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목사 청빙문제로 분규를 빚다가 부목사 한 명이 사망함으로써 충격을 던져준 가나안교회는 이미 지난해부터 내분이 심각했었다. 은퇴하는 목사의 은퇴금을 둘러싸고 교인들 사이에 불만이 고조돼 극심한 불화가 계속됐던 것이다. 남가주동신교회도 2년전 은퇴한 원로목사의 은퇴비를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뉴욕 퀸즈한인장로교회 역시 최근 이 문제로 대단히 큰소리가 났다고 들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심한 분규 끝에 갈라진 라성빌라델비아교회도 분쟁의 발단은 원로목사의 은퇴비 정산을 둘러싼 의견대립이었다.
한편 모범적인 사례도 있다. 박희민 목사의 경우 3년전 은퇴할 때 나성영락교회가 공식적으로 은퇴비를 제시했으나 박목사가 극구 사양, 교회측은 이를 박목사가 설립한 새생명선교회에 헌금하였다. 박목사는 또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전달한 사례금도 모두 선교비로 헌금함으로써 박수갈채를 받고 떠났다.
요 몇년새 미주한인교회의 1세대 목사들이 잇달아 은퇴하면서 은퇴비를 둘러싼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위에 예를 든 교회들을 포함, 이곳 대형교회들의 은퇴비는 대개 35~40만달러 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사용하던 사택과 자동차를 제공하기도 하고, 평소 목사를 따르던 교인들이 사례금을 전달하는 일도 드물지 않으며, 이런 것을 다 받고도 원로목사로 남아 교회에서 매달 월급을 받는 사람도 있으니, 큰 교회 목사들이 은퇴하면서 한 재산 챙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퇴직금 제도가 없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평신도들은 어떤 직장에서 일해도 그렇게 엄청난 액수의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 은퇴비라는 명목의 헌금지출과 액수에 대해 심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일반 성도들의 위화감보다 더 심한 비애를 느끼는 사람은 작은 교회에서 평생 목회하다가 은퇴비는 커녕 노후대책도 없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노목사들일 것이다.
그런데 위화감은 둘째치고 고약한 문제는 일부 목사들이 교회에서 준비한 은퇴비보다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면서 교회 분규로 발전되는 일이 잦다는 데 있다. 노골적으로, 혹은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면서 액수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목사를 둘러싸고 당회가 충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싸움을 벌이는 동안 교인들은 오랫동안 존경해온 담임목사가 갑자기 돈 욕심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크나큰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보화를 천국에 쌓아두라고, 욕심을 버리고 나누며 살라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설교해온 목사가 막상 은퇴하면서 누구보다 탐욕스러워지는 모습에 허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계의 문제는 목회자가 양산되고 교회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비례해 은퇴목사의 수도 크게 증가하는 것, 그로 인한 교회분쟁이 잦다는 점에 있다. 미주 한인교계 역시 70~80년대 개척한 목사들이 요즘 은퇴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가 앞으로 한층 심각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은퇴목사의 노후대책은 교단에서 제도적으로 풀어야할 숙제라고 본다. 지금처럼 각 교회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내버려둔다면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 연합감리교단의 연금제도는 연구해볼 만한 대안 중 하나다. 이 교단에 속한 한인연합감리교회(KUMC)들은 목사에게 따로 은퇴비를 걷어주지 않는다. 교단 차원의 연금제도가 잘 돼있어서 목사 자신이 매달 월급에서 일정액을 적립하였다가 은퇴후 자기가 낸 만큼을 받으며 생활하도록 하고 있다. 형편이 어려워서 거처할 곳이 없는 목회자를 위해서는 교단 소유의 공동사택이 있어서 노후에 최저수준의 생활은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교단들이 은급제나 연금보험 같은 것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계의 현실상 모두가 동등한 혜택을 누리지는 못하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민교회는 한국의 교계보다 제도의 운용이 훨씬 폭넓고 자유로운 편이다. 미주한인교회들이 좋은 선례를 만들면 좋겠다. 그리하여 평생 많은 업적을 남기고도 마지막에 추한 노욕으로 명예를 더럽히는 목회자들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정숙희 부국장·특집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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