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원로 문학인에게 물어봤다. “LA 한국문화원과 문인들의 관계는 어떤가요.” “서로 아쉬울 게 없는 사이지요”.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몇년전에는 문화원장이 새로 오면 얼굴도 보고, 문학행사 때면 문화원 강당도 무료로 빌려쓰고 그랬으나 그런 접촉이 끊긴지 이미 오래라는 것이다.
한국문화를 미국에 널리 알리는 것이 주 임무인 문화원이 현지 한인 문화 예술인들을 잘 이용하면 정보수집도 되고, 한국문화 홍보에도 도움이 될 터인데 요즘 같은 문화원과 문화예술인들의 관계는 아쉽다고 그는 말한다.
전시장과 강당의 대관료를 둘러싸고 문화원과 일부 이곳 문화단체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양측의 관계가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대관문제는 문화원의 대관 원칙이 너무 자의적으로 적용되지 않나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예를 들 수 있겠다. “청송 감호소 재소자들에게 미술을 지도하는 캐나다의 한인 여의사가 있는데요. 재소자 작품을 문화원에서 전시하는 것이 가능한지 문의하는데요”“이미 올해 전시 스케줄이 다 잡혀 있어요. 갑자기 끼어 들어서 하기는 어렵죠”
충분히 납득이 되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 보다 더 갑자기 일정이 잡힌 것이 분명한 LA 한인화가의 독도전은 개인은 대관이 불가능하다는 문화원 2층 전시실에서 열렸다. 왜 그런가.
문화원의 다른 담당자는 이렇게 말한다. “독도전요? 요즘 한국 분위기가 그래서요.” 전시 스케줄이 다 잡혀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독도는 괜찮지만 재소자 그림은 곤란하다는 말을 했었어야 했다. 어떤 무용행사에는 1만달러를 지원해 주고, 미술단체의 전시회에는 상대적으로 몇 푼 되지 않는 대관료나마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도 알려지면 형평성의 문제로 항의를 받을 수 있다.
서울서 오는 행사는 거의 대부분 대관료가 면제되는 것도 문제다. 물론 한국문화의 미국 전파라는 문화원의 역할에 비춰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떤 행사는 순전히 해외공연이나 전시 경력 쌓기가 목적인 행사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예술인들은 연줄이나 빽이니 하면서 이런 행사를 곱게 보지 않는다.
문제는 그러나 단순히 대관료 부과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홍보대상인 한국 문화의 정의부터 새로 정립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해외 최대의 한민족 공동체가 이뤄진 LA 같은 곳에서는 특히 그같은 노력이 시급하다.
이민사회의 문화행위는‘불행히도’ 대부분 한국문화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1세 이민사회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물론 서예, 미술, 음악, 무용 등도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한국서 쓰여진 붓글씨는 한국문화여서 홍보 대상이지만 여기서 쓰여지는 서예는 그렇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게 된다.
한류, 한류 하면서 외국인 관람객은 거의 들지 않는 한국영화나 냅다 틀어 주거나, ‘다이내믹 코리아’처럼 돈만 쓰고 욕만 바가지로 먹은 잡탕 비빔밥 행사나 하는 것이 문화원의 역할이 아니다. 그 비슷한 행사야 이벤트 회사들도 무수히 하고 있지 않 은가.
신임 문화원장이 부임한지 석 달이 넘었으면 크게 돈 드는 일도 아닌데 녹차에 인절미(제대로 된 컴비네이션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도를 차려 놓고 이곳 문화 예술인들과 티타임 정도는 가졌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새겨듣고 배워야 할 이야기들도 나올 것이다. 적어도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나가는 문화계 인사를 붙잡고 물어봐도 어느 누구에게서도 “요즘 문화원 수고한다”는 말 한 마디가 나오지 않으면 문화원은 지금 비문화적인 상태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LA 한국문화원은 잘해야 한다.
안상호 부국장·특집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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