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뭐길래…월드컵이 뭐길래…
왜냐고요?
유기형 SF축구협회 고문은 축구 앞에만 서면 깜박깜박 칠십 앞둔
나이를 잊어버린다. 손자뻘 후배들의 경기나 TV중계를 볼 때면 가만 있어도 쑤시는 다리는 움찔움찔, 늘 뻐근한 허리는 들썩들썩, 손바닥엔 어느새 땀이 배인다. 다리심줄이 시퍼랬던 젊은날, 해지는 줄 모르고 차고 또 찼던 공다툼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토요일인 지난 6일 오후, 산타클라라 잔D모건 팍에서 만난 한얼축구회 박정현 회장은 88서울올림픽의 감동을 흘려보내기 아쉬워 축구모임을 만든 이야기 등 한얼의 역사를 들려주다가도 라인을 벗어난 공이 자신에게 다가오면 인터뷰고 뭐고 우선 그것부터 내질렀다. 그러면, 이마를 타고 볼을 타고 내려와 고드름처럼 코끝에 턱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던 땀방울들은 공보다 먼저 어디론가 도망쳤다.
본보 주관 한국-코스타리카 평가전이 열린 2월11일 오클랜드 콜리시엄에는 자녀들의 엄중부축을 받는 90세 전후 할머니도, 엄마품에 안기고 아빠등에 업힌 아이들도, 패기만만 10대20대 청춘남녀들도, 흰머리 늘어가는 40대50대 중년들도, 한손에 성경책 한손에 태극깃발을 든 목사님도, 염주목걸이 염주팔찌를 한 스님도, 오클랜드 어느 식당 사장님도 주방장도, 실리콘밸리 IT회사 직원들도 고객들도,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새크라멘토 몬트레이에서 달려온 사람들도, 거개가 붉은 티셔츠를 입은 채, 북가주 한인사회 100여년 역사상 최대최고(약 2만명) 붉은 물결을 출렁이며 붉은 함성을 질러댔다.
축구잖아요!
월드컵인데!
이것이 축구다. 그것이 월드컵이다. 월드컵축구의 마력이다.
돈을 준다한들 선물을 나눠준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에 운전이며 파킹이며 그 불편을 겪어가며 그 북새통을 이룰 수 있으랴. SV상록축구회 안상석 회장이 벌어도 부족한 돈을 써가며 상록대회 그날(4월29일) 하루에만 4.5kg나 빠지도록 몸을 축내고도 생글생글 웃는 까닭이 무엇이랴. 고참대접만 받아도 그만인 서양수 전 SV체육회장이 같은날 후배회장 밑에서 감독하랴 선수하랴 진땀을 빼고, 같은팀 멋쟁이사장님 권혁무 선수가 조카뻘 선수들과 힘다툼 기다툼을 하면서 이를 악물게 한 원동력은 또 무엇이랴. 상항한인연합장로교회 이대섭 목사(SF상록수)가 안경테에 끈 달아 머리에 동여매고 기꺼이 몸싸움판에 뛰어들게 한 ‘즐거운 사탄’의 정체는 무엇이며, 쉰은 족히 넘었을 중국계 루이스 칭 선수가 말도 잘 안통하는 한인선수들과 한패가 돼 부딪치고 뒹굴고 생고생을 왜 하랴. 김현철-성신 부자는 왜 땡볕아래서 어둠속에서 인정사정 없이 서로 뚫으랴 막으랴 기를 쓸까. 임병동 회장과 성호승 총무 등 트라이밸리유나이티드(옛 아가페)축구회 사람들이 이 가게 저 식당 돌아다니며 동지모으기에 구슬땀을 왜 흘릴까.
역시 축구다. 4년마다 찾아오는 월드컵 바이러스가 겹쳐지면 축구란 요물은 더욱 광기를 띤다. 한아름도 안되는 축구공 속으로 지구촌이, 지구촌 사람들이 움푹 빠진다, 흠뻑 젖는다. 그 작은 공이 부리는 마술에 거대한 지구는 넋을 잃고 춤을 춘다.
양반상인 신사숙녀 직업귀천 남녀노소 따로 없다. 피부색도 종교색도 뒷전이다. 국무장관 재임시절 땅에서보다 하늘에서 잔 시간이 많았을 정도였던 헨리 키신저는 월드컵이 닥치면 외교협상 미뤄놓고 축구구경에 축구칼럼집필에 혼이 팔렸다. 소설가 고원정도 쓰다만 소설의 애원을 듣는 둥 마는 둥 축구해설을 쓰느라 손가락이 바빴고, 서울대를 거쳐 한국고등과학원에 몸담고 있는 강석진 교수가 한층 유명해진 것도 전공인 수학보다 재미삼아 쓴 축구서적 덕분이었다. 컴퓨터를 안고 섹스하고 싶다고 외쳤을 만큼 이 세상 보통사람들과는 철저하게 딴판으로 살아가리라 작심한 듯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도 축구앞에서는 맥을 못췄는지 02월드컵 그 환희의 드라마를 감상한 뒤로 “축구는 정의다”라고 외쳤다.
그뿐이랴. 지구촌 사람들을 축구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란 잣대로만 가른다면, 더욱이 월드컵이 무르익는 즈음에 그런 시도를 한다면, 싫어하는 사람부터 헤아리는 게 천배만배 시간을 절약시킬 것이다.
다시 축구다. 또 월드컵이다. 지구가 꿈틀대는데 세상이 출렁이는데 북가주 한인사회라고 다를소냐. 벌써부터 끓어오르고 진작부터 달아올랐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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