 이름이다.
1983년 멕시코에서 세계청소년축구대회때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이 붉은 유니폼을 입고 쉴새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4강에 오르자 ‘붉은 악령들(Red Furies)’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그것이 한국언론의 번역과정에서 ‘붉은 악마’로 됐고 90년대 중반 출범한 한국대표팀 응원단의 공식이름이 됐다.
한편 MLB(야구) NHL(아이스하키) 등 미국의 인기 스포츠리그에서도 ‘악마’ 이름을 붙인 팀들이 있고, 하위리그에 내려가면 수없이 많다. ‘지옥의 사자’니 ‘약탈자’니 ‘폭격기’니 하는 유명선수들의 무시무시한 별명들도 대개는 미국이 키를 쥐고 있는 유력 언론매체들이 작명을 하거나 세계로 전파하는 것들이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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