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11월 연방의회 중간선거에 나서는 민주당 후보들에게 당 캠페인위원회에서 보내는 메모가 전달되었다. “…지역구내 개스 스테이션에서 유세를 가져라. 공화당 의원들처럼 석유회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민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폭리 기업과 싸우겠다고 약속하라…”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개솔린 가격이 부활절 휴가후 이번주 다시 문 연 연방의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두주전의 핫 토픽, ‘이민’은 저 뒤로 밀려났다. 개솔린 가격만큼 미국인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이슈도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는 11월 의회 재장악을 노리는 민주당에겐 석유재벌 출신의 정·부통령이 이끌어가는 집권 공화당을 겨냥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토픽은 드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시의 인기하락과 잇단 로비 스캔들등으로 궁지에 몰려온 공화당은 이만저만 급해진 게 아니다. 50달러가 넘어가는 계기판을 바라보며 솟구치는 소비자들의 분노를 달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주당에 질세라 거대 석유기업에 대한 강경책도 들고 나왔다. 월스트릿저널지가 공화당 중진들이 민주당 리버럴들처럼 ‘가격조작’ ‘폭리’등의 과격용어를 남발하며 석유업계를 탐욕스런 악덕기업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사설로 질책할 정도다.
백악관도 몰리기는 마찬가지다. 상당히 괜찮은 국내경제 마저 개솔린 가격의 그늘에 짓눌릴 판이다. 이틀전 부시 대통령이 4가지 단기 해결방안을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모두 실효성이 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하며 고개를 흔든다. ‘전략유 비축을 잠정 중단하겠다지만 이미 미국내 원유재고는 충분해 가격잡는데 효과가 없고, 정유 위한 환경규제 완화도 이미 에탄올로 바꾸는 작업이 완료단계이므로 별 도움이 못되고…’ 식이다.
부시나 공화당이 특별히 무능해서가 아니다. 개솔린과 원유의 가격이 미국의 대통령과 정치권의 권한 밖 사안이기 때문이다. 1차 개스파동을 겪은 70년대 닉슨때부터 갖가지 대책을 세워왔지만 1980년까지 이루겠다던 ‘미국의 에너지 독립’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요원한 과제다.
왜 그런가. 개솔린 가격의 구성분부터 따져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원유가격이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54.8%다. 그 다음 큰 부분은 개솔린으로 정제하는 정유가격이다. 5년전엔 13%였는데 지금은 21.7%나 된다. 미국의 거대 석유기업들이 이 정유과정을 둘러싸고 가격을 조작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나머지가 마케팅과 배급비용 4.5%와 세금 18.9%다.
역시 가장 큰 요인은 원유가격인데 고유가의 원인은 한마디로 수요가 공급보다 많기 때문이다. 오일 중독상태에 걸린 미국뿐이 아니다. 지난5년 세계 원유소비증가의 거의 절반은 중국에서 발생했다. 중국과 인도의 수요폭증 같은 장기적 이유에 더해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중동의 불안, 아프리카 최대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정세불안정에 의한 생산감소등 일시적 요인이 고유가 행진을 금년가을까지 끌고 갈 전망이다. 어느 하나도 워싱턴 정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유소 앞 민주당의 유세뿐 아니라 백악관의 대책 역시 효과적 캠페인은 될지 몰라도 개솔린 값을 당장 잡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발’인 미국에서 식비를 줄여 개솔린 값을 부담해야하는 서민들의 분노는 거의 폭발지경에 이르렀다. 워싱턴이 손놓고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법안하나가 눈길을 끈다. 개솔린 가격을 당장 낮출 수 있도록 연방 개솔린세를 잠정 폐지하고 세수 부족분은 석유기업에 횡재수익세를 부과해 충당하자는 내용이다. 소비자 분노에 코드를 딱 맞춘 것이지만 통과는 전혀 불투명하다. 이런 와중에서 거대 석유기업들의 천문학적 숫자의 1분기 순익이 발표되기 시작했으니 다급해진 공화당이 석유기업 때리기에 앞장 선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석유기업들의 폭리는 강하게 나무라면서도 SUV등 연비 낮은 대형차를 타는 소비자들을 나무라는 정치가들은 아직 없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석유전문가 대니얼 예르긴은 그러나 가격은 소비가 줄어들면 자연히 떨어진다면서 LA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단언한다. “당장의 가격 인하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소비자 자신이다”
참고로 미국의 운전자들이 앞으로 30일간 운전량을 3%만 줄인다면 현재의 개솔린 가격은 틀림없이 폭락한다고 또 다른 전문가 톰 클로자는 장담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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