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웨슬리와 필 앤젤리디스, 두 사람 중 누가 나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이곳 한인들 100명 중 99명은 “그게 누군데요?”라고 되물을 것이다.
오는 6월6일의 캘리포니아주 예비선거에 출마한 주지사 후보는 16명이나 된다. 그러나 일반 유권자에게 낯익은 이름은 4명의 공화당 후보 중 한명인 아놀드 슈워제네거 현 주지사 정도다. 웨슬리와 앤젤리디스는 민주당 후보로 이름 올린 8명중 선두주자 2명이고 선거는 앞으로 열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이 누구인지 조차 잘 모른다.
이번 예선은 미 전국 민주당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선거다. 민주당은 올 11월 중간선거를 역사적 전환의 계기로 삼고 있다. 금년엔 주지사직과 연방의회에서 다수당을 장악하고 2008년 대선에선 백악관을 재탈환하고…달콤한 ‘민주당의 꿈’이 한창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 미 50개주의 주지사직은 공화당이 28개, 민주당이 22개를 차지하고 있다. 금년엔 36개주에서 주지사 선거가 치러지는데 이중 22개주의 현직이 공화당이다. 1990년 이후 계속 열세로 밀려온 민주당은 금년엔 28개주에서의 승리를 기대한다. 부시의 인기폭락과 함께 당내분열이 심해진 공화당은 주지사 선거에서도 난항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랜만에 재기의 황금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민주당이 최대 주 캘리포니아의 선거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주지사 슈워제네거를 꺾는다면 그 의미는 몇배로 커질 것이 아닌가.
그런데 선거전을 바라보는 민주당 지도부의 시선엔 우려가 가득하다. 터미네이터와 싸울 확실한 무기가 보이지 않아서다. ‘스타’도 없고 ‘정책’도 없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두 후보가, 밋밋한 이슈를 놓고 자기들끼리 상처내고 있을 뿐이다.
웨슬리나 앤젤리디스는 결코 무능한 후보가 아니다. 둘 다 유능한 주정부 고위관리이며 성공한 기업인이다. 웨슬리는 스탠포드를 졸업했고 앤젤리디스는 하버드 출신이다. 새크라멘토 토박이로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공직에 당선되었던 앤젤리디스는 부동산 개발업으로 백만장자가 된후 민주당 캘리포니아주 위원장을 역임한 52세의 현직 주 재무관이다. 역시 북가주 태생의 금융전문가로 실리콘밸리로 진출, e베이에 취업하여 닷컴기업 억만장자가 된 웨슬리는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던 49세의 현직 주 감사관이다.
둘 다 젊었을 때부터 충실한 당원이었으니 자연히 낙태반대, 동성결혼지지에서 환경보호, 불체자 운전면허발급 찬성에 이르기까지 사회이슈에 대한 입장은 대동소이다. 물론 두사람은 서로가 ‘아주 다르다’고 주장한다.
색깔은 앤젤리디스가 더 선명하다. 확실한 리버럴이다. 계속 ‘안티 아놀드’ 선봉에 서 왔다. 슈워제네거를 공적으로 삼고있는 노조가 그의 든든한 지지세력이다. 사회운동가를 자처하는 그는 주정부 적자해소 방안으로 최고부유층에 대한 1% 세금인상을 제시한다.
“당파싸움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해” 일하겠다는 웨슬리는 사회이슈엔 진보적, 재정이슈엔 중도적 입장을 표방한다. 증세보다는 성공적인 기업경영의 경험을 살려 낭비와 탈법을 막는 효율적인 예산 집행으로 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여론조사에선 지난달까지 웨슬리가 앞섰다가 요즘은 앤젤리디스가 따라잡았다. 당의 공식지지도 앤젤리디스가 얻어냈고 LA타임스도 ‘카리스마는 없지만 신념이 있다’며 그를 지지했다. 그러나 ‘앤젤리디스는 유권자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치명적 결함이다. 또 당은 리버럴해도 일반 유권자는 중도적이다’라며 ‘미남 후보’ 웨슬리 진영은 자신감을 보인다.
유권자의 무관심이 어느 정도인가는 여론조사가 말해준다. 대충 3분의 1이 앤젤리디스를, 또 3분의 1이 웨슬리를 지지한다는데 그중 절반은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했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미정’이라고 답한다. 결국 전체의 3분의 2가 아직 ‘미정’이다. 세상에, 선거는 이제 2주도 채 안남았는데.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가 “그게 누구야?”하며 모른다 해도 두사람 중 한사람은 당선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예선에서 진을 뺄 필요가 없는 슈워제네거 진영은 여유만만 희희낙락이다. 지난 가을 특별선거 참패후 약속한 대로 새 출발한 덕인지 폭락했던 인기도 서서히 회복세에 접어들었고, 운이 좋아서인지 ‘리더십’이 되살아나서인지 민주당 주의원들과 합의에 성공하여 적자해소도 눈앞에 두고 있다. “그쪽에 나를 이길 후보 있을까…” 자신감이 역력하다.
‘You can’t beat somebody with nobody’는 선거의 기본 원칙에 속한다. 무명후보로는 유명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데 민주당의 두 후보 다 지금은 nobody에 불과하다. 이번 예선은 누가 앞으로 5개월만에 지명도 높은 슈워제네거를 꺾을 somebody가 될 수 있는가를 가려내는 과정인 셈이다. 이 재미는 없고 어렵기만 한 선택을 해야 하는 ‘등록 민주당’ 유권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야 할 것 같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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