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 트
연립단지는 불이 꺼져있다. 마치 정전이 된 듯 깜깜하다. 누군가 살고 있다 해도 불을 켤 수가 없다. 불만 켰다하면 어디선가 날아오는 돌멩이 세례에 유리창이 남아나질 않기 때문이다. 열 두 가구가 살고 있는 단지에 일어난 살인 사건은 온 세상을 놀라게 했고 그 논란은 점차로 열기가 더해갔다. 장미초등학교에 다니는 102호 아이도, 시청에 다니는 김미란도 며칠 째 두문불출이다.
처음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일주일 후에 신문의 헤드라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스물 두 명의 목격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살해를 당하다.’
세상은 스물 두 명이라는 숫자에 흥분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 곁에 있던 스물 두 명은 대체 뭘 했냐는 것이다. 인정이 매말라가는 세태를 탄식하며 신문방송은 온통 난리법석을 떨었다. 심리학자를 대동하고 연립단지에 찾아온 방송사는 특집 프로그램인가 뭔가를 꾸민다고 온종일 카메라를 설치하고 출퇴근하는 단지 주민들을 못살게 굴었다.
“살인 현장에 있으셨습니까?”
“피해자는 어떤 형태로 살해를 당하던가요?”
“피해자가 칼을 맞고 쓰러질 동안 왜 선생님은 지켜만 보고 계셨나요?”
“…글쎄요. 너무 황급히 당한 일이고 해서…”
단지 안의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그런 애매모호한 태도를 나무라는 신문 사설이 다음 날 일간지 신문마다 떠들어댔다. 죽음조차도 방관하는 각박한 인심에 교육이 문제라는 둥 경쟁심을 조장하는 사회가 문제라는 둥 더 무거운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가를 따지며 사회에 직책을 갖고 있는 유명 인사들은 죄다 아는 체를 했다. 연립단지 옆에 있는 교회는 종말이 다가 왔노라며 ‘말세가 되면 징조가 있으리니 사람이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간에 사랑이 없어진다고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라며 단지 앞에서 확성기로 온 종일 떠들었다. 이미 장례식도 다 끝난 일이건만 여론이 심상치 않게 자신들을 향하고 있음에 주민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렇게 심상치 않게 변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각종 시민단체들이 단지 내로 몰려와 ‘인정머리 없는 주민은 각성하라’는 현수막을 흔들어댔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관리실 김 노인과 손자가 일층 복도에 앉아있었고 마침 단체로 단합대회에 다녀오던 주민들이 버스에서 내리던 중이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 짐을 내리고 일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기도 했다. 짐칸에 실은 아이스박스를 꺼내고 옷가지를 챙겨들며 버스에서 내리던 마침 그때에 한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칼을 찌르고 도주하다가 다시 돌아와 또 한 두 차례 칼로 상해를 입혔던 사건이다.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파악하기까지도 삼사 분이 흘러야했다. 죽었나봐 하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망연히 그 자리에 멈춰 섰을 것이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여자는 결국 숨을 거두었다. 누군가 경찰에 연락을 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땐 범인은 도주한 상태였다. 단지 내 사람들은 모두 경찰서로 가야했다. 모두가 목격자였기 때문이다. 목격한 대로 진술을 하고 경찰서에서 나선 시각은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난데없이 신문에 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온갖 비난이 쏟아지게 되었다.
“아니, 아닌 밤중에 웬 홍두깨여.”
“우리가 범인이여 뭐여. 왜 우리만 갖고 지랄들이여.”
참다못한 최상돈과 102호 트럭운전사 조씨가 죽치고 있는 기자들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그 모습이 다음 날 신문에 나는 건 당연지사. 한 마디 해대면 해대는 그대로, 아니 덧붙이고 과장되어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단지 주민들은 종이쪽지를 돌려 조용히 107호에 모였다. 어떻게 이 황당한 경우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진정서를 내자는 쪽이 우세했다. 각 종교계에 해명서를 보내자는 의견도 나왔다. 무고죄로 고소를 하자는 과격파도 나왔다. 명예훼손도 가능할 거라는 법무사 출신 김씨도 거들었다. 점잖게 듣고만 있던 최씨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럴 땐 침묵이 금이여. 아무런 대꾸를 하덜 마쇼. 그러다 보면 지쳐 돌아 갈 테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 날부터 주민들은 무슨 트집을 잡던지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쳤다. 가끔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밤은 길고 깊었다.
권소희
■한국소설로 등단/월간문학 신인상/
소설집 ‘시타커스, 새장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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