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생결단’서 마약 중독자로 열연…
두 남자의 탁월한 설정에 내가 빛났을 뿐
’이러다 영영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닐까’
한동안 추자현(27)은 이런 고민에 휩싸였다. 드라마 ‘카이스트’의 선머슴 같은 여자애로 단숨에 이름과 얼굴을 알렸지만 그 이미지의 굴레는 생각보다 오래 그를 옭아맸다.
아무리 그가 다른 캐릭터를 잘할 수 있다고 말해도 그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악스럽게 방방 뛰는 여자 정도. 드라마 ‘오필승 봉순영’을 마치고 그는 숨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영영 앞으로 더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연극이든 영화든 다시 시작하는 계기를 기다렸다.
그런 추자현이 영화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짧은 출연에 이어 영화 ‘사생결단’으로 보기 좋은 복귀전을 치렀다. ‘사생결단’에서 그는 명품 매장을 운영하는 지영역을 맡았다. 마약 중간판매상인 줄 몰랐던 남자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생생히 지켜본 후 피폐해져 마약 중독자가 되는 인물로 주인공 상도(류승범)의 이상형이자 상도의 고독을 지켜본다.
추자현의 연기는 보는 이들에게 화제가 됐다. 마약에 중독돼 있는 여자를 그리기 위해 가슴뿐 아니라 전라 노출을 서슴지 않았다. 노출만이 눈에 띈 게 아니다. 실제 마약중독 경험자와 긴 시간 인터뷰를 통해 온몸으로 만들어낸 연기, 즉 약기운이 떨어질 때 엄습하는 공포감, 꽤 오랜 시간 마약을 참았음에도 막상 눈앞에 마약이 놓여 있자 흥분이 몰려와 요의를 느끼는 장면, 상도와의 마지막 통화 장면 등은 연기자로 인정받고자 하는 그의 열의를 쉽게 감지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전 시나리오를 볼 줄 몰라요. 그저 만나고 싶었던 분들 보겠다는 생각으로 오디션에 임했습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여성스럽게 나타난 그를 보고 제작자와 최호 감독이 노출 장면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캐스팅할 때만 해도 ‘하겠다’고 덤볐던 여배우들이 막상 촬영이 시작되면 ‘못하겠다’고 버틴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라며.
노출 장면은 지영이를 설명하는 것뿐 아니라 영화 ‘사생결단’을 설명하는 장면이었어요. ‘굳이 이 신이 없어도’가 아니라 이를 통해 영화가 표현되는데 어찌 안하겠어요. 그리고 두 분에게 ‘저 의리는 지키는 애다’라고 말했죠.
인생 바꿀 수 있게 됐다고 의기양양해하는 상도가 마약을 탄 맥주를 주자 고심끝에 마시는 장면이 의외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지영의 노력이 일순간에 사라져 관객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주지만 마약 중독자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녹여낸 듯해 더욱 안타까웠던 장면이다.
그랬더니 그는 원래는 안 마시는 거였는데, 마약 중독자라면 마실 것 같아 내가 바꾸자고 했다고 말했다. 마약은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랍니다. 술, 담배보다 더한 거죠. 마약을 해본 사람 눈앞에 마약을 갖다 놓으면 주사기부터 찾는다는군요.
이처럼 자신이 적극적으로 작품에 나서게 된 것은 전적으로 황정민과 류승범, 두 남자 배우 때문이란다.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 연기 잘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구요. 촬영장에서도 매번 느꼈어요. 작품 속에 완전히 빠져 각기 배역에 탁월한 설정을 하시더군요. 끊임없이 뭔가를 끄집어내니 저는 가만 있어도 빨려 들어갔습니다. 두 분의 그런 열의 덕택에 저 역시 빛나게 된 것 같아요.
도진광(황정민)이 지영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무지막지하게 발로 차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 역시 지영이가 도진광의 눈에 담뱃불을 갖다대는 것으로 끝나는건데 마약판매상을 잡기 위해 거의 미쳐가는 도진광을 표현하기 위해 황정민이 이끌어낸 설정. 이에 추자현은 정말로 담배를 황정민의 눈알에 들이대는 몰입으로 화답(?)했다. 물론 불꺼진 담배였지만.
이렇게 그는 ‘사생결단’에 참여하면서 뿌듯함과 용기를 얻었다.
이런 영화에 함께 했다는 점만으로도 정말 좋아요. 앞으로도 사람 냄새 나는 역할, 좋은 작품 하고 싶네요.
순식간에 얼굴이 잊혀지는 연예계에서 불안함을 딛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추자현은 이미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둔 듯하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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