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도 더 전인 1949년에 이미 영국의 왕립 인구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전체 인구 중 젊은이의 인구 비중이 줄어드는 사회는 기술적인 효율성과 경제 복지 면에서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적인 성취에 있어서도 다른 사회에 뒤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서술하면서 저출산과 고령화의 사회경제적인 파급효과를 우려했다.
최근 들어 우리사회에서도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가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로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1960년 52세이던 평균 수명이 최근 들어 78세에 접근했다. 특히 여성은 이미 80세를 넘어서게 됐다. 이와 함께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 즉 합계 출산율은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965년 6명에서 지난 2005년 1.08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현재의 인구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하다는 ‘대체출산율’ 2.1명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도 지난 2000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7%에 도달해 이미 소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문제는 고령화의 속도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는 데 있다.
일례로 미국은 1942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이후 65세 이상 인구가 14%에 달하는 ‘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데까지 71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세계적 기록을 가진 이웃 일본도 24년이 걸린 데 비해, 우리는 그보다 6년이나 앞당긴 18년만에 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노후에 대비할 새도 없이 고령사회가 우리 발 밑으로 밀려옴으로써, 노후가 불안한 상태로 오래 사는 시대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가정이건 지금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왕자 혹은 공주에 다름 아니다. 자식이 하나이다보니 부모는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등 모두가 이 아이의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신하처럼 받들어 시중을 드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간단히 계산하면 특별한 가정이 아니면 보통 신하 오륙 명을 거느린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것이다.
한편 이들이 30대가 되는 2030년대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생각하기조차 겁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 예상된다. 생활 수준의 향상과 의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90살에 이르게 될 것이므로 60대의 부모와 90대의 조부모 및 외조부모 대부분이 살아 계실 확률이 높다. 지금의 추세대로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적) 현상이 지속된다면 그의 부모는 경제활동을 멈추고 은퇴하고 있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는 이제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사회초년병인 처지에 부양해야 할 대상은 많게는 여섯 명까지가 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고령자들이 자녀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는 비율은 85년 72%대에서 95년 56% 수준으로 하락했다. 같은 기준으로 일본의 고령자들의 경우는 85년 15%대에서 95년 4%대로 떨어졌다. 한편 미국은 이미 85년 조사에서부터 0%에 가깝다. 모르긴 하지만 우리 나라도 이미 30~40%대로 내려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우리 나라에서도 자식이 더 이상 노후 보험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해준다.
개인도 개인이려니와 국가 전체를 놓고 볼 때 문제는 어떤가? 문제의 핵심은 왕자와 공주 세대가 미래 경제활동의 주역이 될 때 과연 전체 국민을 경제적으로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다. 이는 인구 구성 측면에서 생산에 가담하는 인구가 충분한 부양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65세 이상 인구대비 15~64세 인구를 흔히 노년부양비라고 정의한다. 우리 나라의 노년부양비는 지난 2000년 10% 수준에서 2030년에는 35% 수준으로 3배 이상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왕자와 공주들이 30년 후 사회적 부양 의무를 전적으로 떠맡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도 아닐 것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부는 정부대로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다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각종 대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꾸준하게 집행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 개인 개인이 ‘자식 보험’ 대신 ‘자신에 대한 투자’를 당장 오늘부터 늘림으로써 스스로 노후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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